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순천시 승주읍 주민이 되었어요-
오늘부로 순천시 시민이 되었어요. 지난주 금요일에 제주항에서 여수항을 오가는 골드 스텔라호를 타고, 8개월 만에 제주도와 이별을 했어요. 물론 그 전에도 잠시 제주도를 비운 적이 3번 있었어요.
가족과 이별한 처량한 홀아비로 사는 게 너무 허망해서, 투신자살을 하겠다며 인천으로 올라간 적이 한번 있었고, 나의 첫 반려묘 키키를 데리러, 유기동물 보호소가 있는 청주공항에 갔다 왔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탈제주를 최종적으로 결심했던 10월 중순에, 앞으로 서울에서 살게 될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서, 제주도를 잠시 비웠던 적이 있었었요.
하지만 3번의 탈 제주는 다 실패했어요. 지금 이렇게 살아서 글을 쓰고 있으니, 심한 조울증으로 어렸을 때부터 여러 번 시도했다가, 올여름에도 시도했던 인천시에서의 투신자살도 실패했고, 사랑스러운 반려묘 [키키]와 평생을 함께 살겠다는 다짐도 실패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구했던 전셋집도, 도저히 서울로 다시 올라갈 자신도 명분도 없어서 포기했어요.
여수항에 내렸던 지난주 금요일 밤 11시에 차를 몰아 무작정 달리다 보니, 무슨 악연인지 선연(善緣)인지는 모르겠지만, 순천으로 향하고 있었고, 5일이 지난 지금, 조계산의 대표적인 천년고찰 중 하나인 선암사의 산마을, 순천시 승주읍에 머물게 되었어요. 이곳은 조계산의 가을이 너무도 아름답게 물들어 가고 있는 곳이에요.
<천년 고찰 선암사를 오르는 길에서 볼 수 있는 승선교의 가을. 계곡물에도 붉은 가을이 물들어 있다 >
선암사는 이안 PD가 2000년대 초반에 서울 MBC 라디오에서 [국토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의 연출을 할 때, 한번 들렀던 곳이기도 해요.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때는 초겨울이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선암사의 겨울 하늘 역시, 파랗고 드높은 가을 하늘 못지않게 아름다웠고, 인터뷰를 해주셨던 큰 스님께서 솜 누비 된 승복을 입고 계셨던 게 기억나요.
선암사에는 직접 차나무를 키워서 찻잎을 덖고, 쪄내 직접 차를 만드는 오랜 전통이 있는데, 당시에 선암사의 전통차 문화에 대해서 취재했었거든요. 조계산과 천년 고찰 선암사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서 잠시 들렀던 이안 라디오 PD는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었어요. 이후 20년 동안 가슴속 깊이 선암사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살면서, 방송국 지인들에게 순천에 가면 꼭 선암사에 들러보라고 얘기하곤 했었어요.
20년 만에 다시 들른 선암사를 오르는 산길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선암사 뒷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50여 그루의 수령이 350년~600년이 넘은 선암매(仙巖梅 : 선암사 매화나무)도, 비록 꽃은 피어있지 않았지만, 오랜 세월의 향기를 담고 고혹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어요. 875년에 창건되어 1200년이 되어가는 선암사는, 정유재란과 한국전쟁 때 많은 건물이 화재로 소실되기도 했지만, 아직도 천년 세월의 모습을 생생히 간직한, 매우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이기도 하지요.
<선암사 경내를 지나가는 자줏빛 법복의 행자 스님. 마침 행자 스님 서른 분 정도가, 선암사에서 교육을 받고 계셨다. 산속의 겨울은 추운데, 행자 스님들이 올 겨울에 추위로 너무 고생하지 않으셨으면 하고 바랐다.>
취재를 위해서 처음으로 선암사를 찾았던 서른 살 그때는, 아직은 차맛을 잘 모를 나이라서, 큰스님께서 따라 주셨던 차 맛이 좀 밋밋하다고 생각했는데, 이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선암사의 큰 스님 방에 앉아 스님이 손수 우려내신 차를 함께 마셨던 그날의 차만큼, 깊은 향과 맛을 가진 차는 이후에 마셔보지 못했던 거 같아요.
그저께 순천시 전통차 체험관에 들러서 물어보니, 선암사 스님들이 직접 가꾸고 만든 차는, 엄청나게 고가일 뿐 아니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시중에서 유통이 되지도 않는다고 하네요.
<순천시에서 운영하고, 선암사를 오르는 길목에 있는, [전통차 체험관]. 3천 원에 조계산과 아름다운 한옥에 깃든 가을을 만끽하면서 맛있는 차를 마실 수 있다 >
지금 이안 작가가 승주읍 산마을에서 묵고 있는 민박집은, 주인 내외분이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6천 평 정도의 밭에서 돌배와 감 농사를 지으세요. 돌배는 우리가 추석 때 먹는, 크고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 배는 아니고, 크기는 작은 자두 정도에, 단맛이 나지는 않지만, 약용으로 쓴다고 해요. 그리고 주인집에서 감 농사를 많이 지으시기 때문에, 곧 있으면 마당에서 곶감을 만들 거래요. 그때는 저도 곁에서 돕고, 곶감도 좀 얻어먹어야겠어요.
비록 주인집 할머니라고 말은 했지만, 함께 살고 계진 주인집 할머니의 친정어머님이 진짜 할머님 같고, 주인집 사장님과 사모님은 그냥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 정도로 젊어 보이세요. 친정어머님의 증손자와 증손녀들도 멀지 않은 곳에 사는, 4대가 단란한 가정이었어요. 주말에 손자들이 온다는데, 아이들이 직접 따면서 즐거워할 수 있게, 사과나무에 사과를 남겨 두셨더라고요. 손자들이 오면 이안 작가도 용돈으로 만원씩 주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서울에 있는 이안 작가의 두 아들도, 제가 용돈을 주면 아빠에게 한 번쯤은 환한 웃음을 보여줬었는데, 사랑스럽던 그 모습이 떠올랐어요. 지금은 아버지라는 존재를 잊고 살고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파요.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잊힌다는 건, 참 슬픈 거 같아요. 잊힌다는 건 기억 속에서 나의 존재가 사라지는 거고, 그럼 영영 없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젠 서울의 아내와 두 아들에게는 없는 존재인 듯해요. 하지만 조계산의 아름다운 가을과, 천년 세월을 굳건히 견뎌낸 선암사가, 부족하고 못난 이안 작가에게, 기댈 수 있는 품을 열어주길 바라봅니다.
이안 작가는 아마도 내년 봄에 선암사의 홍매가 필 때까지, 올 가을과 겨울을 이 곳 조계산의 산마을에서 보낼 거 같아요. 가로수마다 노랗고 붉은 감이 익어가는 순천시 선암사 승주읍의 가을은, 모든 슬픔과 잘못을 잊을 만큼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600년 수령의 선암사 매화나무(좌측). 선암매(仙巖梅)라고도 불리는 이 매화나무들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천년을 넘게 흘러내리며, 신라시대 스님들도 마셨을 선암사의 약수는 맛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