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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Nov 02. 2024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김은정_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책장에 있었던 건 꽤 오래였는데, 이번에야 읽었다. 초반이 좀 어렵고 해서 다른 책들을 병행해서 잘 읽지 못했다.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은 질병과 장애의 현존을 지우는 치유의 시간성을 ‘접힌 시간’이라 명명한다. 현재 장애가 존재함에도 투명하게 여겨지고 지금이 아닌 미래의 시간성에 대해서만 다뤄지면서 현존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추천사에서 “이 책의 장애학적 비평이 빛나는 순간은 장애학이, 정상성과 규범성을 질문하는 페미니즘, 퀴어, 탈식민적 관점과 교차할 때”라는 글이 있었다. 최근 장애, 퀴어, 페미니즘 인식이 교차하며 담론/질문/고민을 만들고 제안하고 사유할 수 있게 하는 책들을 만나는 시간이 읽기의 어려움이 있지만 그보다 큰 읽기와 사유에 대한 즐거움이 있다. 하나의 답만 있다고 여겨졌던 질문에 대해, 그리고 사유가 필요없다고 여겨져온 건강중심성과 정상성에 대해 질문하기와 사유하기. 정상이 아니기에 지워지거나 배제되어온, 장애와 질병에 대해 그 지워진 것들을 다시 꺼내보고, 다른 시작에 서보는 것이 이 책의 작업이기도 한 듯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다른 면은 상상되지 못한 채 한쪽 면으로만 전부로 여겨졌는지 책은 근현대사 문학과 영화 등을 통해 다뤄간다.


추천사에서 조혜영 영화평론가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나중에’ 이뤄줄테니 ‘미래의 시간’을 기다리라고 하는 것은 장애인의 현재를 유예해도 되는 존재로 만드는 전형적인 비장애중심주의”라고 했다. “나중에” 너무 익숙한 말이다. 마치 반으로 가르던지 말던지 나몰라라 하며 배제했던 성소수자 인권. 이것들이 얼마나 가부장제 이성애규범 비장애중심주의의 단단한 결속이었던지. 이 책에서도 장애와 질병이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어떤 폭력을 경험해도 치유라는 이름으로 가려지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이성애 정상성 규범으로 규정되고 일어나고 있는지를 다양하게 드러낸다. 폭력을 둘러싼 것들이 납작하지 않다는 것, 젠더와 장애와 성에 대해서도 어느 하나만이 최고 가치거나 유일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곱씹게 된다.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젠더•성의 재활과 정치>, 김은정 지음, 강진경•강진영 옮김, 후마니타스


p9 질병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크고 작은 폭력은 식민주의•전쟁•냉전 체제•신자유주의 속에서 국가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큰 전제하에 구성원의 근대적 표준과 수월성을 상정하고 그에 맞춰 통치 구조와 공간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정당화되었습니다.


p10 치유는 병이 낫고 장애가 없어지는 개별적인 몸의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특정한 몸을 포섭하거나 밀쳐내는 동력을 만들어 내는 담론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치유 자체가 정상과 건강의 테두리를 만들어 내는 하나의 행위이고, 추방된 몸 들의 일부를 선택적으로 포섭함으로써 그 경계를 강화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28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치유는 현재의 삶을 유예하고 그 대신 장애와 질병이 없는 미래를 기다리라고 요구하면서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게 한다.


p48 한국전쟁 이후, 문학작품에서 “외국 군인을 상대하며" 강간을 당하는 성노동자들이 국가를 상징하는 은유로 등장했는데, 이를 통해 남성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미국의 지배를 받는 여성화된 국가 정체성을 표현했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성노동을 하는 여성들은 대개 지워지거나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외국 군인에 의한 여성의 성폭력과 착취가 일어나는 이유는 대체로 미국의 군국주의와 신식민주의 때문으로 인식되었다. 그런 폭력이 식민지 내부의 여성 혐오, 남성성 과잉, 가부장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무시되었다. 국가주의는 성별화된 담론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젠더 권력에 대한 이론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p102 개인의 선택과 사랑에 기반을 둔 근대식 결 혼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비정상적인 특성이 없고 건강한 상태가 결혼의 전제 조건으로 간주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시설 안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강제 불임 시술이 이뤄졌는데, 범죄와 빈곤 문제의 해결책으로 여겨진 불임수술 담론은 결혼을 통제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재생산을 바람직하지 않게 그리는 기능을 했다.


p120-121 결혼을 통해 장애인에서 여자가 되었다는 윤선아의 말은 이성애 관계로 성별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뜻이고, 이는 '새로 태어났다'라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남자'와 '여자'라는 이름은 정상 신체를 가진 사람들만 예외적으로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이해되고, 장애여성이 친밀한 관계 안에서 남성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이분화된 성별 체계 밖에 머물게 된다.


p133 장애와 이분화된 성별이 서로 얽힌 구조 안에서 결혼이라는 제도, 섹슈얼리티, 재생산, 핵가족은 장애와 결부된 낙인의 완화를 통해 장애인을 재활시키는 장이 되기도 한다.


p140-141 나는 이 글에서 가족 구성원 누군가에게 장애가 있을 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의무감을 둘러싸고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역동을 포착하고자 대리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대리인은 장애나 질병을 직접적으로 치유하지는 않지만 치유를 위해 헌신하며, 통증이 없고 정상적인 형태로 잘 기능할 수 있는 몸을 향한 열망을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정상적인 몸을 향한 바람을 멈추면 마치 그 자체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심지어 병적인 상태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치유를 위한 노동에는 장애인을 위해 기도하거나 장애인이 나아지는 것을 자신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것이 포함된다. 대리인은 장애인의 욕구를 대변하기보다 강제적 정상성의 시스템을 강화하고, 치유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책임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이와 동시에 장애인을 이러한 노력의 보상을 받게 되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만든다.


p158 여성의 희생과 남성의 치유가 이렇게 재현되고, 모든 장애가 사라지는 곳이 이상적인 국가 공간으로 재현될 때 생기는 문제는 무엇인가? 1장 에서 논의한 것처럼 1970년대 초반 장애인의 재생산을 둘러싼 우생학적 사고는 독재 정권의 공중보건과 수출 주도 산업화가 어떻게 장애인을 탈식민 국가(공산주의 북한에 맞서고 있는)에서 배제해야 할 존재로 상정했는지 보여 준다. 특정 가족과 정치적 공간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은 그 집단 의 도덕적 퇴보를 상징하고 근대 자본주의 번영을 막는 방해물을 뜻했다. 치유 가능성이 없는 장애의 존재가 가족과 국가의 도덕적 부도덕함을 상징하기 때문에 장애가 있는 몸에서 없는 몸으로 바뀌는 가시적 변화는 장애를 완전히 제거하는 효과를 낳는다.


p159 이런 치유는 젠더화된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비장애인인 딸 혹은 장애남성의 부인(본인의 장 애 여부와 상관없이)이 자신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희생을 감당하고, 결국에는 남성이 능력을 갖게 되는 대가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자기 자신을 다 른사람의 대리인으로 임명하는 것은 행위성이 개인을 넘어 관계적인 것임을 드러낸다. 이런 관계적 행위성은 치유 명령과 그에 따르는 대리인의 수동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때 치유 탱령은 대리인의 행동에 정당성을 제공하고 대리인의 욕망을 숨긴다. 장애의 가치를 부정하는 비장애중심적 이데올로기를 은폐하는 것이다.


p202-203 폭력을 둘러싼 복잡한 사회적 각본은 누구도 장애여성을 원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가부장제와 근대적 자본주의국가를 유지하는 특정한 형태의 젠더화된 여성성을 따르도록 장애여성에게 요구한다. 마치 장애 여성이 비인간이었던 것처럼 폭력은 역설적으로 폭력적인 주체가 타자화된 대상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권력을 만들어 낸다. 장애를 의학적으로 치료하는 것 또한 인간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인간성은 이분화된 성별에 따른 이성애에 순응하고 특정한 행동적•언어적 능력을 가진 상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인은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존재로 규정된다. 사회에서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몸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명령은 로버트 맥루어와 앨리슨 케이퍼의 설명, 즉 자본주의사회에서 이성애 와 함께 촘촘히 짜인 강제적 신체정상성 및 정신정상성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p213 장애여성공감이 만드는 잡지 「공감」에서 세 명의 장애여성 활동가들은 다음과 같이 『아가』를 비판한다. "장애여성이 성에 대해 경험하기 힘들다고 해서 성을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그렇게도 중요하고 대단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이다. 그것은 절대 아니다. 장애를 가진 여성이 자신의 의지와 사고와는 전혀 상관없이 남성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성적인 접근을 당하는 것은 성폭행이지 자선이 아니다.“ 장애인들을 포용했다고 이상화된 ‘옛날'에 대한 현대의 가부장적 향수는 성폭력이 장애가 있는 몸을 이성애 여성으로 변화시키는 치료의 한 방법이라고 정당화하면서 비장애남성들에게 '기사' 역할을 부여한다.


p220-221 폭력은 종종 장애를 훼손하기도 하고 재구성하기도 하면서 몸의 변화를 강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p224 창국이 혼혈인이라는 것과 창국 어머니가 외국인을 상대로 성노동을 하는 것은 한국의 역사적 맥락에서 장애로 구성된다. 한국전쟁 이후에 한국은 취약계층'에 대한 연간 통계 보고서에 전염병이 있는 사람들, ‘나병' 환자, 마약 중독자, 미망인 등과 함께 '혼혈 아동'과 매춘부를 포함시켰다.


p267-268 “왜곡된 과거사"는 지난 세기 동안 이뤄진 한센인 강제 분리, 노동 착취, 신체적 폭력, 학살, 재생산권 침해는 물론이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회적 배제와 편견을 말한다. 이 포스터는 정부 지원을 받는 기관이 사적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 주지만, 그 과정에서 치료를 장려하고 대중을 보호한다는 기치 아래 이 병의 위험성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퍼트린 정부, 인도주의 단체, 의료 당국이 그런 왜곡된 역사를 만들기도 했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은폐한다.


p270 “이미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한데 왜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나병에 대한 낙인과 두려움이 만연할까?" 종종 한센병과 연결되는 질병인 AIDS에 대해 글을 쓰면서 폴라 트라이클러는 이렇게 주장한다. AIDS의 사회적 차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핵심적이다. 과학은 단순히 상징적인 상부구조를 만들어 내는 물리적 기반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AIDS라는 사회적 구성물은····· 객관적이며 과학적으로 결정된 '실재'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이 실재에 대해 우리가 전해 듣는 내용에 기반한다."


p271 폭력적인 조치가 치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을 때에도, 정치적•의료적 질병 관리는 과학적으로 합의된 사실에 따라 이뤄지지 않았다. 게 다가 의학적으로 완치가 가능하다고 해도 이는 문화적 치유로 저절로 이어지지 않으며, 이로 인해 완치된 사람을 이성애 결혼 및 다른 젠더화 과정 을 통해 정상화되는 존재로 재현할 필요성이 생긴다.


p272 질병의 낙인을 없애기 위해 완치 가능성에 의존하는 것은 "규범적폭력"에 해당하는데, 이런 폭력은 완치될 수 없거나 아직 완치되지 않은 사 람들에 대한 배제를 정당화한다. 완치 가능성에 의존하는 것은 또한 완치된 이후에도 삶이 유예된 사람들의 인간성이 삭제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p306-307 한센인에 대한 서사 분석은 격리된 상태로 치료가 이뤄지고 시설에 수용됨에 따라 어떻게 가족이 머물 수 없는 공간으로 점차 구성되었는지 를 보여 주는 반면, 오늘날의 운동은 그동안 가족에서 배제되고 재생산 능력을 빼앗긴 사람들이 이성애 가족으로 편입되는 방식을 강조한다.


p309-310 감염병에 대한 장애학적 접근 방식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한센인의 경험에 담긴 다양한 문화적•사회적 요소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이 다른 장애나 감염병의 경험과 분리될 수 없는 지점에 대해 보다 포괄적으로 연결해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p330 강애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담론이 보여 주는 젠더화된 지형을 통해, 사회적 역동과 성산업 내 장애인/비장애인 트랜스젠더 노동자를 비롯한 다양한 소외 집단을 가로지르는 권력의 작동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성별에 따라 '남성의 성욕'과 '여성의 취약 성'을 강조하는 이분법으로는 장애인의 다양한 성생활을 적절하게 설명 하지도 못하고, 그런 다양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문제를 다루지도 못한다. 그렇게 해서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는, 장애남성과 장애여성의 경험과 구조적 폭력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사회적•문화적•역사적으로 도구화되어 온 성매매의 처방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 동시에 더욱 어려워지는 -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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