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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Jul 19. 2021

여보 건강하게 살자, 50일의 성과


아내와 건강하게 오래 살자며,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여보, 건강하게오래 살자.그래서 준비했어. (brunch.co.kr)


프로젝트를 계획하며 임팩트 있는 시작을 구상했기에 사전 예고 없이 훅 치고 들어갔다. 목표와 성과를 나 혼자 고심해서(현재 체력과 능력을 감안해) 정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수정할 여지 없이 일단 밀어붙임으로써 명확한 기준을 설정했다. 논의와 협상이 가미된다면 기준이 흔들리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동기부여성공했다. 아내는 눈이 휘둥그레지며(입도 벌어지며)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기세를 몰아 현재 몸무게를 측정하자고 설득했다. 그래야 기준점을 잡고 확실하게 시작할 수 있으니.


난데없는 체중 측정에 아내는 적잖이 당황했다. 핸드폰 내려놓고 시계 풀고, 화장실도 다녀온단다. 옷도 가벼운 걸로 갈아입으려 하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약간의 정비(?) 시간을 가진 후 측정에 임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이다. 다 큰 여자 몸무게를 이렇게 대놓고 옆에서 지켜보는건 처음인 것 같다.


사뿐히 올라서자 체중계가 벌컥 화를 내듯 숫자를 토해낸다. 예상했던 것보다  높았지만 놀라지 않은 척했다. 아내는 좀 더 적게 나올 수 있었는데 밥 먹은 지 얼마 나지 않아 배가 묵직하고 또 뭐가 어떻고.. 이런저런 설명을 잇는다. 그제야 나는 말했다.

      

친구야. 한 치 앞을 못 보니. 지금 측정한 몸무게가 앞으로 기준점이 될 텐데, 적게 나가는 게 좋겠니.      


'아뿔싸. 다시 재자.'  


ㅋㅋ그런 게 어딨겠어. 이제 시작이야.      


그날부터 아내의 눈빛이 달라졌다. 성과와 상금에 대한 기대, 이루고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눈빛에 총기를 더했다. 그날 나들이를 나갔다가, 그늘로 된 공터가 있어 돗자리를 깔아 아이들을 앉히고, 6분 페이스를 알려주기 위해 1km 달리기를 해봤다. 달리기가 너무 생소한 아내이기에 생각보다 빠른 6분 페이스에 놀라는 눈치더니, 이내 적응해 제법 잘 따라왔다. 슬리퍼에 쓸려 발이 까졌지만, 그래도 싱글벙글이다. 아이들도 '엄마 힘내라'를 목청껏 외치며 힘을 보탠다.

     

다음날 아내가 말한다. 누워서도, 일어나서도 생각난다고. 그리고 덧붙인다.     


'좀 고맙더라. 포기 안 하고 고쳐쓸 생각 해줘서.'    


ㅋㅋ고쳐쓰다니. 요즘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이 핫하다더니. 연식도 안전진단 통과하고 리모델링 승인받기에 적당한 구축이긴 하다.

   

다음날부터 아내는 아이들 등원등교 시킨 후 집 주변 산책의 시간과 강도를 늘렸다. 1시간, 2시간, 2시간 30분까지 산과 바다를 즈려밟고 다녔다. 달리기도 시도해봤지만, 혼자하기엔 1km 이상 달리기가 힘들다고 해 일단 걷기를 추천했다. 그러다 날이 더워져, 계단으로 종목을 바꿨다. 계단 타는 능력은 의외로 뛰어났다. 17층을 오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후 다시 오르는 식으로 5번을 반복했다. 85층을 오른 것이다. 어린시절 기억 속 상징적 고층 건축물인 63빌딩을 걸어 오르고도 20층 가까이 더 올랐다. 그렇게 계단 타기와 산책, 간헐적 줄넘기를 이어가며 신체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중ㆍ장기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중간점검과 성과측정을 통해 미비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동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주가 시작한 지 50일이 된 날이었다. 그간 걷고 (가끔)뛰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체력을 길렀고, 신체 변화도 체감했다. 50일이 된 줄 모르는 아내를 꼬드겨 같이 운동을 나갔다. 아내 인생에서 한 번도 성공해보지 못한 3km 달리기를 시도해보자며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지금까지 길러온 체력이면 충분하다, 페이스를 잡아 줄 테니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힘들면 멈춰도 되니 한번 해보자, 되는데 까지 만이라도 가봐야 현재 체력과 그간의 성과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온갖 감언이설 끝에 달리기 시작해 6분 페이스로 나가는데 제법 잘 따라온다.


1km 지점에서도 여유가 느껴지기에 길러진 체력과 지구력을 칭찬해줬다. 그런데 1.5km가 지나니 아내가 '오늘은 2km까지만 뛰기로 (지금 방금)결정했다'는 통보를 해온다. 일단 가보자. 2km 에서는 2.5km만, 2.5km에서는 지금까지 달린 거리가 아까우니 조금 더 힘내라 독려해, 결국 생애 첫 3km 달리기를 성공했다. 비틀비틀 걸으며 숨을 몰아쉬고 있지만, 충분히 여력이 남아 보인다.

      

아내는 아직 그게 50일 테스트였다는 걸 알지 못한다. 프로젝트는 너무 늘어지면 동력이 떨어지고, 목표가 흐려진다. 길어도 6개월 안에 끝내야 한다. 50일 시점에서 목표 달성률은 32.5%로 확인되었다.       


먼저 체중은 2.5kg 감량해 목표 7kg 대비 35% 달성, 달리기는 3km로 목표 10km 대비 30% 달성했다. 상금은 200만원 확보했다. 이제 박차를 가할 때다. 지금 기세를 유지하지 못하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어렵다.


아주 좋게 생각해보면 시작이 반이니 50%, 그리고 32.5%를 달성했으니 66.25% 달성했다 우길 수 있다. 어려운 시작과 초기 성과를 거뒀으니, 동력을 유지하자.




여보. 하자. GOGO. 지금 아니면 나중에 더 어려울 거야.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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