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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미 May 28. 2024

30년 지기 친구들과 하는 부부독서모임, 괜찮을까?

부부 독서모임 시작과 그 후의 일상

[부부 독서모임의 시작]

시작은 남편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부부끼리 만난 자리에서였다. 남편은 결혼 후 거주지를 옮겼고 두 친구는 어릴적부터 살던 동네 근처에 계속 살고 있어 부모님댁에 갈 때 겸사겸사 만난 적이 있었다.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 한 커플이 독서모임에서 만나 결실을 맺었고 나 또한 오랫동안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 하다보니 모두들 조금씩 독서에 대해 은근한 열망 또는 호기심이 있었고 이 김에 친구들끼리 정기적으로 얼굴 볼 계기도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겸사겸사가 모여 얼떨결에 이루어졌다. 나는 결혼 전까지 남편 친구들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고 당연히 그 배우자들도 전혀 모르고, 심지어 위 만남나는 없었는데 갑자기 독서모임이 하나 생겼다.

30년 넘는 친구란, 서로 깊은 가정사와 부모님 얼굴까지 알면서도 같이 모여 책을 읽고 이야기하기에는 어쩐지 민망하고, 특히 각자 부부 사이와 배우자의 성향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에 과연 얼마나 진행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8년 이상 진행 중인 독서모임의 장수비결은 가깝지만 결정적으로 먼 사이라는 것이다. 책이라는 공통점으로 모여 독서와 의견나눔에 충실해서 글을 쓰거나 책을 선정할때 익명일지라도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지만 동시에 어디에 살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실은 이 부부독서모임이 결국에는 끝나고 밥먹고 술마시는 흐지부지 친목으로 되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기존 모임과 달리 지각, 미출석, 미발제 등에 대해 벌금도 없고 장소, 날짜, 시간도 상황따라 달라지면서 매우 느슨하다. 독서모임을 아예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반이고, 오랜 친구사이와 부부로 구성되어 있는지라 사담으로 빠지기도 매우 쉬운 구성이다. 

그치만 예상외로 1년 이상 꾸준히 유지 중이다. 아니 유지를 넘어 매우 잘 운영되고 있다. 심지어 독서모임만 하고 뒷풀이 없이 집에 갈 때도 잦은, 정말 독서를 위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부부 독서모임의 규칙]

친구와 부부로 이루어진 매우 사적인 사이에서 삼천포로 빠지지 않고 오로지 독서에만 집중할 수 있는 비결이 몇가지 있다.

첫번째는 룰인데 그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님'이라는 호칭 부르기와 존대이다. 친구 혹은 부부끼리도 마찬가지로 모임 중에는 꼭 '~님'을 붙이는데, 이 부분이 독서모임의 본질을 흐리지 않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OO야, 너, 와이프, 남편 등 평소처럼 호칭하면 발제와 의견은 사담과 수다로 가벼워지기 쉽고 결국 책이라는 본질은 흐려진 친목모임으로 변질될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남편을 OO님이라고 부르는게 어쩐지 낯간지럽고 입에 붙지 않았으나(하물며 친구들끼리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계속 진행하다보니 익숙해져 나의 배우자나 친구가 아닌 각자 모임원으로서 진지하게 의견을 경청하게 되고, 모임 후에도 나는 계속 그들을 OO님으로 부르며 애매한 호칭에 대한 걱정도 함께 해결했다.

두번째는 독서에 진심인 마음이다. 현재 한명씩 돌아가면서 한달에 한권을 읽기로 정하고 모임 전날까지 발제를 내고 있는데, 독서에 익숙하지 않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대강 읽거나 심지어 읽지 않아도 강한 제재가 없으니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들 보러 온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다들 독서 역시 진지한 모임의 목적으로 생각하고 일하는 중 짬을 내서라도, 심지어 밤을 새서라도 최대한 노력해서 읽고온다. 이렇게 책에 진심인 사람들끼리 모였으니 중심이 무너지지않고 잘 유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세번째는 모임의 유용성이다. 점점 나이가 들며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적게 느껴지는 가운데 한정된 에너지를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나이와 비례해서 인생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말도 있고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유일한 자원이라는 말도 있지만 체감 상 자꾸만 부족하게 느껴지는 시간과 에너지인지라 점점 더 무의미한 곳에 쓰고싶지가 않다. 특히 내게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남편과 서로 스케줄을 확인하고, 아이 봐줄 사람을 섭외하고, 이동하고,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쓰고 와야 하는 큰 이벤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에게 소중할 이 시간을 쓰고 돌아가는 길에 남는 것 없이 허탈한 기분만 남는다면 더이상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치만 내게는 이 모임이 꽤나 기대되는 일정 중 하나다. 모임이 주로 시부모님 댁 근처에서 이루어지는 덕에 아이를 맡기고 참여하는데 우리는 그 김에 부모님들도 뵙고 부모님들은 손주도 보시는 효도 이벤트가 되었다.(우리만의 생각일수도.. 부모님들은 노동쪽이 크실 수도..) 또한 아래에서 자세히 쓰겠지만 책 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배울 점이 많아 한달에 한번, 이동시간 포함하면 주말 중 하루를 거의 대부분 쓰는 것임에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부부 독서모임의 효과]

우연찮게 시작했지만 부부독서모임은 참여 부부들에게 삶에 긍정적인 동력이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원래 나의 취미였던 독서를 같이 함으로써 남편 또한 독서로 삶의 지평이 넓어지고 풍부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 너무 큰 기쁨이다.(아마 내가 운동을 할 때 남편도 비슷할 것 같다.)

공통적으로는 부부가 같은 책을 읽으니 평소보다 이야기 주제도 다양해지며 둘만 있을땐 알 수 없었던 속 얘기를 모임에서 알게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혹은 배우자가 깨닫는 부분도 많아 부부관계 발전에 기여하는 부분도 크다.

일례로 첫 모임에서 한번도 배우자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준 적이 없다하여 모두의 분노와 탄식을 자아낸 Y님은, 최근 배우자가 야외 피크닉 모임 전 설레는 모습을 보며 왜 진작 둘이서 피크닉을 하지 않았나하는 반성과 함께 핸드폰 메모장에 '나의 배우자가 행복해하는 것' 리스트를 만들어 피크닉 가기를 추가했다고 하여 모두의 탄성과 박수를 받았다. 부부사이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한달에 한번 보는 내가 Y님이 배우자로 평소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매 모임마다 표현과 실천에 서툴렀던 본인의 모습을 유독 반성하시더니 결국 K구 최수종의 경지까지 오르신 걸로 보인다.(본인이 계속 까먹기에 기억해두려는 의도일뿐 대단한게 아니라는 겸손까지 완벽한 마무리)

나 또한 그전까지는 남편이 내게 한번도 말한 적 없지만 실은 거슬렸던 말 습관이 있음을 모임 중에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그려'라는 말인데, 내가 '그려'라는 말을 하면 매우 성의없게 느껴져서 본인이 뭔가 잘못 말했는지 돌아보게 된다고 한다. 사실 아직도 왜 그렇게 느끼는지 이해는 못했으나, 바꾸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배우자가 싫다는데 그깟거 바꿔보자고 결심하고 핸드폰에서 '그려'를 '그래'라고 대체어 지정을 해놓았다. 이후 PC 카톡을 하던 중 나도 모르게 '그려'라고 해서 한번 급 사과를 한 적이 있긴 하다. (이 글 쓰면서 찾아보니 그 이후에 한번 더 했다; 넘어가줘서 고맙다.) 

 


[부부 독서모임 그 이상]

세 부부는 모두 직업, 지향, 취미 등이 달라 독서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제안하고 체험한다. 대표적인 예로 나는 이 부부모임을 통해 5km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달리기에 흥미를 붙이고 다이어트까지 할 수 있었다. 혼자 혹은 남편과 둘이 준비했다면 이렇게까지 효과를 보지 못했을텐데, 다같이 옷까지 맞춰 처음 나가는 행사에 민폐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에 틈나는대로 달리며 준비했더니 당일날은 물론 그 이후까지 계속 달리기를 놓치 않고 있다. 이 모임을 통해 처음으로 사격도 해봤고, 부부끼리 팀을 짜서 보드게임도 해보고(우리가 이겼다!), 멋진 피크닉 장소에서 4시간 넘게 모임을 가장한 소풍도 했다. 부부끼리 서로 좋았던 데이트 장소나 같이 하기 좋은 운동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독서를 중심으로 모이다보니 건설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 매주 배워가는 점도 많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기 전에 서로를 누구 엄마, 누구 아빠로 부르지도 여기지도 말고 항상 지금처럼 서로를 우선으로 하자고 다짐했는데 막상 낳고보니 이 아이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낳은 자의 최우선 과제였다. 연차, 휴식시간, 주말 등은 모두 아이 위주로 세팅되는 것이 당연했는데 한달에 한번 모임 날이 정해지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보니 바꾸기도 어려운 일정이 되어 덕분에 둘의 취미생활을 함께하는 고정 데이트가 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모임이 기다려지나보다. 

실은 내가 기존에 참여 아니 운영하고 있는 독서모임도 최근 여러 스케줄로 나가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는데 여기에 이리 진심이라니 기존 모임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기존 모임도 매우 아끼지만, 내가 이 부부독서모임에 진심인 이유는 오랜 친구 사이에서 오는 너그러움과 편안함을 기반으로 부부라는 특별한 구성이 다른곳에서는 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우리 모임은 성토의 장이었다가 상담실이 되었다가 무엇보다 특별한 데이트가 되기도 하는 신비하고 소중한 시간이 된다.


우연히 만나 특별한 쉼과 깨달음을 주고 있는 사람들. 모임을 통해 서로 알게 된 생각과 소망과 바람들이 모임을 통해 더욱 단단해져 결국 좋은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


5월 야외 모임을 진행한 곳. 책, 장소, 사람 모두 행복 만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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