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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Nov 16. 2020

노고단의 별은 빛났다.

-큰 아들과 지리산을 올랐던 추억-

 7년 전, 2013년도 5월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큰 아이와 함께 지리산 노고단을 올랐었던 때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나는 함께 북한산을 올라보자고 권유했었다. 이런저런 다양한 등산 장비에 관심을 보이던 큰 아이는, 선뜻 함께 가겠다고 동의해주었다.      


큰아이에게 등산화와 등산복을 사주자, 큰 아이는 등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었다. 큰 아이와 함께 지리산 노고단을 오르기 1년 전인 2012년도 봄부터, 


“1년 동안 매주 북한산을 오른다면,
내년 어린이 날엔 선물로 지리산에 데려가 주겠다”


라고 얘기 하자, 큰아이는 북한산의 비봉과 사모바위는 물론, 도봉산의 숨은 벽 코스와, 백운대를 매주 빠지지 않고, 나와 함께 올랐었다. 더운 여름에는 서울 북한산의 정릉 코스를 오르면서, 계곡에서 발을 담그고 즐거워하기도 했었다. 큰 아이에게 암벽등반에서 밧줄을 걸 때 사용하는, 카라비너를 몇 개 사주자, 배낭에 카라비너를 걸고 다니면서, 인수봉을 지나칠 때마다, “나도 암벽등반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말도 여러 번 했었다.  

  

<서울 북한산 국립공원에 자리한 백색의 인수봉은 높이 810미터로, 국내의 암벽등반가들에겐 성지 같은 곳이기도 하다>

 

큰 아이가 산에 이처럼 호기심을 보인 데는, 18권으로 완결된, 일본 만화 [산]의 영향이 컸다. 2008년에 일본에서 [일본 만화대상]의 1회 수상작이기도 했던, 이시즈카 신이치의 [산]에는, 일본에서 산악구조대원으로 활약하는 주인공 '산포'의 이야기를, 휴머니즘 물씬 묻어나는 감동적인 스토리로 엮은 명작이다.  

    

큰 아이는, 나와 함께 1년 동안 북한산을 다니면서 얻은 산에 대한 경험보다, 만화책 [산]을 통해서, 산에 관해서 더 많은 걸 생각하고 느꼈던 것 같다. 그만큼 [산]이라는 작품은, 뛰어난 산악 문학작품이었다.

    

큰 아이가 북한산을 1년 동안, 폭우가 내리는 날만 빼곤, 눈이 높게 쌓인 날에도 빠지도 묵묵히 올랐기에, 나는 2013년 5월에 아이와의 약속을 지켰다. 라디오 PD들은 거의, 1인당 1개의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에, 휴가를 내기가 쉽지 않다. 거의 생방송을 해야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특성상, 본인이 아닌 다른 PD에게 연출을 해달라고 부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아이가 1년 동안, ‘나도 내년이면 지리산 노고단에 오를 수 있다’며, 기다려 왔는데,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어렵게 휴가를 내고, 큰 아이와 함께 구례구역으로 가는 새마을호에 올랐었다. 큰 아이는, 구례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내내 설레어하고 있었다.      


<지리산의 노고단을 오르게 전에, 거쳐가게 되는 화엄사 >


마침내, 지리산 등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구례구역에 아침 일찍 내려서,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화엄사 바로 옆 산길로 나 있는, 노고단 등산로에 진입했다. 화엄사에서 노고단 정상까지는 대략 8킬로 미터 정도인데,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오르다 보니, 우리에겐 거의 9시간 정도가 걸렸다.      


'반달곰이 있으니, 등산로를 벗어나지 말라'라는, 플래카드를 대락 20개 정도 지나치고, 계곡과 바위, 너른 등산로, 그리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서 무척 힘들었을 텐데, 큰 아이는 대견하게도 내려가자는 얘기도, 힘들다는 얘기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제 노고단이 바로 저 앞이다! 한 시간 정도만 더 가면 도착하겠네" 


라고 말하자, 아이는 더 힘을 냈고, 우리는 드디어 노고단의 정상,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노고단 산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는 넘어가고 있었고, 미리 예약해둔 숙소에 짐을 풀고, 산장 식당에서 라면 2개를 끊여서 먹을 때는, 이미 어둠이 내린 캄캄한 밤이었다.     

 

하지만 큰 아이는 그런 것도 모두 재미라고 생각했는지, 씩씩하게 라면을 먹고, '우리도 소시지나 밥을 좀 챙겨 올걸 그랬네...' 하는 눈치였다. 그때 마침 캠핑 스타일로 코펠 뚜껑에, 소시지를 굽던 옆 자리의 아저씨 한 분이, 큰 아이에게 커다란 프랑크 소시지를 건네줬고,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고 맛있었던 소시지를 끝으로, 저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5월이라지만 노고단 정상 성삼재의 밤은, 초겨울 날씨처럼 쌀쌀했다. 그래도 지리산의 별을 보겠다며, 아들과 나는 오들오들 떨면서, 성삼재 쉼터 앞마당에서 지리산의 하늘을 수놓고 있는 별들을 바라봤었고, 아들과 내가 1년 동안 매주 북한산을 힘들게 오르며 고생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아낼 수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등산이었고, 나는 아들과 함께 다니는 산행이 평생 이어질 수 있을 거라는 점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었다. 2014년도 겨울엔 북한산 우이령길도 오르면서, 서로를 보고 웃고 행복해하기도 했었다.


<볼 때마다 신비로운 지리산의 운해 >


인간관계에서 유별나게 어리숙하고 서툴렀던 나는,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 반드시 친구 같은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고 여러 번 결심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던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간이기도 했다.      


비록 큰 아이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의료사고로, 1주일 동안 인큐베이터 신세를 지면서, 역시 내 생애에서 가장 간절한 기도를 드린 시간이기도 했지만, 큰 아이를 키우는 시간들은 행복했었다. 특히 신생아 시절에, 아이가 잠을 자고 있으면, 혹시라도 숨을 안 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조용히 가슴에 귀를 대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던 순간들은, 마치 꿈속을 걷는 것만 같은 황홀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사랑하던 큰 아이와, 둘째 아이와 헤어지게 된 건, 나의 과도한 집착과 욕심 때문이었다. 아이들과 잘 지내고 싶다는 내 어리석은 욕심이 너무 과도해서, 그만 아이들을 내 뜻과 의지대로만 키워야, 잘 키우는 걸로 오판했었고, 그런 시간들은 아이들에겐 참기 어려운 구속의 시간이 되었던 거다.


나와 아이들이 비교적 잘 지내고 있다고 믿었던 시간들은, 모래에 쌓은 성처럼 아무런 버팀목도 없이, 어느 날 너무도 금세 무너져 내렸고, 나는 아이들과 헤어진 채, 아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신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오늘 순천에서 구례로 차를 몰아서 화엄사에 갔었다. 화엄사 옆으로 나 있는, 노고단을 오르는 길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큰 아이와 행복해하며, 그리고 설레어하며 보낸 시간들은, 다시 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더욱 아파왔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의 가을 >


화엄사에서 다시 순천의 민박 집으로 돌아와서, 한참을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생각으로 괴로워했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봤지만,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고단에서 큰 아이와 함께 바라봤던 그 밤하늘의 별처럼, 순천시 승주읍의 별들도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오늘 승주읍의 밤기온은, 2013년도 큰아이와 함께 올랐던 노고단의 밤처럼 차갑고, 바람은 불지 않으면서, 고요했다. 더없이 즐거워하던 그 시절의 순간과,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 속에 서 있는 듯했지만, 내게 다시는 그렇게 행복한 시간은 오지 않을 것이다.      


큰 아이와 함께 올랐던 노고단을 그리워하는 오늘 밤이 지나면, 내일은 또 어디로 떠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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