2023년 가을, 암선고를 받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병원 진료실에서 나온 후 주차장에 서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아니 말해야 하나, 아직은 너무 어린것 같은데. 결국 혼자 감당하기로 했다. 남편만 알고 모든 가족들에게는 수술하는 날까지 비밀로 했다. 수술을 기다리는 한 달은 진짜 힘들었다. 멍하니 있다가 아이들이 없으면 울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불안했다.
그때 나에게 유일한 숨구멍이 되어준 것이 브런치였다. 몇 년 전부터 아이들과의 일상, 육아 에피소드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써왔던 그 공간이 갑자기 다른 의미가 되었다. 이제는 차마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마음들을 담아야 하는 곳이 되었다.
병원 갈 때마다 검사를 기다릴 때마다 떨리는 손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링거를 꽂은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고 고통을 글에 담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통증이 줄어들었다. 왜 이렇게 글을 써야만 하는 걸까. 아마도 이것만이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면서 아이들이 보고 싶어 울기도 많이 울었다.
치료받는 날들, 불안하고 두려운 밤들이 이어졌다. 아이들이 잠든 새벽, 나는 조용히 브런치를 열고 하루를 정리했다. 오늘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간호사의 따뜻한 미소, 치료실 창가로 보이던 겨울나무,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안았을 때의 안도감. 작은 것들까지 모두 기록했다. 그해 겨울은 눈이 참 많이 내렸다. 수술하러 입원하는 날도 9박 10일이 지난 후 퇴원하는 날도 눈이 내렸다.
그때 눈을 밟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엔 두려움과 분노가 대부분이었다. “왜 하필 나에게?”, 아이들 걱정 때문에 대성통곡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분노는 수용으로, 절망은 희망으로, 두려움은 용기로 바뀌어 갔다. 글 자체가 치유 과정이었다.
다향스럽게 항암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암 환자로서의 일상만이 아니라, 여전히 엄마이고 아내이고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었다.
브런치 속 나의 투병 이야기들은 모두 비공개로, 서랍 깊숙이 숨겨두었다. 아이들이 혹시라도 보게 될까 봐,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까 봐. 하지만 그 글들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던 복잡한 감정들이 문장이 되어 흘러나가면서, 마음의 짐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글쓰기는 나만의 치료법이었다. 의학적 치료와 함께, 정신적 치료도 스스로 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견뎌내는 시간들을 기록하면서, 나는 단순한 환자가 아닌 한 사람의 완전한 이야기를 가진 존재로 남을 수 있었다.
수술과 치료 그리고 회복기를 거치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겉으로는 몸이 많이 상했지만, 내면은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브런치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세상 모든 순간이 아름답고 감사했다. 난 아프기 전에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아픈 후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지금도 가끔 그 글들을 다시 읽는다. 그때의 나는 정말 용감했다. 두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 작은 희망들을 찾아 기록했다. 어떤 날은 병실 창가로 보이는 구름이, 어떤 날은 아이의 웃음소리가 그날의 희망이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언젠가는 그 이야기들을 꺼낼 날이 올 것이다. 엄마도 때로는 아프고 무서웠지만, 그 시간을 견뎌냈고 더 강해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이 브런치 어딘가에 소중히 기록되어 있다는 것도 함께 말해줄 것이다.
브런치는 내게 단순한 글쓰기 플랫폼이 아니었다. 가장 어둡고 힘든 터널을 통과할 수 있게 해 준 빛이었고,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게 해 준 거울이었으며, 치유의 공간이었다.
지금 나는 건강을 되찾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브런치를 통해 배운 것은 여전히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글로써 마주하고, 기록하고,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 브런치를 통해 나는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내 삶을 용기 있게 마주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여정이었다.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아플 때는 참 부러웠다. 고통을 어떻게 묘사를 해야 할지, 내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어떻게 사실적이고도 감동을 줘야 하는지를 망설였다. 그래도 그냥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오히려 잘 쓰려고 하기보다는 기록하는 마음으로 쓰니 편하게 써졌다. 낯선 병원생활, 수술실로 향하는 다른 환자들의 두려움에 용기를 가져라는 속마음을 썼고, 처음 선고를 받고 울고 있는 모녀를 보며 나도 옆에서 같이 울었다. 기록해 놓지 않았다면 기억의 조각들이 어느새 사라졌을 것이다.
이젠 아이들을 위한 육아와 나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하게 쓰고 있다. 진심을 다해 글을 쓰고 난 오늘도 브런치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