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로나 Jan 31. 2024

마음은 늘 유죄다

물속에 빠진 사람이 공기를 원하는 것처럼, 사랑을 잃고 난 뒤에야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젊음을 닮아 있다.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닐 때, 우리는 비로소 젊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젊음은 젊음을 모른다. 사랑도 그렇다. 무지할 때에만 우리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그게 사랑이라는 걸 아는 순간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린다. 


<시절 일기>-김연수




대학시절 만났던 A는 늘 자신만만한 친구였다. 축제 때 무대에 오르기도 하고 춤과 노래도 잘했다. 끼가 참 많았던 친구였다. 그 당당함이 좋았다. 여러 사람 앞에서도 패기 넘치는 모습이 부러웠다. 누구 앞에 나서기 싫어하고, 체면을 차리려고 노력하는 가식적인 나와는 너무도 달랐다. A 덕분에 감추던 나를 조금씩 극복해나갔다. 어찌보면 나는 그 친구에게 관심을 주고 그 당당함을 배웠다. 


그 시절 <연애시대>라는 드라마가 TV에서 방영했다. 평소 좋아하던 손예진과 감우성이 나와서 시청했다. 호불호가 갈렸지만 참 좋아했다. 사랑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서로를 알아가고 찾게 되는 그런 스토리였다. 서로를 잃고서야 사랑을 다시 느낀다니 정말 바보같지 않나? 그 부분에서 A는 늘 불만이었다. ‘평소에 잘해야지 잃고나서 무슨 소용이야? ’, ‘진짜 사랑은 원래 그런거야.’ 대립했다. 무슨 겉멋이 들었는지 그런 드라마가 공감이 되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그렇게 후회를 하는 타입이었고 A는 후회없이 현재에 집중하는 게 중요한 사람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지금도 아직도 나는 그런 점이 없지 않아 있다는 것이다. 소름돋는다. 너무 싫다.


그 즈음인가? 아이폰이 한국에 처음에 들어왔다. KT를 통해 들어온 애플 아이폰을 나는 당시 만나던 친구 B를 통해 처음 보게 되었다. 그 때 B는 조금 먼데까지 가서 그걸 샀었고, 나는 처음으로 한손에 쏙 들어오는 아이폰을 만져봤다. 사실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왜 필요한지도 몰랐다. 그걸 사러 왜 여기까지 와야하는지에 대해 논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어찌됐든 나는 B를 통해 애플 제품을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알게 되었고, 더욱 잘 사용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 이렇게 애플 제품을 많이 사용하는 미래의 내가 봤으면 ‘가식적인 놈’이라고 욕했을 것이다. 그 때 왜 솔직하게 ‘나도 그 제품 써보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왜 괜히 필요없는 언쟁을 했을까? 


사회초년생 시절, 부당한 업무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상급자인 사람이 불공정한 업무지시를 통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친구와 함께 상의하다가 더욱 생각이 과열되었었다. 다음날 들이박았다. 그리고 나서 한참을 후회했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별 일이 아니었고, 불공정하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친구를 원망도 조금 했다. 후회를 통해 당시에 뭘 얻었나? 전혀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알겠다. 그 이후로 나는 다양한 업무에도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썼고, 덕분에 동료 관계가 원만해졌다. 후회를 통해야만 알게 되는 내가 참 웃기다.  



가끔 이렇게 나를 돌이켜 볼 때면 생면부지의 사람을 처음 보는 것처럼 깜짝 놀라곤 한다. 왜 저렇게 철이 없었을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화들짝 놀라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런 후회들을 열심히 하는 것은 가끔 내 삶에 유효하다. 과거에 멍청한 짓을 많이 했으니 그걸 이렇게 잊고 있지 않으니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어느 덧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나이가 되니 옛 일이 자주 떠오른다. 특히 내가 왜 솔직하지 못했을까? 후회되는 순간들이 참 많이 떠오른다. 그런 일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임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런 후회가 독이 되고 살이 되어 현재의 내가 존재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여전히 나는 후회를 반복하며 살아갈 것이다. 


젊음이었으나 젊음을 전혀 몰랐다. 사랑이었으나 사랑임을 몰랐다. 배움이었으나 배움인지도 몰랐다. 그 시절 어렸고 앳됐다. 여러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으나 참 후회되는 일들이 많다. 마음은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늘 유죄다. 


<시절 일기>에서 글쓰기는 목적 없이 실행이 중요하다고 한다. 누군가 읽는다고 생각하면 글을 쓰기 어렵지만 아무도 읽지 않고 나만 본다고 생각하면 술술 써진다고 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도 무언가를 준비하는 ‘동작’보다는 실제로 수행한 ‘실행’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렇게 나만의 생각을 끄적거려보기로 결심했다.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여유있는 1월이기에 이렇게 일기 아닌 일기를 적어본다. 



끝.


작가의 이전글 내가 아빠라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