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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왕자 Jan 15. 2024

불멸의 순간

2024.01.14.

#1


작은 영화관을 찾았다. 

나는 언제부턴가 작은 것들을 좋아한다. 

작은 카페, 작은 마트, 작은 집, 작은 꿈...

작은 것들을 찾아다니고 작은 삶을 살려고 한다.

작은 것들 중에 가장 아끼는 것은 아내이다.

아내는 키가 작다. 아주 작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작은 것은 아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를 봤다.

지도자의 품격에 대해 생각했다.

마음이 아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얼마 전 노벨평화상 기념관에서 본 김대중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대중, 그 불멸의 순간

이순신, 그 불멸의 순간


시대는 다르지만, 모습은 다르지만

국민을 생각하는, 백성을 생각하는 그 우물같은 마음은 

영원히 내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불멸의 사나이들이여!

당신들 같은 지도자를 언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나라에 큰일이 나면 어디로 달려가야 합니까

우리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 것입니까




#2


딸의 열 번째 생일이다. 

커가는 모습이 자랑스럽고 또 아쉽다.

모든 순간이 그렇다.


나랑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아이.

나랑 말이 가장 잘 통하는 아이.

내 마음을 미리 헤아리는 아이.

내 수고를 덜어주는 아이.

엄마보다 아빠를 좋아하는 아이.

지혜롭고 따뜻한 아이.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똑똑하다고 믿는 아이.

처음으로 엄마를 이해하게 해 준 아이.

처음으로 엄마를 위대하게 해 준 아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


아들 미안하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기억을 지워버려도

가슴속에서 불멸하지 않을 아이. 


뉴스를 같이 보는 사이.

싱어게인 어게인 숫자 맞히기 대결을 하는 사이.

나란히 앉아 책을 보는 사이.

저녁 요리를 함께 하는 사이.

소설책을 함께 필사하는 사이.

고민을 서로 들어주는 사이.

가끔 남을 살짝 헐뜯고 비밀로 약속하는 사이.

그리고 우리가 더 좋은 사람이 되자, 노력을 하자,며 

그 사람의 실수나 잘못을 포근하게 덮어주는 사이.


생일 축하해.

아빠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기뻤던 날이 언제인지 알아? 

너를 처음 만난 날이야.

손바닥으로 널 안으며 얼마나 심장이 두근두근했는지 몰라. 

신기하고 경이롭고 무서웠어.

그런데 이 감정들이 모두 기쁨이었어.

넌 나에게 선물이야. 

나도 너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3


외발자전거를 탄다.

셋이서 탄다.

맨 앞에는 나, 그다음은 딸, 맨 뒤는 아들.

실력 순으로 담장을 꽉 잡고 아슬아슬 간다.


어떻게 타는지도 모르고 덜컥 외발자전거를 샀다.

타면서 알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틀 째 맹연습 중이다.

일단 많이 넘어지라고 했다.

옆으로도 넘어지고 앞으로도 넘어지고 뒤로도 넘어지라고 했다.

처음에는 무서워하더니 이제는 넘어지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다치지 않게 잘 넘어지는 것만 알려주었다.

직접 몸으로 시범을 보여주니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내가 생각해도 슬로 모션으로, 정말 리얼하게 잘했다.


일주일 동안은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고 이것만 하려고 한다.

가끔은 무식함이 필요하다.

무식함 속에서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내 것보다 좋은 방법을 만났을 때, 그것을 더 기쁘게 받아들인다.

누군가의 수고를 너무 쉽게 가져가면 안 되는 법이다.


다리가 후들후들거린다.

계속해서 외발자전거에 오르는 아이들.

계속해서 넘어지는 아이들.


우리는 이게 뭐라고 이렇게 열심을 다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눈으로 사진을 찍는다.

마음에 사진을 담는다.


우리 가족, 그 불멸의 순간


영원히 내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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