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빵의 제 맛을 알아버렸다!
'팥빵'하면 떠오르는 우리 아빠
어릴 때 편식이 심했다.
그럼에도 식욕은 왕성했기에 좋아하는 음식은 늘 많이 아주 잘 먹었다.
특히, 우유나 요거트, 치즈와 같은 유제품, 과일과 빵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음식이 분명했던 만큼 싫어하는 음식도 확실했다
햄, 팥, 쑥, 생수, 고기, 초콜릿을 정말 싫어했다.
비엔나 소시지나 분홍색 소시지는 먹었는데, 햄에는 가끔 하얗고 조그맣게 씹히지 않는 것들이 나오는 게 너무 싫었다. 같은 맥락에서 고기에 붙은 비계의 식감이 너무 싫어서 부모님께서 비계란 비계는 다 잘라주셨음에도 씹다 몰래 뱉어내길 반복했다. 팥과 초콜릿은 너무 달고, 쑥은 쓰고, 생수는 맛이 없었다.
쓰고 보니 늘 불평했던 까다로운 우리 아이들의 입맛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닌 듯싶다.
물 마시기를 너무 싫어해서 늘 우유를 찾는 첫째, 식감이 조금만 거슬려도 못 먹고 뱉어내는 둘째, 종류 불문하고 고기에 비계가 조금이라도 붙어있어도 난리 나는 건 공통이다! 하긴 내겐 소고기 안심에서도 비계를 제거해 구워드시는 부모님이 계시니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것 같다.
지금은 동물의 내장요리나 육회, 김밥용 햄을 빼면 편식 없이 잘 먹는 편이다. 물론 고기에서 삼겹살을 제외하곤 종류 불문 비계를 다 제거하고 먹는 건 여전 하다.
그런 나의 요즘 장바구니 최애 품목은 팥빵이다.
단맛을 너무 싫어해서 초콜릿 한 조각을 먹는데 우유 500ml 정도는 마셔야 했던 어릴 적 나를 떠올리면 엄청난 변화다.
내가 언제부터 단맛에 허용적이 되었는지 떠올렸더니 인생이 쓸 때였다. 처음으로 초콜릿이 좋아진 건 대학시절이었다. 초등교육 전공만으로도 필수학점을 이수하고 나면 선택할 수 있는 교양이 거의 없었는데 난 거기다 국어교육까지 복수 전공했다. 1학년 1학기 학점제한이 있던 그 시기를 제외하고 늘 24학점을 풀로 채워 들었고 심지어 계절학기를 수강하며 중등실습까지 나가야 했다. 초등임용고시 1차 필기를 합격하고 2차 영어면접과 논술을 준비해야 할 때까지 국어과 졸업시험을 치르며 마음 졸여야 했고 말이다.
돌아보면 오직 초등교사로만 20여 년 가까이를 살고 있는 지금 중등국어교사정교사 자격증은 아무 힘도 없다. 당연히 초등교육을 전공하며 중등과목을 복수 전공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는 꽤 있었지만 내가 갔던 길은 좁은 길이었다. 그럼에도 그 길에서 존경하는 교수님을 만났었고 배움의 기쁨을 느끼기도 했기에 후회는 없다. 다만 바쁜 일정으로 당시 내 몸과 마음은 스트레스가 가득했던지 초콜릿의 극강 단맛이 우유 없이도 목구멍을 술술 통과했다. 체질적으로 술을 못하는 내겐 그 단맛에 취하는 것이 마치 술에 취한 그것과 같았던 것 같다.
사실 그 뒤로도 팥빵은 아직 내게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팥빵'하면 우리 아빠였다. 아빠는 팥으로 만든 음식을 다 좋아하셨다. 오죽했으면 엄마가 아빠와 처음 선을 보던 날도 팥죽을 드셨단다. 그런 소탈한 모습으로 나중에 고아원 원장님이 되고 싶다고 웃는 아빠가 좋아 보이셨다고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 변할 법도 한데 여전히 아빠는 소탈하시다. 퇴직하시고 이젠 나름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기셔서 좋은 곳도 많이 가시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실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맛있는 팥빵 하나에 더없이 행복해하시는 우리 아빠!
한때는 마을에서 가장 높이 위치한 양반집으로 신분제 폐지 이후에도 일하는 노비가 있었다던 시골집 장남으로 태어난 우리 아빠. 할아버지는 유교사상이 짙고 뼛속까지 양반의식을 지닌 천성이 게으른 분이시다. 늘 책을 보며 향교에 다니시기 바빴다. 논과 밭은 많았지만 일손은 부족했고 산업이 발달하며 농사가 주 수입원이었던 시골집은 점점 살기 힘들어졌다. 줄줄이 딸린 작은아버지들 뒤치다꺼리에 혹독한 시집살이, 논일과 밭일로 늘 지친 할머니를 보며 아빠는 지독히도 부지런해졌다. 아빠에겐 엄마셨던 할머니를 돕기 위해 늘 아등바등했고 제대로 된 지원을 못 받고도 공부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중학생 시절부터 타지에서 홀로 자취를 했다. 돈은 부족한데 배는 너무 고파 겨울에 난방하는데 써야 할 돈으로 차라리 먹을 것을 사고 냉골에 몸을 누이곤 했다고 하셨다. 한창 먹어야 할 나이에 늘 배를 주렸던 아빠는 국민학교 졸업 이후로 전혀 키가 크지 않으셨단다.
그런 아빠의 달지 않았던 삶에 팥빵이 주는 단맛은 정말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요즘 많은 이들에게 재조명받는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에 따르면 인생은 원래가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한다. 왜 당신의 인생이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냐고 반문하면서 말이다.
지금 난 팥빵을 먹고 있다. 잿투성이 신데렐라처럼 아등바등 가족들 뒤치다꺼리를 하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다 아침을 먹지 못한 것이다. 이마저도 아직 할 일이 끝나지 않아 한 곳에 앉지도 못하고 돌아디니며 음료하나 못 챙기고 팥빵을 입속에 욱여넣었다.
난 이제야 아빠의 최애인 팥빵의 제 맛을 알 것 같다.
삶이 너무 쓸 때 팥빵이 주는 달콤함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