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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Nov 23. 2020

누구나, 자신이 제일 힘들다.

현명한 상급자의 조직관리법


  병사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생기면 묻는 말이 있다. 우리 부대에서 누가 제일 힘든 거 같아? 병사들은 보통 ‘자신’ 또는 ‘후임병’을 꼽는다.


 어떤 점이 힘든지 토론하다 보면 상병이나 병장들 입에서 ‘요즘’ 신병들은 ‘라떼’랑 달리 편하다거나 기합 빠졌다는 말도 나온다.(불과 1년 전에 너희들이 듣던 소리다.)  가장 힘든 사람은 누구 일까?


 나의 대답은 ‘자기 자신이 제일 힘들다’이다.

 어제 전입 온 신병은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데다가 하는 일마다 낯설어 힘들고, 일병은 이제 좀 적응하려니 신병들에게 알려주고 관심 가져야 해 정신없고, 상병은 이말삼초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여자친구와 헤어져 매일 밤 베갯잇을 적시고, 병장은 분대장 역할하려니 속이 다 문드러지고, 하사는 나이 비슷한 병사들이 말도 안 듣고 은근슬쩍 무시하는데 주어지는 임무는 점점 많아져 버겁고, 소대장은, 중대장은, 대대장은...

 

 사단장, 사령관, 참모총장은 힘들지 않을까? 내가 볼 땐 가장 여유 없게 일해야 하는 직책이다. 일정은 빈틈이 없고, 보고는 줄을 이으며, 수시로 결정하고 결심해야 한다. 그에 따른 책임의 무게도 가볍지 않다.


 ‘내가 제일 힘들다’는 생각은 곧 ‘내가 제일 억울하다’는 인식으로 전환된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조직은 나에게 불리하게 운영되고, 나의 큰 성과는 타인의 작은 성과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다. 마음에 드는 일이 없고 가슴엔 울분이 쌓인다.


 그러다 누군가와 갈등이 일어나면 스파크가 번쩍 튄다. 서로의 울분이 맞닿아 대폭발로 이어지면 사안의 본질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잿더미만 흩날린다. 승자는 없고 상처투성이 패자들이 눈만 끔벅거리며 서로를 쳐다본다. 최악의 상황이다.

 

 요즘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군대라고 다르지 않다. 자신의 이익이나 권리가 침범당했다고 생각되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예전 같으면 조금씩 참고 또 양보해왔을 일들이, 지금은 스파크가 튀어 여기저기서 폭죽 터지듯이 터진다. 갑과 을이 사이가 좋지 않고, 을은 병과 천적 관계인데, 병은 정과 원수다. 환장할 노릇이다.


 이제는 ‘부서원들 사이의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고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것이 부서장의 임무에 추가되었다. ‘내부 갈등을 관리하는 능력’이 리더십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은 것이다.


 조직의 효율과 부서원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갈등을 줄여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누구나 자신이 제일 힘들다’는 점을 상기해,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힘들고, 억울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는 것을 추천한다. 먼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지 공감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들어준다.

때론 속내와 다른 말도 해야 한다.


 ‘별일 아닌데,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까지야, 이 정도 하면 되지 않았나, 다른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닌가’ 하는 내면의 소리를 잠재워야 한다. 돌아서면 깊은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참는 것도 상급자의 급여에 포함되어 있다’는 어느 선배의 조언을 되새기자.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삶의 큰 굴곡을 간신히 이겨내고 힘겹게 전진하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자. 그러면 대체로 상대의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통해 ‘조금 더 너그러워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상급자의 태도는 부서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부서 전체 분위기가 서로에게 너그럽게 대해주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주변을 좀 더 너그럽게 바꿔주는 것, 현명한 상급자의 조직 관리법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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