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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May 13. 2024

유년은 ‘시절’이 아니라는 말

박연준_여름과 루비


시인의 첫 소설을 읽었다. 사실 시인의 시(시집)보다는 그의 에세이를 읽었다가 그의 첫 소설을 읽게 되어 나는 그의 시를 혹은 그의 시와 이 소설을 연결하며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럴 재주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가 없는 것인데, 그럼에도 그의 첫 장편소설은 시와 같이 흘러서 마음이 움찔하기도 하고, 찌르르 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일곱 살 여름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에세이는 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 들었다. 나에게도 어떤 추억이나 기억이 없을 리 없겠으나 일곱 살 여름이 바라보고 쓸 수 있었던 슬픔의 아름다움, 아름다운 슬픔에 대해 지금의 나는 쓸 수가 없다. 역설적이게도 일곱 살의 나 역시 결코 쓰지 못했을 이야기를 나는 이렇게 평생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일곱 살 여름과 루비를 생각한다. 여름과 루비를 떠올려본다. 여름과 루비를 바라본다. 그 시절 우리는 무엇으로 가까워지고 무엇으로 질투에 마음이 요란해지고 무엇으로 멀어지는가. 나 역시 온갖 경계에서 쉽게 아래에 자리하게된 루비가 되지 않기 위해, 루비이지 않기 위해 나를 방어하며 움츠림을 숨기며 나아가 루비를 방치하는 어떤 아이이며 살아나갔을 것이다. 그런 유년은 어떤 날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어떤 날 잔잔한 물결처럼 머물기도 한다.


우린 너무 어렸고, 무엇이 놀림이 되는지도 모르면서 따돌리거나 따돌려졌다. 그런 경계와 구분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그 시절 어린이의 자유와 마음과 흐름을 방해하거나 어딘가에 꽂아버리거나 무성한 수군거림으로 가득 채웠던 어른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정말 사라졌을까. 나에게는 그 어른이 없나. 가득 채워졌나.


한때의 시절로 끝나지 않고 지치지도 않고 돌아오고 말아 현재를 헤집어 놓는 유년을 가진 여름과 루비와 같은 이의 곁에 머문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여름과 루비>, 박연준 장편소설, 은행나무


p12 주로 고모가 불렀다. 여 름! 여름! 이름이 불릴 때마다 아무때고 불리는 여름은 물론, 여름이 아닌 계절들까지도 긴장했으리라. 나는 녹지 않는 여름이었다. 녹을 기회가 없었다.


p15-16 나중에, 그건 내게 엄마가 없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피아노,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 피아노를 가르치는 사람,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할 수 있는 사람보다 더 우선해 있어야 할 건 엄마였다. 엄마가 있어야 아이 이름으로 무언가가 생길 수 있다. 그걸 몰랐으므로 나는 오래, 기다리기만 했다.


p17 고모가 미간을 찌푸린 채 하나로 높이 묶은 머리를 풀어 찬찬히 다시 묶거나 피아노 앞에 앉은 아이의 손목을 째려보면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소리 없이 말이 오가는 현장. 고모는 말하지 않음으로 말하는 법을 알았다. 아이들은 그런 식의 말을 어른들보다 더 잘 알아듣는다.


p80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유년이 시절이라는 것. 유년은 '시절‘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 컸다고 착각하는 틈을 비집고 돌아와 현재를 헤집어놓는다. 사랑에, 이별에, 지속되는 모든 생활에, 지리멸렬과 환멸로 치환되는 그 모든 숨에 유년이 박혀 있다.


p140 그 시절 이름 없이 흘러가던 여자들에겐 '옅은 분노'가 있었다. 분노는 생활을 움직이게 하는 연료와 같아서 그들은 분노를 노 삼아 앞으로 나아갔다. 소소한 억울함. 미간에 모이는 불편한 기억들, 그런 게 없었다면 그들은 고인 채 썩어갔을지도 모른다. 분노는 그들에게 힘이자 밥, 때로 날개처럼 보였다


p198-199 나쁜 타이틀은 자의적으로 딸 수 있는 게 아니다. 타자가 준다. 막무가내로, 몸 여기저기에 얹어두고 찔러두고, 끼얹는다. 루비는 점점 더 지저분해졌다. 모든 면에서. 나는 루비와 다를 게 없었지만 (정말이다) 항상 더 나은 대우를 받았다. 학교에서 말이다. 아이들의 사회 생활은 모두 운 소관이다. 운이 좋아서, 가진 게 많아서, 잘 숨겨서, 튀지 않아서 무사할 수 있거나 없다. 루비는 온갖 ‘경계’에서 쉽게 아래에 자리한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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