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름_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지난달에 읽은 권여름 작가 소설은 읽은 이들이 모두 처음 이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것이었다. 모두가 술술 잘 읽혔던 공통점에 몇 친구들이 무척 좋아하여 이 작가의 다른 책도 읽기로 하여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란 소설을 읽게 되었다. 여성만의 그리고 모든 여성의 일은 아니겠으나, 많은 여성들의 경우 이 단어와 무관한 삶을 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다. 이. 어. 트. 나 역시 자의 타의 뒤섞여 그러했고, 지금이라고 완전히 무관하다 할 수 없는 삶이다. 극단적인 단식원 이야기라 여기는 건 내 경험이 없어서일 것이고, 어쩌면 이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지극히 평범할지도 몰라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몸’. 쓰고 싶은 말들이 많은가. 무언가 생성되고 떠도는 마음이었다. 읽는 시간이.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권여름, 앤드
p42-43 “아가씨, 아침 안 먹었어?"
승객 머릿수를 세던 버스 기사의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긴 이쑤시개로 타코야끼를 찌르고 있는 여자에게 던지는 말일 터였다. 그녀를 바라보는 기사의 표정이 봉희 머릿속에 그려졌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동시에 저 예의 없는 한마디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모르는 사람이 던지는 무례한 시선과 폭력적인 말들. 그것에 노출되었던 시절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여상 시절 친구들과 학교 앞 노점상에서 닭꼬치를 먹던 날, 그곳을 지나가던 한 무리의 남학생들 중 누군가도 그렇게 무례 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 봉희도, 친구도 갓 튀겨낸 닭꼬 치에 소스를 바르던 아주머니도 못 들은 척했다. 그러나 봉희는 잠시 멈칫했던 아주머니의 손과 자신의 표정을 재빠르게 확인 하던 친구의 눈빛을 슬로우 비디오 화면처럼 똑똑히 보았다. 봉희의 귀에 정확하게 꽂힌 그 한마디를 못 들을 리 없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얼굴들이 무신경하게 뱉은 한마디.
“돼지 년아, 적당히 처먹어."
p71-72 “인생이 결정되는 건데, 이놈아. 그걸 못 빼느냐고."
은행 취업 실패의 원인은 봉희의 의지박약으로, 그 의지박약은 몸에 붙은 살로 귀결되었다. 그건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동만의 그 개소리는 그 뒤로도 자주 봉희를 따라다녔다. 무언가에 아깝게 실패할 때마다 그랬다.
p78 하지만 100kg에 육박한 몸으로 대학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무의미한 일이었다. 몸이 변하지 않으면 새로운 삶은 어림없었다. 봉희에게 살찐 몸은 마치 낮은 신분과도 같았다. 유능하고, 가진 게 많아도 뚱뚱한 몸을 걸치고 있는 이상 늘 위축되고 구속될 터였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봉희는 그걸 알았다.
p198 원장은 이제 되었다는 듯이 다시 편안하게 찻물을 우렸다. ‘멈추지 말 것.’ 봉희의 머릿속을 꽉 채운 건 그런 말들이었다.
“존중받는 몸이 되기 위해서는 그 시간도 존중받으며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봉희의 말이 길어지자 구유리의 얼굴이 서늘해졌다. 원장은 코웃음을 쳤다. 벌벌 떠는 건 봉희였다. 처음이라서 그랬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해본 것이 정말 처음이 었다.
“언제부터 너 이렇게 말이 많아졌어?"
언제부터였을까. 요즘 봉희도 자신에게 비슷한 질문을 자주 했다. 걷다가 갑자기 맨홀에 빠진 것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균열은 진작 시작되었다. 지하수가 지반을 서서히 녹여내듯. 언제부터였을까. 그 질문의 끝에 운남이 사라진 그 새벽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