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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레MARE May 23. 2023

원수의 익사체를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복수는 모두의 것

 누구나 한 번쯤은 완벽한 복수를 꿈꿔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상만 할 뿐, 상대와 동급이 되지 않기 위해 복수를 마다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어떤 사람들은 구태의연하게 잘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는 일반론을 따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항상 복수하는 자들을 존경해 왔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스위니 토드, 햄릿, 폭풍의 언덕, 더 글로리, 종이의 집. 때로는 삶이 너무도 소중해서 싸움에 쏟을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때로는 삶이 너무도 소중해서 차마 지나칠 수 없는 전쟁터가 있기도 하다.


 나의 첫 복수는 절친한 친구였다. 서로의 가장 어두운 면들을 연민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게 첫사랑 비슷한 것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나의 소중한 친구는 내가 가장 어두운 길을 걸어야 하는 순간에 잠어처럼 깊은 바다로 숨어버렸다. 처음에는 분노를 누르고, 나의 터널을 열심히 걷기로 했다. 하지만 분노는 모른 척할수록 점점 더 커져서, 내 목을 감기 시작했다. 나는 분노에 목이 졸린 채로 터널을 착실히 걸으며 복수를 결심했다. 그리고 마침내 터널의 끝이 보일 때 즈음, 친구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우리의 좋은 기억을 하나도 버리지 말라고, 내게 미안해하고 가끔씩은 눈물도 흘려보라고, 그렇지 않으면 네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너를 괴롭히겠다고.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변명과 사과가 엉망으로 반죽된 장문의 답장을 받았다. 사실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수신인이 불안에 떠는 시간이 내가 원했던 복수였으니까. 뭐라고 답해야 내가 멈출까, 친구가 고민했을 시간들이 나의 복수였다. 결과보다 기다림이 더 만족스러웠던 경험은 새로웠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았기 때문에, 나는 가장 날카로운 칼을 고를 수 있었다. 게다가 사과까지 받다니. 나의 복수는 완전했다.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앙갚음하려 하지 말라. 강가에 앉아있노라면 그의 시체가 떠내려오는 것을 보게 되리라. “는 중국 속담이 풍문처럼 전해진다. 하지만 분노는 먹이 없이도 덩치를 키우는 짐승이다. 강가에 앉아 기약 없이 익사체를 기다리다가는, 그 짐승에게 잡아먹히는 수가 있다. 원수의 등에 칼이라도 한 번 던져 넣는다면, 분노라는 짐승을 조금은 야위게 할 수 있겠지.

 해서 나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경우에 복수를 추천한다. 복수가 늘 복잡할 필요는 없다. 어느 영화의 주인공처럼 긴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복수가 있는가 하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 몇 마디로 끝나는 간편한 복수도 있는 것이다. 당한 만큼 갚아주는, 같은 악행으로 무게 평형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에게 바통을 넘기고 나는 평화에 안착하는 것. 내가 아니라 상대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도록, 나의 불안을 상대에게 넘기는 복수를 해야 한다. 우리는 인생에서 마주치는 모든 원수들에게 그런 복수를 반드시 한 번은 시도해보아야 한다.


- 복수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바라는 M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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