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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ilorjeong Apr 25. 2023

1인승이지만 혼자가 아니야

ILCA 6 세일링 일지 (2023.3~4월, 김포 아라마리나)


 우연한 기회에 선주가 되었다고 기뻐하였지만, 사실 말 못 할 걱정으로 매일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고 있었다. 그 걱정은 다름 아닌, 내가 가진 1인승 딩기 요트 ILCA는 남자용이었던 것! 세일링은 몸무게를 이용하여 배를 컨트롤하며 타는 스포츠다. 따라서 배에 적정한 크루 몸무게를 맞추는 것은 항상 고려해야 하는 요소이고 보트 스피드에도 큰 영향을 준다. 내가 가진 배는 180cm, 80kg의 서구형 남자 체형에 맞추어 디자인된 남성용 ILCA 7이었고 나는 165cm, 52kg이다. 몇 번 타보았는데 어려웠다. 조금만 강풍이 불어도 배가 균형을 잃어버려 내 몸이 종이조각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여성용 1인승 딩기 요트는 ILCA 6로 종목이 구분되어 있고, 마스트*의 길이가 짧고 세일의 크기도 더 작게 디자인되어있다. 여성의 체구에 맞추어 배가 좀 더 작은 바람을 안고 가도록 디자인된 것이다. 마스트와 세일 장비를 추가 구매하면 갖고 있던 배를 ILCA 6로 변경이 가능했지만 백만 원 이상의 투자금이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차에 오랜만에 학교 동아리 후배에게서 카톡이 왔다.


*마스트(mast) : 돛대


 "언니~ 현재 재학생들이 세일링 하기 어려운 환경인데 언니 배를 타도 되나요?"

 "우와! 응 너무 좋아 같이 타자!"


 후배들에게는 ILCA 6 세트가 있었다. 나는 후배들이 배를 탈 환경과 배 본체를 제공하고, 후배들은 ILCA 6 마스트와 세일을 제공할 수 있어 서로 윈윈 할 기회였다. 우연한 기회에 ILCA 선주가 된 것처럼 이번에도 우연한 기회로 ILCA 6 세일링 시즌 오픈을 무사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첫 만남. (3월 25일)

 ILCA 6 및 동아리 후배들과 첫인사를 했다. 서로의 장비를 빌리는 것인 만큼 철저하게 사전 점검을 하고 장비 현황과 범장 등을 꼼꼼히 체크했다. 후배들이 가져온 ILCA 6 세일은 Italia 국가명이 적혀 있는 A급 새 세일이었다. MZ 세대의 구글링 실력으로 그 세일을 쓴 Italia 선수를 찾아 인스타그램 팔로우까지 했다.

[왼] ILCA 6 범장을 마치고. 21살의 상큼함에 묻어가기  [오] 돋보이는 이탈리아 국가 코드 ITA 그리고 늠름한 하비


두근두근 첫 세일링 (3월 31일)

 마리나 사정으로 첫 모임 때는 장비확인만 하고 드디어 시즌 오픈을 했다. 크고 ILCA 7 세일의 무거움을 느끼다가 ILCA 6 세일을 쓰니 완전히 신세계였다. ILCA 6도 적정 몸무게는 60kg 이상이기에 여전히 나는 가벼웠지만, 종잇장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의 무게로 어느 정도 배가 컨트롤되는 것을 느꼈다. 맞바람을 치고 올라가는 풍상 범주*를 해도 배가 많이 기울지 않고 flat 하게 유지되었다.  


*풍상 범주 : 마주 보는 바람을 치고 올라가는 범주 방향

[왼] Saling is finally ON!! [오] 배는 한대 사람은 세명이라 대기시간이 길다. 세일러 누나를 쫓아다니느라 피곤한 하비.


기대반 실망반 두 번째 세일링 (4월 7일)

 첫 세일링 이후 또 마음만 앞서게 된 걸까? 이 날은 풍상 잘 못 타서 신경질이 났다. 거스트*가 센 날이었는데 거스트 오면 힐*이 너무 많이 되고 나의 무게로 보트 밸런스가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거스트 지나가면 보트 스피드가 떨어져 배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거스트가 많은 더러운 봄바람이라고 핑계 대고 싶지만, 사실 부족한 나의 실력에 화가 났다. 이 정도의 더러운 바람쯤은, 감당할 실력을 가지고 싶다.

 하지만 그 거스트 덕분에 뒤에서 오는 바람을 이용해 가는 풍하 범주*에서는 재미를 많이 봤다. 순간적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활짝 편 세일에 가득 담고 앞으로 쭉 나가면 모터보트 탄 기분이 난다.


*거스트(gust) : 순간적으로 세게 부는 돌풍.

*힐(heel) : 선체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 선체에 힐이 생기지 않고 플랫 하게 유지되어야 보트 스피드가 난다.

*풍하 범주 : 뒤에서 오는 바람을 이용해 바람이 부는 방향과 배의 진행 방향이 같은 것.


알듯 말 듯 조금 재밌어진 ILCA 6 세일링 (4월 15일)

 이번에는 풍상을 잘 타보겠다고 공부도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갔다. 거스트가 오면 바람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거스트가 지나가면 새 바람을 안기도 하고 시팅에 공을 들여보니 풍상은 이렇게 타는 거구나 하고 감이 왔다.

 김포에서 일하는 친구를 꼬셔 배를 띄우라고 했다. 1인승도 두대를 나란히 띄워 같이 타니 또 남다른 재미가 있었다. 친구와 나의 범주 각도, 배 밸런스, 세일 모양을 비교하며 타보았다. 친구에 비해 풍하 범주 스피드가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조언을 구했다. 조언에 따라 붐뱅을 좀 더 쓰고 앉는 위치도 앞으로 당겨보았다.


세일러 메이트 류코와 동반 세일링 (4월 16일)  

 류코는 2인승 딩기요트 470의 파트너인데 시간도 내고 차터비도 내서 함께 ILCA 세일링을 해주었다. 3시간가량 함께 세일링을 하면서 레이스 하듯 풍상 코스와 풍하코스를 타보았다. 류코는 요트계 찐 고인 물답게 1인승 딩기 요트도 자유자재로 탔다. 거스트가 와도 배를 플랫 하게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풍상 범주를 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런데 웬걸, 풍하 범주 때는 류코가 나를 따라잡지 못하기도 해서 내심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후훗). 류코는 무거운 배를 차터 해서 장비 탓이라고 했다.

나란히 풍하 범주 하는 모습
물 튀김까지 만들며 기갈나게 풍하 범주 하는 류코
아직 좀 어설픈 나의 풍하 범주 모습. 너무 뒤에 앉아 선체 앞이 들렸다.


찾는 자에게 배움의 기회가 온다 (4월 23일)

 이제 김포로 세일링 나가는 게 조금 익숙한 일상이 됐다. 늦잠 자고 오후 느지막이 바람 부는 시간에 맞추어 나갔다. 이번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여유롭게 쉬고 있는 요트 선수 출신 동생을 붙잡았다. 범장 한 가지를 물어보니 메인시트 길이, 아웃홀 길이, 커닝햄 길이, 붐뱅 고정 숏코드, 트래블러 시트까지 전체 범장에 대해 수정받았다. 아, 뭐 하나 제대로 되어있는 게 없었다!

 짧았지만 모터보트를 몰고 와 코칭도 해주었다. 뒤에서 오는 바람을 온전히 이용하는 런 코스 타는 법을 알려주었는데, 코스와 세일을 맞추니 배가 부웅~하며 순간 속도가 빨라졌다. 또 한 번 몸이 찌릿하고 짜릿한 바람뽕을 느낀 순간이었다.


 ILCA는 1인승 요트이지만 결국 세일링은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더욱 느낀다. 서로 배를 탈 수 있도록 돕기도 하고 실력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성장하기도 한다. 단지 기술적인 팁뿐 아니라 바람, 배, 동료, 세일링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나보다 먼저 입문한 선배들에게 배운다. 나와 같이 세일링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일링을 준비하고, 배를 타고, 마치고 서로 피드백을 나누는 모든 순간순간들이 소중하고 즐겁다. 연초에 꽤나 어둡고 거친 시간들을 보내왔는데, ILCA 타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행복하다. ILCA와 ILCA 덕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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