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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레MARE Feb 26. 2024

눈물 없이 서로를 포기할 수 있기를

엄마에게

 정서적 독립, 정신적인 독립, 경제적 독립, 신체적 독립은 일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때가 있다고 했다. 학생시절 반강제로 들어야 했던 어떤 강연이 끝나고, 머릿속에 남은 말이다. 부모님과 너무 가까워지거나 갈등을 빚을 때면, 그들과 개별의 인간으로 떨어져 나가고픈 마음이 들곤 했다. 자아(ego)를 보존하거나 그 덩치를 키우고 싶은 욕망이 들 때 독립에 대한 필요성이 느껴졌다. 사춘기 때에 정서적인 독립은 끝을 냈고, 신체적, 경제적 독립은 성인이 되어 직업을 가지며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다만 정신적 독립은 마음먹는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영향 없이 오롯이 나 혼자 결정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 그런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결코 부모님이 부정적인 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엄마는 나의 멘토이자 친구이고, 아빠는 뾰족한 나를 뭉툭하게 해주는 쉴 곳이다. 하지만 부모는 어떤 식으로 건 자식에게 최초의 기준점을 제시한다. 최초의 기준에서 가뿐히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속성이, 어쩔 수 없이 탈출을 꿈꾸게 한다.


 종종 별 것 아닌 일로 지적과 반박이 오가곤 한다. 생활 패턴이나 소비 습관, 때로는 무얼 먹느냐, 어디를 가느냐 등등 부모님들이 자주 하는 보통의 잔소리들. 힐난이라기보다는 으이구, 하며 덧붙이는 걱정 어린 말들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그걸 어물쩍 넘기지 못했고, 이제 나를 교육하고 교정할 수 있는 때는 지났으니 멈춰주었으면 좋겠다고 못 박았다. 그리고 엄마의 눈물이 있었다. 엄마는 상대가 자신의 기대와 다를 때 그들이 바뀌기를 요구하거나 기다려왔고, 그것이 힘에 부쳐 멈췄을 때 상대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가 내 기준에 부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엄마는 그걸 “포기”라고 불렀다.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내가 아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심지어는 나 자신조차도, 내 기준에 부합할 수 없는 걸. 엄마처럼 세상을 보았다가는, 나는 모든 지구인을 “포기”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포기한다고 표현하고 눈물짓는 것은 지나쳐 보였다.


 좋은 말로 당장 서운한 마음과 눈물부터 달래보아 야하나 싶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못된다. 진실과 진심으로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포기해 달라고 했다. 우리는 가족이지만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타인이고, 절대로 그 간극을 좁힐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나를 위해 주문제작된 옷을 엄마가 꼭 맞게 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엄마가 보기에 내가 미친 사람 같거나 부족하거나 엉터리 같아 보여도 어쩔 수 없다. 그건 모두 내 선택으로 품은 내 것이니까. 그러니까 나를 부디 눈물 없이 포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엄마, 나는 우리가 스스로를 바꾸지 않고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를 눈물 없이 포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해. 물론 우리는 서로를 포기하고도 서로 사랑하겠지. 만약 엄마가 그럴 수 없다면, 조금 속상할 테지만 그래도 괜찮아. 아마 나는 독립을 하고 있나 봐. 어떤 선택에 있어서, 엄마의 지지나 응원이 1순위가 아닌 때가 왔어. 그래도 여전히 엄마를 사랑하고 추종해. 젊은 시절에 엄마가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던 세상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것이었잖아. 어쩌면 난 정말로 엄마를 존경하는 게 맞나 봐. 지금의 내가 젊은 날의 엄마처럼 발버둥 치고 있는 걸 보면. 그러니까 부디 나를 포기하고도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어. 생각해 봐, 우린 정말 닮아있잖아.


- 당신이 누군가를 눈물 없이 포기하기를, 그리고 그를 포기하고도 사랑하기를 바라는, M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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