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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왕자 Dec 25. 2023

나, 이제 괜찮아졌어요

이런 글을 쓰게 되어 행복합니다.


나, 이제 괜찮아졌어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보였을 거예요.

언제나 잘 웃고 뭐든지 잘해나가는 그런 사람으로 보였겠죠.


어느 순간부터였는지는 모르겠어요. 꽤 오래되었어요.

아이를 돌보고 기르는 일 때문에 쌓였던, 쌓이고 있는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힘듦이 있었어요.

정확이 말하면 육아 때문이 아니라,

육아를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맞는 것 같아요.

더 정확히 말하면

육아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어요. 당연히 해야 하는 거니까요.

누구든 겪는 일이니까요.

나만 특별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 어찌할 수 없는 힘듦이 날 공격해도,

날 짓밟아도 가만히 맞고만 있었어요.

상처가 생기고 곪아 썩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첫 번째 아빠 육아휴직을 했어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난 요리도 잘하고 정리도 잘하고 엄청 계획적이거든요.

하지만 육아는 이런 것들을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어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지쳐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어요.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치고. 너덜너덜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어요.

아이를 보면 행복해서 눈물이 나는데

뒤돌아서면 외로워서 눈물이 났어요.

아이에게 화를 내다 미안해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어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엄마들의 세상을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엄마들은 대단하다.

우리 엄마는 더 대단하다.

아!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나는 인내가 부족하고, 

나는 지혜가 부족하고,

나는 사랑이 부족하다.


좋은 남편이 되기에는, 

좋은 부모가 되기에는,

좋은 사람이 되기에는 한참 멀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어요. 그때부턴 힘들어도 잘 견뎠어요.

힘들수록 더 열심히 했어요. 더 잘하려고 했어요.

아이를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복직을 해서도 최선을 다해 육아에 동참했어요.

(물론 직장에서도 최선을 다해 일했어요.)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도 집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아내를 자주 떠올렸어요.

퇴근하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어요.

조금이나마 아내에게 쉼을 주고 싶었어요.

회식이나 모임, 사적인 만남도 거의 갖지 않았어요.

스스로 사회적인 고립을 선택했어요.

아이를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그리고 두 번째 육아휴직을 했어요.

(우리에게 사랑스러운 둘째가 찾아왔어요.)

이번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경험이 있다 해도 여전히 쉽지 않았어요.

시간이 갈수록 또 점점 지쳐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어요.

아이를 보면 분명 행복해서 눈물이 나는데

뒤돌아서면 또 외로워서 눈물이 났어요.

이전의 깨달음을 또 깨닫게 되었어요.

나는 조금 성장했는데, 여전히 한참 멀었어요.




또 복직을 하고, 또 최선을 다해 육아에 동참했어요.

사회적 고립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어요.

나의 시간은 대부분 가족을 위한 것이었어요.

아이들 옆에는, 아내 옆에는 늘 내가 있어야만 했어요.


주변 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말했어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아?"




생각해 보니, 바보처럼 살았네요.

진짜 바보처럼.

오롯이 나를 돌볼 시간이 없었어요.


어느 날, 낯선 내가 찾아왔어요.

아! 힘들다.

아! 쉬고 싶다. 

그만하고 싶다.

육아도, 직장일도 아! 아!

그냥 혼자이고 싶다.




다른 사람에게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나.


나는 지금껏 언제나 강해야만 했어요.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방법이었어요.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방법이었지요.

그런데 그것이 결국 나를 지키지 못했어요.


나는 아내에게 약해지기로 했어요.

가끔 투정도 하고 짜증도 내고 눈물도 보였어요.

나는 아이들에게도 약해지기로 했어요.

실수도 자주 하고 깜빡도 자주 했지요. 힘들면 힘들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부모님에게도, 주변사람들에게도 약해지기로 했어요.

가끔 실망도 안겨드리고 거절도 했어요.


나는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는 약해졌어요.

하지만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나를, 사랑하지 못했던 나를,

더 아끼고 더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것이 더 강해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어요.




겁이 많은 아내는 마흔이 되어 운전을 배웠어요.

나를 위해 큰 도전을 했어요.

나를 대신해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으로 공원으로 마트로 삐뚤빼뚤 가요.

고마운 아내.


아빠가 없어도 아이들은 스스로를 돌봐요.

집에서 혼자 놀기도 하고 책도 읽고 간식도 잘 먹어요.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일들을 척척 잘 해내요.

둘이 있을 때는 서로를 잘 챙겨요.

숙제도 도와주고 리코더도 함께 불고 비밀도 잘 지켜줘요.

서로에게 아빠만큼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빠! 무서워." 대신 "아빠! 우리도 할 수 있어요."

"아빠! 얼른 오세요." 대신 "아빠 천천히 조심히 오세요."

나를 위해 큰 용기를 내고 있는

고마운 아이들.


어렵습니다. 못 하겠습니다. 싫습니다.

때론 완곡하게, 때론 단호하게 거절을 해도

여전히 부모님과 주변 동료들은

나를 신뢰하고 아껴주고 있어요.

고마워요.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해요.

하지만 가끔 나를 돌봐요.

혼자 낚시를 가고 

동료들과 회식도 하고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나누고

도서관 구석에서 독서를 하거나 

이렇게 늦은 밤에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남기기도 해요.


나, 이제 정말 괜찮아졌어요.

정말.


내가, 다시 나를 응원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누군가 나를 지켜주고 있어요.

보이지 않아도 이제 볼 수 있어요.


하루하루가 선물이에요.

오늘도 좋았고, 내일이 기다려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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