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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Nov 14. 2020

우린 여기까진가요,  죽어도 난 아닌가요

-올 가을도 지나가고 있구나...-

김현성의 [소원]이란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한 계절을 보냈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보낸 계절이 한 번으로 끝난 게 아니고, [소원]을 들으면서 보내던 계절이, 여러 번 반복했던 때도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수 조규찬의 형인, 조규만이 작곡한 멜로디도 아름다웠지만, 원태연 시인이 작사한,   

   

아직도 그대 사진은/  날 보며 웃고 있는데

우린 여기 까진 가요 / 죽어도 난 아닌가요

이해해보고 싶지만 / 그게 잘 안되나 봐요

이제는 끝인걸 알지만 / 생각에 마지막엔

이러지 말았으면 해요     


라는, [소원]의 가사가 애절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실연한 모든 연인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실연의 계절을 보내고 있을 때도, 그런 계절을 보내지 않을 때도, 매 해 가을이 되면, 꼭 이 노래를 여러 번 들었다. 나에겐 가을을 보내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노래였다.     


어제 순천으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쓴 글에 대해서, 이혼한 아내가 전화를 해서 제 발 그 글을 지워달라고 말했다. 내가 회사에서 한 실수 때문에, 해고에 가까운 징계를 받고, 회사 구성원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나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적은 글이었다.      


25년간 동지였던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이젠 왕따가 된 외톨이의 글이었다. 회사에서 중징계를 받은 사람으로서, 도저히 더는 회사를 다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퇴직을 하기로 한 사람이 괴로운 마음에 쓴 글이었다.      


이안 : 후배들이 나 많이 미워하지?

후배 : 솔직히 말하면, 거부감이 많이 있어요.

이안 : 그래...     


그래도 혹시나 하고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 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도저히 슬픔을 가둬둘 수가 없어 쓴 글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아내 : 자기야 제발 그 글 좀 내려줘. 그 글을 보니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이안 : 알았어... 지울 테니, 그만 힘들어해.     


지난봄 이후, 나는 이제 더 이상은 내가 지킬 명예도, 누리거나 얻고자 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저 하루하루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큰 잘못을 하고, 루저에 외톨이가 된 사람도,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과 감정이 있으니까, 그걸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을 뿐이다.      


미래의 어느 날, 내가 쓴 형편없는 '루저 왕', '왕따 왕'의 기록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이, 뭘 더 지키겠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숨겨야 할까? 생각했었다.


아내 : 자기야 나중에 아이들이 그 글을 보면, 얼마나 마음 아파하겠어.

그러니 제발 지워줘. 난, 자기가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면서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

이안 : 그래 알았어.      


많이 슬펐다. 재산 분할은 물론, 이미 서로가 모든 관계를 정리하기로 한 아내가, 아직도 나 때문에 걱정하고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웠다. 아내가 나와 결혼하기 전에 장모님은 늘, “둘째 딸은 재벌집에서 데려간다고 해도 아까운 딸”이라고 말씀하셨었다.     


아내는 그만큼 능력도 있고 예쁜 사람이었다. 외모가 예쁠 뿐만 아니라, 생각이 깊고 마음도 예쁜 사람이었다. 나로 인해 아내의 명예가 더 추락했지만, 그 일 때문에, 나를 한 번도 비난하지 않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오히려 나에게 위로를 해주던 사람이었다.    


가끔 회사 후배들이 나를 비난하고 있다는 얘길 들으면, 나로 인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사람은 나의 아내인데, 왜 다른 사람들이 나를 훨씬 더 많이 비난할까 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친구 : 이안아 네가 이혼했더라도, 네 아내처럼 널 생각해주고, 마음이 착한 여자가 아니라면,

만나지 말아라. 난, 네가 또 상처 받는 거 싫다.

이안 : 응. 누굴 만나게 되면, 신중하게 생각할게.

     

가족과 헤어지고 혼자 산 지, 이제 9개월째. 서울의 친구들은 아직도 날 걱정한다. 내가 혼자 너무 외로워할까 봐, 혹시 마음에도 없는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사귀다가, 더 큰 상처를 받기라도 할까 봐.      


나에게 더 상처 받을 가슴이 남아 있기나 할까?

지난 25년 동안 내 젊음과 열정을 다 바치며,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함께 고난을 겪었던 동지들로부터 외면받고, 내 마음속 사랑을, 전부 쏟아부었던 아내와 두 아들과 헤어지고, 혼자 떠돌며 살고 있는 사내의 가슴에 더 큰 상처가 생길 자리가 있을까?     


아마도 나보다 더 넓은 가슴과 심장을 가진 사람은,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심하고 작은 내 가슴엔, 더 이상 상처 받을 마음이 남아있지 않으니, 더 이상 아파할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알고 있죠 / 이것이 끝이라는 걸

두 번 다시 볼 순 없겠죠

이젠 나아닌 다른 사람과 / 또 다른 추억들을

만들어 가겠죠     


올해도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오늘도 순천에서 보내는 깊은 밤에, 김현성의 [소원]을 듣고 있다.

서울의 친구들이, 힘든 시기를 함께 보냈던 동지들이 보고 싶은 밤이다.


<순천 금둔사에서 내려다본 낙안읍성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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