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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왕자 Jan 07. 2024

눈탱이 밤탱이 된 날

2024.01.05.

오늘은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식장에서 결국 울었다.

집에 와서 한 학생이 써준 편지를 읽고 또 울었다. 

기분 전환도 할 겸 싱어게인 재방송을 보다 또 울었다. 

하도 울어서 눈탱이 밤탱이가 되었다. 

아직도 눈이 뜨겁고 아프다.




#1 

졸업식 하루 전날,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졸업식날 절대 울면 안 돼. 너희들이 울면 선생님도 울지 몰라."

마음이 특히 여린 서○이, 예○이, 현○한테는

눈에 힘을 주며 단단히 일러두었다.


전체 졸업식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이제 우리 반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나누어주면 정말 끝이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마지막 인사를 해 주었다.

여학생에게는 악수를 건넸고 남학생들은 꼭 안아 주었다.

나보다도 더 큰, 징글징글한 6학년 남자아이들의 품이 참 따뜻했다.

아들처럼 느껴졌다.


현○야~ 현○야~ 

여러 번 불러도 대답이 없다.

느낌이 왔다.

맨 뒷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현○. 

어깨가 계속 들썩인다.

일단 다른 학생들 먼저 졸업장을 나누어 주었다. 


이제 현○만 남았다.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 현○가 나에게로 온다. 

눈이 마주쳤는데 서로 눈물이 쏟아진다.

감정 없는 눈물이 막 쏟아진다.

현○는 알고 있다고 느껴졌다. 

내가 얼마나 맘 속으로 응원하고 응원하는지.


사십 대 남자 선생님이 졸업식장에서 펑펑 울고 있다.

담임 선생님과 추억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나에게로 다가오던,

우리 반 학생들과 학부모님이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닦아가며 추억 사진을 찍었다.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들과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었다.

창피하다.

이제 나는 졸업식날 눈물 쏟은 6학년 담임 선생님,

울보 남자 선생님으로 남게 되었다.


현○야, 앞으로도 선생님은 널 응원할게.

미술과 글쓰기, 절대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


졸업식이 끝나고 여러 건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선생님 괜찮아요?"

"선생님 아까 계속 우시던데, 이제 괜찮나요?"

"선생님이 울고 계셔서 편지도 못 주고 왔어요."

문자들의 공통점은 내가 울었다는 것이었다.


아! 창피하다.  




#2 

집으로 돌아와 우리 반 학생들이 쓴 편지를 읽었다.

한 남학생의 편지를 읽는데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깜짝 놀랐다.

그 학생이 자신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는지 몰랐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이미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노력을 꾸준히 해 오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편지 글을 읽으며 학생의 진짜 마음을 읽게 되었다.

대화와 상담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던 진짜 마음을 보았다.

날 향한 신뢰와 고마움이 진정으로 느껴졌다.

교사로서 가장 큰 성과를 받은 것 같다.

가장 큰 선물을 받았다.

이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할 것이다.


괜찮은 어른의 모습을 끝까지 보여준 나를 칭찬한다.

모두가 실망할 때, 

한 줄기 희망을 찾아 응원과 격려를 보내준 나를 칭찬한다.




 #3 

기분 전환도 할 겸 싱어게인 재방송을 시청하였다.

패자 부활전을 보고 있는데 눈물이 또 쏟아졌다.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절심함이 느껴졌다.

패자 부활전이란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노래를 부를 때 그들은 모두 승리자처럼 보였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들에게도 좋은 날이 분명 올 것이다.


티칭어게인.

나는 절실한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다시 용기를 내어 가르치고 싶다.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쓸모 있는 진짜 교사가 되고 싶다.




오늘은 기쁜 날.

눈탱이 밤탱이 된 날. 

다시 용기를 내어 도전하고 싶은 날.  

간절히 바라고 바랬던 진짜 교사가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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