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교실에서 알림장 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늦게 끝났어요. 방과 후를 안 할 거라 생각하고 집으로 왔어요. 방과 후 선생님에게 연락이 와서 다시 학교로 갔어요.
(꺼내지 못한 말: 아니, 수업 늦게 끝난 거랑 방과 후 수업이랑 무슨 상관이야?)
나: 2천원은 왜 가져간 거니?
아들: 친구들이 돈이 있으면 관심을 가져요. 와! 너 얼마 있구나!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저도 가지고 갔어요.
(꺼내지 못한 말: 그것 때문에 돈을 가져갔다고?)
나: 친구는 집으로 왜 데리고 온 거니?
아들: 친구가 태권도 학원 가는데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우리 집으로 가서 놀자고 했어요. 조금만 놀고 친구도 학원 간다고 했어요.
(꺼내지 못한 말: 놀이터에서 놀면 되는데, 왜 집으로 데려온 거지?)
나: 친구랑 뭐하고 놀았어?
아들: 누나가 혼 내서 집 안으로 못 들어왔어요. 옥상에 숨어 있었어요. 친구가 아파트 사는데 우리 집 옥상에 올라가보고 싶다고 해서 옥상에 같이 앉아 있었어요.
(꺼내지 못한 말: 옥상에서 숨바꼭질 놀이하고 있었구나!)
역시 일학년 아들답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들 입장에서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일학년이라면......
잘못한 것이 없다고 했다. 대신 몇 가지를 일러두었다.
앞으로 친구를 집에 데려오고 싶으면 엄마아빠누나의 허락을 미리 받아야 해. 누군가 갑자기 집을 방문하면 매우 당황스럽단다. 돈은 학교에 가져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친구들의 관심은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얻을 수 있으니까. 이런 방법은 좋은 방법이 아니야. 돈을 꼭 가져가야 한다면 언제든지 말해 줘.
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땀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눈물인지 땀인지 구분이 안 간다.
그리고 꼭 안아주었다.
갑자기 아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마음이 여린 사랑하는 우리 아들.
"아들! 얼른 짐 챙겨서 낚시 가자."
초등학교 시절, 나는 낚시광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을 팽개치고 마을 뒷산으로 올라갔다.
곧게 뻗은 가볍고 잘 휘어지는 대나무를 찾아 다녔다.
맘에 드는 대나무를 찾으면 전광석화처럼 톱질을 했다.
대나무에 톱을 대는 순간, 임자가 되었다.
우리 동네 룰(rule)이였다.
먼저 곁가지를 부러뜨리고 이파리를 떼어 낸다.
그리고 대나무 끝 마디에 낚싯줄을 연결하고 봉돌과 바늘을 매단다.
봉돌이 없으면 적당한 돌맹이를 구해서 칭칭 감는다.
내가 낚싯대를 만드는 방법이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내 키의 3배 쯤 되는 대나무 낚싯대를 질질 끌고
동네 형들이 모여있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큰 물고기가 잘 잡힌다고 알려진 곳에 걸터앉아 낚싯대를 올렸다 내렸다 수도 없이 반복했다.
엄마가 하품을 하며 데리러 올 때까지 낚시는 계속되었다.
요즘 시대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이야기.
저녁이 되면 문제집을 질질 끌고 학원으로 향하고
점수 잘 올려준다는 인기 강사 앞에 앉아 이 문제를 풀었다 저 문제를 풀었다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공부 공부 공부
불쌍한 아이들.
낚시는 어린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기쁨보다는 좌절이 많았다. 물고기를 못 잡는 날이 훨씬 많았다.
좌절이 연속되어 포기하려고 할 때면 기쁨을 슬쩍 주었다.
희망이라는 것을 품게 해 주었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해 주었다.
기다림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고 지루함을 견딜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해 주었다.
주변 사람들의 좋은 점을 눈치껏 따라 배웠고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구하는 방법도 습득했다.
최고가 되기 위해 부단히 연구하고 연습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도 혼자 낚시를 나가곤 했다.
선착장에 걸터앉아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대나무를붙잡고 있었다.
그런 날이면 왠지 큰 물고기를 나에게 올 것 같았다.
20대 초반, 섬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다.
어두웠던 내 마음 속에 사랑하는 이들이 별처럼 떠오를 때면 허공에 대고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이지 않는 글씨를 쓰곤 했다.
외로움이 막 밀려와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밤이면 낚싯대를 들고 바닷가로 나갔다.
바다가 내 친구가 되어 주었다.
물고기들이 내 친구가 되어 주었다.
이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그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힘들 때면 바다를 찾는다. 낚싯대와 함께.
요즘 나, 사실 많이 힘들다. 겉으로는 잘해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딱히 어려운 점도, 힘든 점도 분명 없는데.
그동안 많이 지친 것 같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도 많이 힘들 것이다.
놀고 먹고 자고 놀고 먹고 자고 그렇게만 살면 좋을 텐데.
아직 일학년인데, 기억해야 할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지켜야 할 것도 많고... 참 어렵다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