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고일 때는 시신을 움켜쥐고
눈은 가장 많은 감각 정보가 들어오는 수납 창구라고 할 수 있다. 뇌에서 받아들이는 감각의 7할 이상이 시신경에서 오는 시각정보니까. 그리고 공교롭게도 생명 활동이 멈췄을 때 가장 먼저 부패가 시작되는 곳이 눈이기도 하다. 연한 조직일수록 빠르게 부패한다. 그래서 특히 눈이다. 생명활동이 멈춰 수분 공급이 중단되면 건조현상이 일어나, 사후 12시간 전후부터 각막이 흐려지고 48시간이 지나면 검은 동공 역시 혼탁해진다. 때문에 각막 이식은 6시간 이내에 빠르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맞고, 생선을 고를 때에는 그나마 눈이 덜 혼탁한 녀석을 고르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유령신부(애니메이션, 2005년 작)의 에밀리는 팔의 뼈가 드러날 것이 아니라 눈알부터 뽑혔어야 순서가 맞을 것이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의 어느 여름날, 등굣길에 오가던 주택가 골목길에는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문 앞에 내놓은 쓰레기봉투들이 즐비했다. 골목은 짧았지만 악취는 강렬했고, 그럼에도 그 냄새 독한 지름길을 택하고야 마는 나의 고집은 더 강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 골목에서는 수요일이 아닌 날에도 악취가 났다. 어느 날 아침, 방역복을 입은 국과수 공무원들을 마주치고서야 악취는 답을 주고 사라졌다. 제 때에 묻히지 못한 망자는 그런 냄새가 났다.
가까이에서 임박한 죽음에 대한 소식이 들려온다. 죽음의 슬픔과 상실에 이성이 무너져 내릴 때면, 죽음 뒤에 남겨진 망자의 시신을 움켜쥐어 본다. 어느 여름날 마주친 죽음의 냄새를 떠올린다. 눈이 가장 먼저 썩는다는 말을 되새긴다. 죽음을 감정으로 껴안으면 머리가 달궈지고 눈물이 고인다. 하지만 망자의 시신을 생각하면 다시 피가 식는다. 죽음을 맞이한 그는 눈부터 썩어 들어갈 텐데, 많이 무서울 텐데, 지금은 내 감정에 휩쓸려 울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성과 판단력을 단단히 쥐고 그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궁리를 해야 할 때이다.
유난한 가을이 될 것 같다. 겪어내야만 하는 일들이고, 겪어낼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무섭다. 나를 바라보던 그 눈이 흐려질 것이 두렵다. 내 두려움을 그 눈이 눈치챌까 봐 무섭다. 삶은 어쩌면 뻔한 시점에 귀신이 나타나는 공포 영화 같은 거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음악이 고조되며 주인공의 눈빛엔 긴장이 역력하다. 거기 누구세요, 대답을 원하지도 않는 질문을 던지면 정적이 찾아온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섬뜩한 얼굴이 스쳐 지나가면 저항 없이 비명이 새어 나온다. 아무리 뻔해도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죽음이라는 뻔한 결말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닥친 죽음 앞에서는 몰랐던 양 슬퍼하고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꽤 되니까. 그러니까 러닝타임이 끝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서 재미를 전하기로 한다. 뻔한 만큼 그가 못다 보아서 아쉬운 것이 없도록, 아끼던 것들을 품에 꼭 차게 안아보고 떠날 수 있도록.
- 뻔한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M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