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과학의 경계에서 찾아가는 한민족의 흔적
유튜브의 어떤 영상을 보고 이 책을 열었다. 영상의 제목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영상이었던 것 같다.
영상 말미에 내용의 출처를 밝히면서 읽어보라고 추천해주던 책이 바로 이 책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이었다. 책의 핵심 주제는 ‘한반도에 살던 우리 민족의 기원’이다.
저자는 고고학 전공자로서, 한반도에 살았던 고대인에 관한 이야기를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실제 유물과 유적을 기반으로 한 설명은 문헌학적 접근법보다 더 생생하며, 사실적이고,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은 네 개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1장은 청동기, 2장은 금관, 3장은 동해, 마지막 4장은 언어&DNA다.
언뜻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네 개의 주제는 저자의 논리에 따라 차근차근 하나씩 이어져 간다. 장 별로 인상 깊었던 내용 위주로 남긴다.
“이 초원의 문명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징은 거대한 고분이다.”
- 2장 초원문화의 구심점, 거대 고분
시베리아나 만주 같은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공동체의 중심이 될 장소가 필요했다. 저자는, 유목민들이 고분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제사 음식을 나눠 먹으며 고분이 공동체 생활의 중심으로 발달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고분에서 황금 유물이 상당히 많이 출토되는 이유도 함께 설명한다. 유목 생활 패턴을 가진 문화에서는 부와 권력을 상징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물건이 바로 '금 장신구'였다는 것이다.
단순 금이 아니라 바로 '금 장신구' 말이다. 부피가 크고 무거워 휴대하기 어려운 금괴와 달리 금 장신구는 금을 얇게 펴서 잘 가공하여 장신구로 만들면, 금괴에 비해 가볍게 몸이나 말에 걸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부와 권력을 대외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금 장신구는 주인이 세상을 떠나서도 무섬 속에 주인과 함께하게 되었다.
또한, 저자는 흉노의 황금 문화가 어떻게 신라의 금관과 연결되었는지도 설명한다.
'세계수'라는 상징을 포함한 금관과 '편두'라는 풍습을 예로 들며 황금 문화의 전파는 마치 종교 전파 유사하다고 말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종교가 멀리 확산되면 서로 다른 지역이나 나라에서 유사한 유물들이 발견되는 것과 같은 원리라는 것이다.
“남한의 역사는 한반도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고구려, 발해, 부여, 옥저, 읍루와 같이 수많은 국가가 북한 및 만주 일대와 함께 묶여 있다.”
- 3장 환동해 지역의 사라진 역사, 옥저와 읍루
이 문장은 한반도에 대한 나의 관점을 전환시켜 주었다. 저자는 책을 통해 한반도만의 역사가 아닌, 만주와의 연결성을 계속해서 강조하며 역사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부각시켰다.
나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역사를 연구하거나 책을 읽을 때, 과거를 현시점의 시각에서 편향되게 바라보는 함정에 빠지곤 한다.
한반도는 실제로는 섬이 아니지만, 현대의 지정학적 상황 때문에 나도 모르게 섬과 같이 생각하게 되는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사고의 편협함은 고구려, 발해, 부여와 같은 북방의 국가들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만든다.
과거와 마주할 때, 이러한 제한된 시각을 넘어 한반도의 광범위한 역사를 포괄적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 숨겨진 다양한 연결고리와 문화유산을 더 풍부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의 역사는 한반도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고구려, 발해, 부여, 옥저, 읍루와 같이 수많은 국가가 북한 및 만주 일대와 함께 묶여 있다.”
- 3장 환동해 지역의 사라진 역사, 옥저와 읍루
동해 지역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부분이었다. 일상적으로 인식하는 ‘동해’의 경계가 상당히 좁았구나 싶었다.
우리가 말하는 ‘동해’는 현재 남한의 부산에서 고성까지 이어지는 부분을 말하지만, 저자의 고고학적 시선에 따르면 북한의 남쪽에서 시작해 일본의 서쪽을 거쳐 중국의 동북부와 러시아의 극동으로 둘러 쌓인 부분이 바로 환동해 부분이다.
이를 통해 거의 잊혀져 있던 고대 국가인 옥저와 읍루에 대해 다시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두막루’나 ‘예맥’과 같은 낯선 이름들로 인해, 나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한정된 시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느꼈다.
“기원이라는 것은 핏줄이 아니다. 적응이다.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이 결국 후손을 더 많이 퍼뜨릴 수 있다. 그럼 그들이 기원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원은 순수하고 우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더 환경에 잘 적응했나를 가늠하는 기준일 뿐이다.
- 4장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우리의 조상일까?
매우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었어도, 인류의 기원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던 거 같다. 더군다나 혈통이나 지역을 넘어 생각해 본 적은 전무한 것 같다.
저자는 인류의 진화와 발전을 단순한 혈연의 연결 고리보다는 환경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그 결과로써의 적응 능력에서 찾았다. 뉴스에서 접하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내용만 봐도 어느 민족이 어느 민족과 연결되어 있고, 누구의 후손이고, 혈연이 어떻게 이어져 오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기원을 적응의 관점에서 바라 보았다. 기원은 적응의 산물이다라는 관점은 인류 역사에 대한 나의 이해를 깊게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은 읽고 나면 찜찜하다. 확실한 것은 없고,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라고, 저자는 오히려 대견하다 여긴다.
하지만 딱 하나 확실한 게 하나 있다.
“그럼에도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단일민족이란 없다. 민족은 혈연이 아니라 문화, 역사, 지리 환경이 결합된 것이며, 순수한 기원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복잡하게 섞이며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 4장 '단일민족'의 신화를 넘어서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은 변화무쌍했던 한반도라는 땅 위의 역사를 고고학적 시각에서 탐구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연결고리와 문화의 복잡성을 잘 드러내주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고고학적 발견 안에 숨어있는, 한반도라는 플랫폼을 이용했던 옛 사람들의 이야기와 현재 연결점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단초를 제공한다 .
특히 고고학과 문화유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고고학과 문화유산에 대한 깊이를 한층 더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풍부한 역사와 문화의 섬세한 해석을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 전자책이므로 인용문의 쪽수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박배민
문화재유랑단(urang.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