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여름_스피드, 롤, 액션!
친구에게 선물받았던 소설책을 읽었다. 비소설에 조금 어려운 책들을 연달아 읽어야 할 이 달에 쉬어가는 마음처럼. 아, 좋은 읽기였다. 비록 우린 헤어졌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머물던 곳으로 각자 잘 돌아간 것이니까 슬프지 않다. 기억은 지워졌지만, 함께했던 14일의 시간은 몸 어딘가 남아 앞으로의 ‘우리’ 삶에 영양분이 분명 되어줄 테니까. 뭉클한 마음으로 읽었다. 친구 덕에 처음 만난 연여름 작가의 <스피드, 롤, 액션!>은 나에게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스피드, 롤, 액션!>, 연여름 장편소설, 자이언트북스
p66-67 넘치는 정보 속에 원하는 답은 없었다. 이 답을 아는 사람 이 세상에 존재하긴 할까? 분명 여기서 시간이 멈추지 않는 한 반드시 결말은 있을 텐데, 없을 수가 없는데. 답답했다.
새삼스레 시나리오 쓰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는 반드시 마지막 신이 있고, 러닝타임은 영원하지 않으니 언젠가는 끝난다. 작가는 그 끝을 내야만 한다. 다만 그 마지막이 어떤 장면이 될지 써 넣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을 뿐이다. 미리 정해둔 엔딩이 있다 해도 방심하면 안 된다. 막 상 쓰다보면 전혀 다른 길에 들어서 헤매기도 하고, 예상치 않았던 낯선 결말에 가닿기도 하므로.
p131 전부 다른 시간에서 왔지만 하나의 냄비로 끓인 라면을 함께 먹고, 한데서 구르며 깨끗해진 옷을 서로 나누어 입는 시간으로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p152 보리는 조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엉덩이가 욱신거려서도, 은표의 독설에 뼈가 시려서도, 사과 한마디 없이 결국 가버려서도 아니었다. 그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어마어마한 통증을 감수하고 바깥으로 나와 곁에 서 있어준 회색사와, 차가운 바닥에서 그만 일어나 함께 들어가 자고 손을 내밀어준 율 때문이었다.
p164 “그래서 말이야. 나는 이 겨울을 여러분으로 기억하려고. 엎어진 영화와 상처를 준 은표가 아니라. 일종의 과감한 편집이지. 아니면 세 사람에게만 집중한 클로즈업이라고 할까."
세제 거품을 닦던 율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러니까 너도 지금을 카운트다운이라기보다는, 신나는 러닝타임으로 살면 어때?"
p206 “그 고통이나 부담을 내가 다 이해하기는 무리겠죠."
보리의 말에 쿠리는 낮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해는 환상이야, 감독. 살아 있는 존재라면 그저 발견을 멈추지 않을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