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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ilorjeong May 24. 2023

바다, 크고 멀고 쎄다

첫 딩기 요트대회 참가 후기 2 (2023. 4. 전국생활체육대축전)


 긴장되는 것도 아니고 기대되는 것도 아닌 이상하고 미묘한 마음으로, 대회 둘째 날 아침을 맞이했다.


둘째날의 외항. 바람은 여전히 쎘지만 파도가 낮아진 모습이다.

 오전 9시 스키퍼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부터 움직였다. 기상 상황의 영향을 막대히 받는 종목인만큼, 대회가 치러지는 동안 매일 오전 스키퍼 미팅을 열어 경기 운영 관련 변경 사항들을 안내해 준다. 경기 수역이 어디일까. 나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바람 세기는 전날과 비슷했지만 파도는 낮아져 있었다.

 드디어, 바다에서 경기가 열리게 되었다.  


*스키퍼미팅: 경기운영회에서 대회 당일 아침 선수들 대상으로 안내 및 주의 사항을 전달하는 미팅.


 바다에서 딩기 세일링!

 서울에서 후포까지 5시간을 걸려 친구도 없이 혼자서 이 대회를 나온 이유였다. 서울 사는 동호인 선수가 주로 세일링 할 수 있는 곳은 강 또는 호수였다. 가끔 기회가 있어 바다에 나가보면, 파도와 조류를 겸비한 바다에서 느껴지는 힘은 비교할 수 없이 막강했다. 바다 세일링은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긴장되었지만 어제 잘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바다로 나갔다.


둘째날 출항 준비를 하는 선수들


 경기 스타트 전 잠깐 연습시간이 주어졌다. 우선 풍상 범주부터 해보았는데 긴 메인시트*가 잘 정리되지 못하고 꼬이는 현상이 발생했다. 메인시트를 선체 앞쪽으로 두니 메인블록*에 끼어버렸다. 메인 시트를 선체 뒤로 빼야겠다고 생각만 정리했는데 스타트 시간이 다 되었다. 이런, 풍하 범주 연습도 못해보았는데. 어쩔 수 없었다.


*메인시트: 가장 큰 범주에서 세일(돛)의 모양을 조절하는 시트. 메인시트로 세일을 활짝 열기도 하고 선체 아주 가까이 당기기도 한다.

*메인블록:  메인시트가 통과하는 블록

메인시트와 메인블럭. 시트가 블럭을 통과해야 하는데 여러줄이 블럭 안에 들어가 꼬이는 현상이 발생했다.

 

 빵! 5분 전 클래스기가 올라가고 천천히 스타트 라인을 향해 범주 하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보았다. "으악!" 메인시트가 틸러 익스텐션*에 칭칭 감겨있었다. 우선 풀어야 해! 다급한 마음으로 시트를 풀었는데, 나는 아직 스타트라인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고, 빵! 경기 스타트 신호가 울려버렸다.


*틸러 익스텐션: 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키의 손잡이 부분. 아래그림의 막대 부분이다.

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러더(방향키)


 절망감이 몰려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루종일 왔다 갔다 하던 바람은 스타트 신호와 함께 미풍으로 아주 약해져 버렸다. 강풍에서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보트 스피드를 내서 거리를 좁힐 자신이 있었지만 미풍은 자신 없었다. 미풍은 또 다른 미지의 영역이었다. 마음이 엄청나게 조급해졌다.


 세일에 바람을 좀 더 받게 하고자, 아웃홀시트*를 풀었다. 문제는 한 번도 피코에서 아웃홀을 풀고 당겨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을 스타트 후 시도한 것은 급한 마음에 저지른 실수였다. 아웃홀은 내가 의도한 것보다 세네 배 넘게 완전히 풀려버렸고, 세일과 붐 사이로 바람은 다 빠져나가 버렸다. 게다가 그 사이에 바람은 다시 강풍으로 바뀌었다.


*아웃홀시트 : 삼각형 세일 모양의 하단 가로면 (foot)을 당겨주고 풀어주는 시스템.


 강풍에 아웃홀을 다시 당겨 원상복구 하려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다 거스트가 오고 배는 뒤집어지고 말았다.


 오 마이 갓. 피코는 한 번도 세워본 적도 없는데. 최악의 상황이 오자 되려 마음은 갑자기 차분해졌다. 더 이상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배가 풍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안정적인 지점에 다다른 후 배에 올라타 복원시켰다.  

 

 배에 다시 올라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배들은 이미 피니시까지 하는 모습이 보였다. 깊은 좌절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는 목소리로 "리타이어"를 외쳤다.  


 심판정에서 한 번 더 물어봐주셨다.


 "정말요?"


 다시 머릿속에 번뇌가 시작됐다.  

 그래. 내가 1등 하려고 나왔니? 경험하러 나왔잖아. 경험하자!


 바람에 날려 거추장스럽게 머리에 얹어져 있던 모자를 아예 벗어젖혀버렸다. 침착하게 배를 멈추고, 아웃홀을 다시 당겨보았다. 이제야 당겨진다. 그리고 다시 풍상 범주. 이제야 배가 컨트롤되고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1 마크를 향해 열심히 가고 있는데, 경기가 끝났다.*


*요트 경기는 1등 배가 피니시 한 후 클로징 타임이 정해져 있다. 이 대회의 경우 10분이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말이 없어졌다.


 등수가 낮은 것은 괜찮았다. 오늘 경기에서 만족스러운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캡사이즈가 되었을 때 마음을 모두 비우고 천천히 배를 일으키고 배를 멈춘 뒤 아웃홀을 재정비한 것. 이 것 이외에는 잘한 것이 한 개도 없었다. 첫 술에 배부르랴마는 바다와 친해지지 못한 내가 아쉬웠다.


 별 다른 수가 있나. 더 공부하고 더 타봐야지. 서울에서 연습하고, 이미지 트레이닝 하고, 바다 세일링 할 기회가 있으면 또 나가고. 그럼 느리더라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속상한 마음을 스스로 다독였다.


 어제 성적이 좋았던 덕에 종합 2위를 했다. 트로피와 상장, 메달까지 3종 세트를 받았다. 바다 경험하러 출전했다가 시상까지 받고 동호인 선수로서 많이 배우고 즐거웠던 1박 2일의 대회였다.

 내년에는! 금메달 따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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