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9.
아들이 일기를 쓰고 있다. 딸도 일기를 쓰고 있다.
둘 다 아침에 일어난 일에 대해 쓰고 있다.
나도 그 일에 대해 일기를 같이 써 볼까?
2024년 2월 9일
제목: 그것이 알고 싶다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사실 더 자고 싶었다. 그런데 아들과 딸이 달콤한 잠을 방해했다. 이불이란 이불은 모두 모아 날 덮었다. 베개를 그 위에 올렸다. 거실에서 빈백 4개를 가져와 그 위에 또 올렸다. 마지막으로 인형들을 올렸다. 숨이 막혀 잘 수가 없었다. 이불속에서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1번. 혼내 준다.
2번. 계속 자는 척한다.
3번. 아이들과 똑같이 장난친다.
"이놈들."
3번을 선택했다. 소리를 꽥꽥 지르며 아이들이 도망갔다. 끝까지 쫓아가는 척을 했다. 아이들은 방문을 잠그고 옷장으로 숨고 난리가 났다.
나도 숨었다. 다시 이불속으로. 2번을 선택했다. 꽤 오랜 시간동안 인기척이 없자 아이들이 다시 거실로 나왔다. 엄마에게 아빠 어디 갔냐며 물었다. 아빠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며 여기저기를 찾았다. 안방 문을 조심히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이불 쪽으로 다가왔다.
(벌떡 일어나) "이놈들."
아이들이 깜짝 놀라 부리나케 도망갔다. 이번에도 끝까지 쫓아갔다. 아이들은 방문을 잠그고 이번에는 더 깊숙이 꽁꽁 숨었다.
1번이 남았다. 오랜만에 연기 실력을 발휘했다. 목소리를 바꾸고 아이들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장난이라 생각했는지 아이들이 꿈쩍도 안 했다. 단호함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아이들 이름을 크게 다시 한번 불렀다. 눈치 빠른 첫째 아이가 심각함을 느꼈는지 방문을 살짝 열고 거실을 내다보았다. 이 때다! 온몸을 이용해 한 숨을 크게 내뱉었다. 첫째 아이가 걸려들었다. 눈치를 살피며 거실로 나왔다. 아들 방에 들어가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더니 아들까지 데리고 나왔다. 눈치 없는 아들은 내 표정을 살피며 웃을까 말까 결정을 못 하고 있다.
"아빠, 죄송해요." 큰 딸이 말했다.
"아빠, 죄송해요." 아들도 누나 말을 복사해서 말했다.
(순수함과 진지함이 동시에 묻어나는 말투로)"뭐가 죄송한데?"
논리적인 딸은 조목조목 잘못을 짚었다.
비논리적인 아들은 자기도 모르는 말을 했다. 말이 막히면 눈물로 말하려고 했다.
"그래? 아빠는 그냥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불이랑 빈백이 너무 무거워서 숨이 잘 쉬어지는지 연습 한 번 해 봤어. 다행히 잘 쉬어지더라고. 그러니까 걱정 마. 너희들 이름을 두 번이나 부른 건 아침 먹자고 부른 거야."
다시 3번으로 돌아왔다. 눈치 빠른 딸은 웃을까 말까 결정을 못 하고 있었다. 눈치 없는 아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누나! 내 말이 맞았지? 아빠 화 안 났다고 했잖아. 괜히 누나 때문에 죄송하다고 말했잖아. 눈물 나올 뻔했네. 아빠는 이런 걸로 화 안 내. 누나는 아직도 아빠를 몰라?"
아빠를 모르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아들일까? 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