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안 Nov 08. 2020

요통과 투덜이 스머프

-용서하렴, 스머프 마을엔 투덜이도 똑똑이도 착한이도 있으니까...-

요통이 극심해서 새벽에 잠을 자다가 119에 전화를 걸어서 응급차에 실려간 적이 몇 번 있었어요. 아침부터 허리가 아프다가, 저녁 8시~9시 무렵부터 전혀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허리가 아팠는데, 밤새 몸을 뒤척일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다리나 고개를 움직이기도 어려웠어요.      


그래서 결국 새벽 2~3시쯤에 가족을 깨워서 119에 전화를 해 달라 부탁을 하고, 인근 병원의 응급실에 실려갔어요. 원인은 흔히 말하는 허리 디스크이지만,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허리가 '삐끗'하고 어긋나면, 주변 신경이 끊어지거나 염증이 부풀어 올라 척추뼈를 주변의 신경으로 밀어내기 때문이에요. 예민한 감각을 가진 신경이 눌리니까 사지가 뒤틀리면서, 입에서는 '끙!' 하는 신음소리가 나는 거죠.      

 

이안 작가는 마흔 살이 되었던, 10 여전 전부터, 이런 증상이 매해 2~3번 정도 나타났는데, 그때마다 몸을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못하고, 마치 식물인간처럼 꼼짝도 못 하고 누워 있어야만 했어요. 그래도 병원에 입원해서 수액으로 진통제를 주입하면, 척추 신경의 통증이 점차 누그러졌고, 1주일에서 열흘 정도 그 상태로 누워있다 보면,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하게 되어 퇴원을 했어요.      


< 그 어느 새벽, 아닌 밤중의 홍두깨처럼 응급요원분들에게 수고스러움을 안겨드리곤 했던 이안 작가. 고마우신 119 구조대 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하다>


올 3월 봄부터는, 제주도와 순천 등 타지에서, 먹고 자면서 허리 관리를 잘할 수 없었어요. 여러 번 이사를 다니다 보니, 무거운 짐을 옮길 때도 많았고, 또 제주에서는 나무를 300여 그루 정도 키우면서, 화분을 4층까지 나르는 일이 많았거든요.      


그래도 나름 진통제를 충실히 먹었고, 이런저런 관절에 좋은 영양제도 복용했지만, 순천에 오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허리 주변 근육이 바짝 긴장되다 보니, 다시 통증이 시작되었어요.      


순천에서 가족도 없이 혼자 지내면서, 어느 새벽에 또다시 극심한 통증이 오게 되면, 혼자 어떻게 버텨낼 자신이 없었어요.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위해서 119에 구조 전화를 걸어줄 사람도 없다는 게 두렵기도 했어요. 그래서 며칠 전 서울에 올라와서, 오늘 청담동의 제법 큰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받았어요.     

 

저의 담당 선생님은, 2016년 이후 MRI 촬영을 하지 않았으니, 이번에 다시 촬영을 하자고 하셨어요. 허리 통증이 허벅지 뒤쪽과 종아리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디스크가 아래로 더 밀렸을 거 같고, 또 등과 경추에도 통증을 호소하고 있으니, 허리와 등, 그리고 경추까지, 함께 MRI를 찍자고 하셨어요.      


<1970년대 후반부터 영국의 에버딘대학과 노팅엄대학에서 연구 개발해서, 세계적으로 사용하게 된 MRI. 자기장을 이용해 인체의 단면을 3D로 촬영할 수 있게 하는 장치이다. 브런치 독자 중 한 분이 병원에 가서, 이 장치에 눕게 된다는 건, 독자 분 몸에 심각한 이상이 생겼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안 작가는 이번 촬영을 위해서 852,800원을 지출했다. 으~~, 순천에서 이안 작가의 한 달치 월세보다도 큰돈이닷~ >


이안 작가는 군 복무를 등촌동에 있는 육군 수도병원의 [방사선과]에서 했어요. 그러다 보니 MRI나 CT 등의 촬영이 낯선 사람은 아니에요. 하루에도 수백 명의 병사와 장교들이, 신검을 받으러 왔고, 또 훈련 중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전투부대 병사들이, 헬기로 수송되어 오곤 했어요. 응급실은 늘 아픈 병사들로 가득했고, 국군 수도병원의 방사선과에서도, 거의 매일 CT나 혈관 촬영 등이 이어졌어요.      


병원에서 이안 작가가 오랜 기간 근무하긴 했지만, MRI를 찍을 때면 늘 블랙홀 같은 곳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MRI는 자기 공명 장치를 이용해서 인체의 구조를 3D로 찍는 촬영기술인데, 그러다 보니 제 몸이 둥글고 아주 큰 자석 속으로 들어가고, 고속으로 돌아가는 기계의 굉음을, 30여분 정도 듣고 있어야 하거든요.      


우주는 무중력 상태이니까 굉음이 들리지는 않겠지만, 블랙홀 같은 곳으로 빠지게 된다면, 몸이 아주 엄청난 속도로 빨려 들어가면서, 무시무시한 속도가 만들어내는 굉음이, 귀가 아닌 몸으로 느껴질 거 같거든요.   

   

어느 병원이나 MRI를 찍을 때면 낡은 헤드폰을 하나 씌워주는데, 들리는 음악이 평범한 피아노 소나타 같은 게 대부분이고, 하도 많이 사용해서 그런지, 음질은 1920년대 발표된 [오빠는 풍각쟁이야] 같은 노래의, LP판을 틀어 놓은 것만 같아요. 아시죠? 그.. 왜,,. 지지직, 지지직 거리는.     


제가 병원 이사장이라면, MRI 촬영할 때 들려주는 음악을, 연령대에 맞춰 다양하게 바꿔줄 거 같아요. 가령 오늘 같은 날엔 ADELE의 [SOMEONE LIKE YOU] 같은 음악을 틀어주었다면, 이안 작가가 느꼈던 MRI 촬영의 두려움이, 유쾌함으로 다가왔을 거 같아요.       


<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아델의 명곡 SOME LIKE YOU가 담겨 있는 앨범 ADELE 21. 아델이 스물한 살 때 발표한 앨범이라서 21이라는 숫자가 붙어있다>


앞서 얘기한 이안 작가 집안의 남자들에게 유전적으로 나타나는, 등이 굽는(허리가 아니고 등이에요!) 꼽추 증상에 대해서 더 얘기해 볼게요. 이안 작가는 증조 할아버님은 뵙지 못했지만, 조부님은 어릴 시절부터 자주 뵈었어요. 그런데 어린 이안 작가가 조부님을 처음 뵈었을 때, ‘어,, 우리 할아버지는 왜 저렇게 등이 거북이 등 혹은 둥근 바가지처럼 구부러져 있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조부님이나 아버지께 왜 그런지에 대해서 물어보지 못했어요, 다행히 할아버님은 워낙 강건 체질이라서, 평생을 농사일로 몸을 심하게 학대하셨지만, 심하게 굽은 등 때문에 크게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으셨어요. 그래도 등이 워낙 많이 굽다 보니, 바로 누우면 마치 둥근 공을 하나 등에 받치고 자는 것과도 같아, 천정을 바로 보고 눕지는 못하셨어요.      


조부님에 이어 아버님도 등이 굽기 시작하셨는데, 아버지는 등을 바로 펴보려고, 매일 바닥에 누워서 등을 꾹꾹 누르셨는데, 그러다 보니 허리와 척추 쪽으로 무리가 됐는지, 큰 혹 같은 염증이 허리 근처 척추에 생기셨고, 얼마 전 제거 수술을 받으셨어요. 하지만 수술 이후 제대로 거동할 수가 없으세요.      


이안 작가도 나이 서른을 넘어가면서, 등이 굽는 증상이 나타났어요. 등을 펴기 위해서 매일 요가 봉 같은 곳에 누워서 등을 바로 펴고자 했는데, 그렇게 하면 아버지처럼 심한 요통에 시달리곤 했어요.     

 

나의 조부님과 아버님, 그리고 이안 작가 이렇게 3대가, 함께 모여서 꼽추춤을 춘다면, '곱사춤의 달인', 무형 문화재 공옥진 선생님보다 더 잘 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우리 집안 남자들 특히 장남들에게, 왜 이런 증상이 유전적으로 나타나는지는 모르겠어요. 특별한 검사를 받아보지도 않았고, 또 할아버지와 아버님은 그따위 꼽추 증상에 신경이 쓰이거나, 굴복할 만큼 나약한 세월을 살아오지 않으셨거든요.      


이안 작가의 할아버지가 겪었던, 인간성이 파괴될 만큼의 가난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아버지가 겪은 한국전쟁 와 베트남 전쟁에 이어서, 독재정권이 이어졌던 냉혹한 시절은, 꼽추가 겪어내야 할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또 꼽추였든 앉은뱅이였든, 그 무엇인가가 되었든, 잔인한 세월을 견디고 버텨내야만 하는 시절이기도 했어요.  


아버지는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지니까, 요 몇 년 사이에 짜증이 많아지셨어요. 이안 작가도 역시, 점점 세상이 삐딱하게 보이는, '삐딱이 스머프'가 되어 가고 있어요.(존경하는 회사 선배님 한 분은 이안 작가에게, 본인만 옳다고 주장하는 소통불가에다가, 아집을 부리고 있다며, 크게 나무라는 톡을 얼마 전에 보내시기도 했어요) 게다가 저는,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 겪은, 치욕적인 궁형(남자를 거세하는 형벌) 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이혼과 아이들과의 이별을 겪고 있으니까, '삐딱이+투덜이 스머프의 제곱'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사마천이 살았던 시기에 중국에서는, 왕으로부터 궁형을 당하는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는 불문율 같은 게 있었어요. 하지만 사마천은 매일매일의 치욕을 씹어 삼키며, 인류 최고의 역사서 [사기]를 평생에 걸쳐 저술했어요. 굴욕과 거대한 고통을 직면한 인간은 대략 세 가지로 형태로 변신을 하는 거 같아요. 사마천처럼 위인이 되거나, 이안 작가처럼 투덜이 스머프가 되거나. 혹은 아주 비겁한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지요.)

<스머프 나라의 스머프들. 스머프 나라에는 예쁜이 스머패티도 투덜이도 똑똑이도 요리왕도 파파 스머프도 있지만 다들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 


삐딱이의 스트레스는 주로 대학 동기들에게 풀고 있어요. 프랑켄슈타인 이종석, '고대 88학번 최재성'(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속 채시라의 연인) 박창우, 그리고 변강쇠 진성이, '고대 원빈 용가리'에게 풀어대고 있어요. 언제까지 친구들이 제 투정을 받아줄지는 미지수예요.           


다음 주 화요일에 MRI 결과가 나온다는데, 그때까지, 혹은 그 이후 수술을 받게 된다면, 훨씬 더 긴 세월 동안 친구들은 저의 투정을 받아내야 할 거 같아요. 은행나무 잎으로 뒤덮인 서울의 노란색 가을이, 12월에 눈이 내려서, 하얀 겨울로 뒤덮일 즈음이면, 투덜이가 다시 착한이 스머프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느닷없이 그리고 갑툭튀로, 아이유가 저에게 윙크라도 한번 해준다면, 예전처럼 이안 작가의 마음속에, 착한이 요정이 올지도 모르고요.   


<하얀 겨울이 오면, 마법학교 호그와트로 달리는 기차를 타고, 세상 사람 모두의 고민과 아픔이 사라질 수 있는 세게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길~>

이전 07화 우린 여기까진가요, 죽어도 난 아닌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