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도 가을은 와 있었네!-
서울에 와서 세 밤을 잤어요. 이안 작가는 그동안, 올 가을은 순천의 조계산에만 찾아온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서울 부모님 집에 와 있다 보니, 강남구 대치동에도 가을이 와 있었어요. 노랗게 익어가는 은행나무잎에도, 유리창마다 단풍잎을 창호지처럼 붙여놓은 자동차의 앞 유리창에도, [스타벅스]와 [커피빈]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옷차림에도 가을이 와있어요.
심지어 서울의 강남 삼성동 코엑스에는, 12월의 크리스마스도 벌써 와 있었어요. 상점과 레스토랑에서 캐럴이 울려 나왔고, 코엑스 무역센터 앞에는 화려하고 예쁜 조명을 단,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도 서 있었어요.
<서울 강남에는 벌써부터 한 겨울의 크리스마스가 온 거 같아요. 올해 전 세계의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도 산타 할아버지는 찾아올까요? 루돌프와 함께 마스크를 쓰고 오실지도 모르겠어요. 트리와 캐럴이 넘쳐나는 서울 강남의 분위기만 보면, 부자 동네에는 이미 오신 거 같기도 해요. 하지만 산타할아버지는 부자동네보다는, 순천의 산골 마을에 꼭 오셔야 하는데...>
삼성동의 트레이드 마크 중의 하나인, 55층의 '한국무역센터' 빌딩을 올려다보자,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올랐어요. 이안 작가는 94년 2월에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한국무역협회에 입사했었거든요.
네이버 두산 백과에서 검색을 해보면, [한국 무역협회]에 대해서, ‘우리나랑 경제 4 단체 중의 하나로, 민간 경제단체이다’라고, 정의되어 있지만, 사실 무역협회는 준 공기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무역협회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입 대금 중에서, 고정적으로 일정 %를, '법정 준조세'로 징수하고 있거든요. '한국 무역의 활성화와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징수를 하고, 그 돈을 무역협회의 예산으로 쓰는 거지요.
이런 사실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1970년대와 비교해서, 지금은 엄청나게 성장한 만큼, 한국 무역협회는 불로소득으로, 엄청난 돈방석에 올라앉아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지요.
덕분에 서울 강남구의 금싸라기 땅인 삼성동 사거리만 해도, 무역협회 빌딩, 호텔 인터콘티넨탈, 코엑스 전시장, 공항 터미널, 코엑스 쇼핑 몰 등에 관한 소유권과, 엄청난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요. 홍콩과 미국 등에서도, 무역 협회 빌딩 등 엄청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지요.
이안 작가처럼 세상사에 무지몽매한 사람도 잠깐만 들춰보면, 우리나라에는 이처럼 국민의 돈이 이런저런 명목의 [법정 준조세]로 흘러들어 가고, 그 용처가 명확히 알려지지 않은 채, 편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기관과 계층이 제법 있더라고요. (참 좋겠어요. 힘들게 일하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자산을 확보할 수 있다니!!)
<11월 심야의 어둠 속에서도 우뚝 솟아 있는 한국 무역센터와 코엑스 몰 주변의 화려한 전광판 >
이안 작가가 20대에 갖고 있던 방송국 PD에 대한 로망 때문에, 무역협회에 6개월 만에 사직서를 내지 않았더라면, '잘 나가는 방송국 PD로 25년을 일했다는, 허울 좋은 타이틀'은 갖지 못했겠지만, 아마도 지금쯤 이혼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게다가 지금처럼 이곳저곳 타지를 떠돌며, 방랑객으로 살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기도 해요.
멍청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일수록, '과거 속 자신의 과오'를 통해서 교훈을 얻으려 하기보다, 엉뚱한 공상으로 과오를 DELETE 버튼을 누르듯 지우고 싶어 하잖아요. 이안 작가도 그런 멍청이들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거죠. 현실의 고통을, 망각 속으로 떠밀어 버리고 싶은 욕망은 모든 바보들의 공통점 이니까요.
9개월 만에 부모님 집인 대치동에 와보니, 이혼한 아내에게 청혼을 했던 카페가 보였어요. 2002년 2월에,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이 무척이나 맛있었던 강남구 대치동의 한 카페에서, 아내에게 고백을 했었거든요. '평생 호강을 시켜주겠다'라고 말했었어요.
하지만 얼마의 시일이 흘렀고, 이런저런 우여곡절과 망설임 끝에, 고백을 받았던 아내는 이안 작가에게 이별을 통보했어요. 아내를 죽어도 잊을 수 없었던 이안 작가는,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이 죽이도록 맛있는 그 카페에서 아내를 다시 만나서, 애절하게 아내를 설득했어요.
'내가 평생토록 사랑하고, 지켜주고, 잘 해주 테니, 마음을 돌려달라'라고요.
결국 아내는 저의 고백을 받아들였고, 그해 5월에 직장동료, 선후배, 대학 동기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이안 작가는 지구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의 신랑이 되었어요.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서울처럼, 여전히 서울의 밤하늘엔 달이 뜨고, 화려한 네온사인은 빛나고, 가로수의 나뭇잎에는 가을이 와 있네요 >
사람의 사랑은 결코 영원하지 않은 건지, 결혼을 해서 20년의 세월을 함께 살았고, 귀염둥이 두 아들을 낳기까지 했지만,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카페의 고백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차갑게 녹아버렸어요. 불변하리라던 고백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되었고, '뜻밖의 이별'과 함께, 우리 부부의 20년 간의 사랑은, ‘뒷걸음질 치며 사라져’ 버렸어요.
이혼 후에, 제주도에서 꼬부랑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살다가 죽으리라는 결심은 8개월 만에 거짓 맹서가 되어버렸고, 순천에서 선암사의 스님처럼 평생을 살아보겠다는 다짐도, 허망하게도 요통에 굴복하고, 서울에서 저물어 가는 가을 속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겨울에 눈이 내릴 때 이안 작가는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요?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요?
허리 통증으로 거동을 못하시는 아버지는 제게,
‘이안아, 엄마랑 아빠랑 여기 서울에서 같이 살면 안 되니? “하고 물으시는데, 저는 판단이 서지 않아요.
이안 작가가 떠나온, 선암사를 물들이던 순천의 가을은 여전히 아름답겠죠?
<순천 선암사의 은행나무. 이 사진을 지난 주에 찍었는데, 이번 주 초에 은행나무의 노란 잎이 다 떨어졌더라고요.순천의 아름다운 가을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