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콤앙마 Feb 08. 2024

7. 왕들의 대화 - 나의 어린이 왕들, 이젠 안녕♡

동시에서 시작해서 에세이로 마무리 7번째 이야기 

나의 어린이 왕들, 이젠 안녕♡

 

 1학년 친구들과 지내다 보면 웃을 일이 참 많다.

 소문내면 안 될 것 같은 집안사나 부모님의 치부(대부분 우리 아빠는 뿡뿡 방귀쟁이고, 온화하게만 보이는 엄마의 180도 다른 무서운 모습 등등)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별거 아닌 일들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1학년 마지막 날인 오늘만 해도 여러 번 웃고 말았다.


 # 에피소드 1 

 우리 반엔 반려식물인 방울토마토 '초록이'가 있다. 

 햇빛이 잘 안 드는 곳에 위치한 교실 탓인지 가느다란 줄기로 위로만 자랐다. 저러다 죽으면 어쩌나 했는데 겨울방학 직전 간신히 노란 꽃을 하나 피워 내어 우리 반 모두를 기쁘게 했다. 그리고 너무나 극적으로 겨울방학을 마치고 돌아오니 꽃이 지고 열매가 맺혔다. 

 사실 그때까지 어떤 식물인지 비밀에 부쳤기에 그제야 아이들은 초록이가 방울토마토임을 알아챘다. 그런데 우리에게 커다란 기쁨을 준 고마운 초록이가 종업식을 2주 앞두고 갑자기 시들해져 버렸다. 내가 실수로 금요일에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갔는데 그때 너무 추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가뜩이나 약했는데 열매를 맺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한 건지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튼 잎을 축 늘어뜨린 모습이 속상해서 가지치기를 해줬더니 진짜 열매 하나만 남고 잎이 다 사라져 앙상해졌다. 난 이제 오늘까지만 잘 버티고 조용히 초록이를 보내줘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나니 스스로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 초록이가 너무 말라서 불쌍해요."

 "맞아요. 그때 '쑥쑥이'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진짜, 그런가?"

( '쑥쑥이'라고 '초록이'랑 같이 구매한 방울토마토가 있었는데, 우리 집에서 산 지 얼마 안돼 죽었다. 얼마 전 초록이에게 숨겨진 쌍둥이 쑥쑥이가 있었다고, 초록이가 죽지 않고 너희들과 함께 잘 지내며 건강하게 자라준 게 너무 고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도 초록이가 쑥쑥이 죽은 걸 알게 돼서 슬퍼할까 봐 걱정이라더니;;

그래, 이게 다 내 죄다! )


 "선생님, 초록이는 언제 빨개질까요?"

 "글쎄. 아, 맞다! 혹시 우리가 '초록이'라고 이름 지어서 계속 초록색이기만 한가?"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원래 이름을 닮아간다면서요. 그럼 우리 이제부터 '빨강이'라고 불러요."

 "빨강아, 빨강아!"

 "음, 초록이는 자기가 초록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갑자기 빨강이라고 부르면 그게 자기인 줄 알까? 선생님이 우리 ☆☆이를 갑자기 ★★라고 부르면 어떨 것 같아?"

 "아, 절 부르는지 모를 것 같아요. 그건 안 되겠네. 어떡하지?"

 "진짜네, 어쩌지?"


 아이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초록아 도와줘! 힘들겠지만, 좀 빨개지면 안 되겠니?


# 에피소드 2

 올해 아이들과는 유독 잘 맞았다. 

 1학년은 반편성 근거가 없어서 아이들 구성이 복불복이라고 그럼 내가 뽑기를 잘했냐? 그건 아니다. 

 내가 아프거나 일이 있어 학교를 못 온 날이 며칠 있었는데, 그때 오신 분들 모두 경력 많은 베테랑 강사님들이셨음에도 쉽지 않다고 절레절레하셨다. 한 번은 교감님까지 호출을 받으셨단다. 

 그럼에도 다행히 나와는 코드가 좀 맞다. 물론 이렇게 합이 맞기까지 학기 초에 많은 공을 들였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내가 준비한 활동을 늘 즐거워하며 내 노력에 보람을 느끼게 해 줬던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더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종업식을 하는 오늘 아침부터 애들이 내 주변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선생님은 몇 학년 하실 거예요?"

 "아직 몰라."

  "선생님, 2학년 하셔야 해요. 그래서 우리 반 또 하세요."

  "그럼, 너네들이 교장선생님한테 말씀드려. 선생님 2학년 선생님 되게 해 달라고."


 아이들이 진지하게 고민한다. 아무래도 그건 못하겠는지 엉뚱한 제안을 한다.


 "아니야. 선생님이 그냥 우리랑 여기서 같이 살아요."

 "그래, 그러면 되겠다. 교실 옆에 화장실도 있고 밥도 주잖아."

 "저기요, 급식은 학교 오는 날 점심만 준다! 그리고 너희들 아빠 엄마랑 살아야지."

 "그건, 그런가? 그래도 나 선생님 계속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선생님도 그건 그래. 너희들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암튼 오늘 힘든 이별을 했다. 몇 번이나 울컥할 뻔했다.

 아이들이 수줍게 내민 편지를 읽다가, 점토로 만든 선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도 나도 모르게 찡해졌다.

 

나에게는 내가 아프면 치료해주겠다는 미래의 의사 선생님들도 있고, 축구선수가 돼서 나한테 골 넣은 모습을 꼭 보여주겠다는 미래의 축구선수도 있다. 올림픽 선수, 수의사도 있다.

 

 그러다 곧 이사를 가는 친구가 있어 단체 사진을 함께 찍으며 짧은 동영상으로 마음을 전하는데, 목소리에 울음이 걸려 혼났다.


 올해 처음 전입 와서 나 또한 입학한 이 아이들처럼 이 학교에서 첫해를 보냈다. 즉, 내겐 이 학교에서 4년의 시간이 남았다. 아이들이 5학년이 될 때까지, 그간 혹시 또 담임의 연을 맺을 수도 있고 안 그렇더라도 일단 오며 가며 가끔씩 아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아마도 새 학년을 시작하고 한동안은 나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 점점 나를 잊어갈 것이다. 그리고 새로 만난 선생님께 적응해 갈 것이다. 내가 또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차피 난 아이들이 날 영원히 기억하길 바라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 초등학교 1학년때 선생님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내가 바라는 건, 그저 아이들이 앞으로의 삶 속에서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고, 시간이 지나 문뜩 우리가 함께한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을 떠올렸을 때 따뜻하고 행복했던 느낌정도로만 남길 바랄 뿐이다.


 나의 어린이 왕들, 이젠 안녕♡

 ps. 물론 올해 또 새로운 어린이 왕들을 만나게 되겠지만^^;;;

작가의 이전글 오늘 밤도 잠은 다 잔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