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레MARE Jul 15. 2023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

Vulnerable

 조카 같은 강아지가 있다. 원래 남의 자식, 남의 반려동물이 가장 예쁜 법이다. 이 녀석도 나를 꽤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자꾸 나한테 엉덩이 담당만 시킨다. 만나면 무조건 엉덩이와 등부터 들이민다. 그 폭신한 털이 싫은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눈을 맞추고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있는 다른 사람을 보면 조금 부러워진다. 장난처럼 속상하다고 한마디 했더니, 등을 보인다는 건 너를 믿는다는 거라고 주인분이 귀띔해주셨다. 공격하지 않는 아군임을 알기에 등을 보이는 것이라고.


 커다란 이 녀석의 이빨과 발톱에 몇 번 상처를 입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적의가 아니라, 장난을 치다가 벌어진 사고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선뜻 녀석의 입속 깊이 손을 넣어 물고 있는 공을 빼앗는다. 상처를 입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아군이니까, 믿으니까, 서로가 두렵지 않다.


 강아지와 나의 연대처럼, 우연이건 의도된 것이건 자신의 여린 살을 보여준 사람을 아끼게 된다. 내가 그 약점을 지켜주고 보호해 줄 거라고 믿어준 것이 고마워서 그렇다. 반대로 내가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것을 끌어안아 주는 사람을 믿고 따르게 된다. 선전포고 같기도 하다. 나는 이런 약점을 가졌다는 선전포고. 도망갈 거면, 지금 도망가라는 신호다. 약점은 그런 의외의 기능이 있다.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대하고 싶지 않다. 부정적인 기억 때문에, 지나치게 방어적이었던 지난 날들은 피로하고 거짓되었다. 그래서 나는 상처받기 쉬운 상태(Vulnerable)로 살기로 했다. 가식 없이 솔직하게 대할 것, 나를 거리낌 없이 드러낼 것, 뒤로 물러서는 사람 때문에 받을 상처를 두려워 않을 것, 상대가 망설인다면 기다릴 것, 오히려 한발 더 다가와주는 사람은 꼭 끌어안을 것.


  강아지가 나를 믿기에 등을 보여준 것인지, 아니면 등을 보여줬는데 공격하지 않아서 나를 믿게 된 것인지 순서는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서로를 믿고 있다. 내가 트라우마와 우울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통해 먼저 등을 보이기 위해서다. 상처받기 쉬운 상태이지만, 위험한 만큼 확실하게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등을 보여줄 때,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서로 등을 대고 기대어 믿어볼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세상을 조금 안심시킨다.


-등을 보이고 싶은, 등을 보고 싶은 M으로부터.

작가의 이전글 나를 두고 가는 것은 용서 못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