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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Apr 06. 2024

매드 정체성에 대하여

모하메드 아부엘레일 라셰드_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이달에 연달아 읽기를 완료하게된 오월의봄 출간 책들이다.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는 광기에 있어 당사자의 요구나 목소리가 경청되지 않고, 병리적으로만/비정상적으로만 취급 받아옴에 대한 문제제기와 다른 대화방식과 관점, 다양한 대항서사를 제안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매드 운동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매드 운동은 광기를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세대 등과 같은 사회적 범주이자 우리의 정체성과 경험을 정의하는 역량으로 다루고자 한다. 이 책은 회의론자와 지지론자의 사이에서 화해를 위한 ‘다른 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매드 정체성의 가능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을 하게 하고 열리게 하고자 한다. 책을 읽으며 많은 경우 ‘약물‘, 거부 운동 등에 대해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는데(실제 사례, 사건, 경험들로 같이 읽는 이들과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후반부로 가고 책을 다 읽고나자 내가 어렵다고 고민했던 부분은 사실 중요한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치료 받을 수 있고, 약도 먹을 수 있다. 문제는 잘못된 것이라 확정하고 약을 먹어야만 하고 ’정상‘이 되려 노력해야 한다며 한쪽의 답을 정하고 기준을 구획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우리 모두 전혀 무관하게 자유로운 이들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좋든 싫든 관련이 되어 있다. 그것을 부정적으로 기인하게한 것의 문제를 찾고, 언어와 인식 그리고 인정에 대해 재설정을 하자. 그러기 위한 대화를 나누자. 내게 페미니즘이, 퀴어이론이 그러했듯 매드 서사가 많은 생각과 이어갈 고민과 좋은 공부가 되었다. ‘정상’이라는 것, ‘인간’은 무엇인지, 규범과 기준은 누가 만들었으며 그것들의 설정 기준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거 재구성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매드 서사가 우리에게 주는 흥미와 배움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도움이며 다행이다.


”광기의 언어와 텍스트는 억압의 언어를 전복시키고 폄하된 정체성을 되찾으며, 차이에 대한 존엄과 프라이드를 복원한다.“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광기와 인정에 대한 철학적 탐구>, 모하메드 아부엘레일 라셰드 지음, 송승연•유기훈 옮김, 오월의봄


p9 우리는 어떤 집단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보호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외에도 또 다른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어떤 집단에 속하게 된다는 것은 곧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 신념 등을 상호적으로 승인받을 수 있는 맥락을 확보하는 것이다.


p21-22 치료 행위 혹은 서비스 개선에 초점을 두었던 기존의 노력들과 매드운동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매드운동이 광기에 대 한 존중과 인정을 주요 의제로 삼는다는 것이다. 매드운동은 당사자들의 정체성이 공개적으로 표출되고, 가치 있게 여겨질 수 있는 모든 방식에 초점을 둔다. 반면 광기에 대한 지배적이고 환원적인 관점은 광기를 마음의 질병으로 바라보며, 그런 관점 속에서 미쳤다는 것은 통상 긍정적인 정체성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된다. 매드운동의 중요한 목표는 정신의학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물론 이 또한 매드운동의 의제 중 하나이기는 하다), 광기를 바라보는 관점에 문화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p38 푸코에 따르면, 일단 광기가 의사들에게 위임되어 정신질환으로 인식되면 더 이상의 대화는 불 가능해진다. 즉 정신의학의 언어는 "광기를 향한 이성의 독백"이 되며, 그 과정 속에서 광인은 침묵하게 된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의 역사는 이 침묵을 깨고, 광기를 향한 의료적 독백에 저항하며, 사회에서의 실격과 차별에 대항하기 위해 다양한 집단을 구성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모색하는 지속적인 시도로 볼 수 있다.


p50-51 정신과 환자의 해방운동은 옹호 활동이라는 전선에서 기준의 정신의학을 종식시키려 했다. 강제입원 및 강제치료를 폐지하고, 선택과 동의의 자유를 가장 최우선에 두었으며, 환원주 의적인 의료 모델을 거부하고, '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포함해 정신과 환자가 갖는 완전한 권리의 복원을 주장했다. '정신질환자에게 내재된 위험성'과 같이 미디어에서 송출하는 부정적인 인식에도 대항했다. 옹호활동 외에도 자조단체, 지원센터, 쉼터 등 수평적이고 강제성을 띠지 않는 형태의 대안들이 정신의료 기관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들의 활동 목적은 정신적 고난에 처한 사람들에게 지원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과 환자도 자립적으로 살 수 있으며, 정신의료기관 밖에서 자신의 삶을 관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립하는 데 있었다. 환자경험자들이 이런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자신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급진적인 전환을 도모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전환을 이들은 의식화라고 불렀다.


p51 정신과 환자의 해방운동에서 의식화는 '정신의료 시스템'의 핵심 가설, 즉 누군가는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고, 그들에게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의료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가설 자체를 해체했다.


p57-58 생존자 담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아납았다는 것은 다양한 총위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존자들은 정신의료 시스템 안에서 발생하는 강제구금에서 살아남아야 했으며, 파괴적이고 무용한 치료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사회 안에 존재하는 차별과 낙인에서 살아남아야 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정 신적 고난과 괴로움 (타자에 의해 ‘정신질환'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여러 경험)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생존자들은 강제적으로 부여받았던 ’환자' 정체성을 버림으로써, 자기정의를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갔다. (… 중략…) 생존자 정체성의 핵심은 생존자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데 있다. 즉 사회나 정신의료 시스템이 무시하는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p66 정체성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방식이며, 그 이해는 항상 기존의 집단 범주에 이끌린다. 즉 정체성은 그런 범주들과의 어떤 관계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다. 매드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광기와의 어떤 관계 속에 자신 을 위치시키는 것이며, 마오리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마오리 문화와의 어떤 관계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다.


p68 매드운동은 당사자에 대한 억압 및 낙인, 부당한 대우라는 공유된 경험에서 출발하며, 생의료적 언어를 거부하고 '매드'라는 언어를 되찾아 오고, 종국에는 기를 긍정적인 것으로 발전시킴으로써 '매드 정체성'으로 나아간다.


p72-73 매드 프라이드 담론의 핵심은 광기에 대한 관점의 변화에 있다. 광기를 질환으로 바라보는 관습적인 이해에서 광기가 정체성과 문화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관점으로 전환하는 것이 매드 프라이드의 중요한 핵심을 이룬다.


p119-120 집중력 저하, 불안, 편집증, 사회적 관계의 위축 등은 심각하거나 독특한 방식의 차별을 초래하지 않을 만한 평범한 경험이다. 가령 수면 부족, 시차로 인한 피로감, 또는 숙취의 괴로움 등을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경험에 익숙하고,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관대하게 수용할 수 있다. 반면 광기의 경우, 광기와 관련된 경험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불신을 일으키며 특별한 어려움을 야기한다. 어떤 사람이 술을 많이 마셔서 불안해하거나 편집 증적 경향을 띠게 되는 것은 어떤 목소리를 들어서 그렇게 되는 것 혹은 정부 기관 혹은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박해받고 있다는 두려움을 품는 것과 같지 않다. 환각이나 망상에 의거한 후자의 현상들은 추가적인 설명 없이는 대체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 으며, 이해 불가능한 현상이라는 전제 속에서 당사자는 일종의 실격과 불신을 겪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적 어려움을 경험 했던 사람들을 위해 좀 더 수용적인 환경을 만듦으로써 그들의 독특한 특성과 차이를 존중할 수 있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구축 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을 마주할 때, 우리는 어떤 한 사람이 겪는 제약의 주된 원인을 편의제공 및 사회적 조정이 구축되어 있지 않은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있는 그 개인에게서 비롯되는 것으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 이 지점에서 중요하게 부상하는 개념이 바로 이해 가능성이다.


p138-139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에 대한 이해를 형성하며, 우리는 그것을 정체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이해는 타자에 의해 적절히 인정될 수도 있지만, 타자에 의해 오인될 수도 있으며, 전혀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어떤 사람의 정체성은 올바른 방식에 따라 사회적으로 가시화될 수도 있지만, 자기가 자기 자신을 보는 방식과는 다르게 가시화될 수도 있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전혀 가시화되지 않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p287-288 이때 사회적 문화가 반드시 시간적으로 고정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누세아인 문화는 '누비아인‘으로 날아 있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할 수 있다. 또한 사회적 문화는 특정 사회적 문화공동체에 속하는 모든 구성원이 자신들의 문화를 정의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러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지, 어떤 신념과 관행이 중요한지에 대해 동의해야함을 뜻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문화는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지 않다. “문화 주변에 빈틈없는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실제로 사회적 문화는 밀폐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공동체와의 접촉을 통해 변화할 수 있고, 더욱 융성할 수도, 혹은 붕괴될 수도 있다. 나는 사회적 문화의 핵심적인 측면이 지속성, 공유성, 포괄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사회적 문화는 내가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고, 사회적 문화를 공유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이는 사회적 삶의 근본적인 측면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사회적 문화는 독립적 측면을 지니기에, 누군가는 사회적 문화의 일부가 될 수도 있고, 그로부터 소외될 수도 있으며, 사회적 문화에 의해 거부되거나, 반대로 그것을 거부하는 등 사회적 문화와 관계 맺는 데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그렇다면 광기 역시 이런 사회적 개념에 따른 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까?


p294 우리는 매드문화와 농문화가 지니는 여러 공통점을 발견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농인처럼, (적어도 영어권 세계에서는) 매드로 자신들을 식별하는 사람들은 일련의 연결된 역사적 서사,

"정신장애차별주의와 정신의학의 강압적 대우에 대한 저항, (목소리, 일반적이지 않은 믿음, 극단적 기분 등의) 현상학적 경험을 통해 하나로 단결한다. 또한 광인들은 독특한 예술과 문학을 만들어내는 전통을,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것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광인은 농인과 달리 언어적 공동체를 형성하지 않으며, 이것은 광기가 하나의 문화를 구성 할 수 있다는 생각의 설득력을 약화한다. 한 가지 대안이 있다 면, 광인 당사자들을 더 나은 번영의 기회를 창출하고자 그 자 신이 살아가는 포괄적인 문화적 맥락을 바꾸기 위해 결속하는 주체들로 바라보는 것이다.


p305 나는 이를 변형해 사람들은 '각자의 정체성의 타당성과 가치에 대한 상호인정이 가능해질 수 있는 화해적 태도로 서로를 마주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그리고 한 개인이 가진 정체성이 항상 다양한 집합적 범주에 근거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에 대한 인정은 해당 집합적 범주에 대한 인정과 뚜렷하게 분리될 수 없다(4강의 ‘사회적 정체성과 개인적 정체성의 관계' 절 참고). 즉 어떤 개인의 정체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소 수문화를 보호하고 장려해야 할 수도 있다.


p308-309 ‘매드 정체성'이라는 표현은 광기를 병리화하지 않는 대항 서사에 해당하며, 당사자들이 견지하는 자기이해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이때 어떤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을 '매드'로 지칭하는지 아닌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매드 정체 성을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광기를 가능한 정체성 중 하나로 간주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A 트리에스테는 이 핵심을 잘 표현했다. “광기는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세계를 경험하는지에 대한) 나의 정체성의 한 단면이지, 나와 분리되어 있는 별개의 질환이 아니며, 내가 치료하길 원하는 '증상'의 집합체도 아니다." 트리에스테의 이 구절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광기가 정체성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p314-315 사람들은 특정한 집단 범주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그 범주와의 관계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하게 된다. 또한 사람들은 특정 범주를 거부하고 새로운 범주의 측면에서 자신을 이해하려고도 한다.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 범주를 지지하면서도, 그 범주의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바꾸려고 노력할 수 도 있다. 정체성과 관련한 이런 성찰들은 오늘날 정체성을 둘 러싼 문제의 바탕을 이룬다. 즉 정체성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변할 수 있다. 과거의 다른 시대에서는 불가능했을 방식으로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활발히 일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p363 7강에서는 세 가지 중 첫 번째 요건에 초점을 맞췄다. 인정을 요구하는 정체성 주장은 원칙적으로 해당 개인이 정체성 형성에 기반을 두는 집단 범주를 사회적•정치적 운동을 통해 수정함으로써 해결 가능한 착오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 로 그것이다. 즉 인정을 요구할 수 있는 정체성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체성이어야 한다.


p447 이런 점에서 우리는 매드 프라이드 담론이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인간적인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재구축하고 있다"는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즉 매드운동의 요구가 해결되는 과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며, 내면의 깊고 심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매드 정체성 인정에 대한 요구가 규범적 정당성을 갖는지, 사회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해결할 의무가 있는지의 질문에 달려 있다.


p450 화해를 이루기까지는 타인에 대한 수용의 과정이 필요하며, 서로가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맥락과 서사 속에서 개인 대 개인의 조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처럼 화해는 결과이자 태도이다. 그러나 5장의 <5. 무시에 대한 대응: 정치적 개혁과 화해의 역할>에서 언급했듯, 화해의 결과는 강요되거나 무조건적으로 보장될 수 없으며, 화해의 태도를 통 해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을 따름이다. 이때 화해의 태도란 세계 속에서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타인의 역량이 나의 그 역량 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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