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2.
냉장고에 우유가 없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딸과 함께 근처 마트로 향한다.
걸어서 간다.
추운 겨울날, 할머니가 수레를 끌고 지나간다.
연인이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걷는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 셋이 장난치며 뛰어간다.
우리도 그들처럼 지나간다.
어떤 아빠랑 딸이 되어.
#1
대파를 고른다. 대파값이 많이 올랐다.
한 단을 통째로 살까, 깐 대파 한 팩을 살까 고민을 한다.
딸이 등 뒤에서 조용히 기다리다, 저 쪽으로 뛰어간다.
우유 두 팩 묶음 가격을 이리저리 비교한다.
진열 냉장고 안쪽까지 들여다보며 제조일자를 샅샅이 확인한다.
우유 네 팩을 품에 안고 끙끙거리며 카트로 돌아온다.
"아빠! 우유값이 많이 올랐어. 유통기한이 가장 긴 걸로 골라왔어."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마음이 흔들린다.
#2
마트 앞 꽈배기 가게가 보인다.
동생이 꽈배기를 좋아한다며 자꾸 이야기를 한다.
딸도 먹고 싶은 모양이다.
아들 것까지 3개를 주문한다.
주인아주머니가 뜨끈뜨끈한 꽈배기에 설탕을 뿌린다.
군침이 돈다.
포장된 꽈배기를 오른손에 받아 들고 집으로 향한다.
왼 손에 들고 있던 무거운 장바구니를 누군가 몰래 가져간다.
조막만한 두 손이 장바구니를 들고 간다.
너무 무거운지 바닥에 내려놓더니 온몸으로 끌어안는다.
끙끙거리며 끌고 간다.
"고마워. 그런데 이건 너무 무거우니까 아빠가 들고 갈게."
"아빠가 맨날 무거운 것 혼자 드니까 도와주고 싶었는데..."
마음이 흔들린다.
#3
버스정류장 옆 벤치에 앉아 잠깐 쉰다.
꽈배기 하나를 꺼내 딸에게 건넨다.
"지금이 뜨끈뜨끈, 가장 맛있을 때야. 먼저 먹어도 돼."
"집에 가서 같이 먹을게요. 혼자 먹으면 심심하잖아요."
마음이 심하게 흔들린다.
나는 왼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간다.
딸아이는 오른손에 꽈배기를 들고 간다.
나의 오른손과 딸아이의 왼 손은 서로를 잡고 간다.
서로의 마음을 붙잡고 간다.
우유 사러 잠깐 나왔을 뿐인데,
마음이 세 번 흔들렸다.
어릴 적 자주 불렀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내 마음 깊은 속에서 천천히 울러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