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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Apr 30. 2022

가장 슬픈 설날

손자 여섯 명을 제치고

장손녀를 가장 사랑했던

시대를 잘못 타고난 외조부


창 너머 콧줄을 드리운 노년의 남성이

나의 외조부라는 것을

깨닫는 동안


핼쑥한 노인은

마스크 안이 눈물로 흠뻑 젖은

창 밖 여성을

끔벅

끔벅

쳐다봤다


거나한 목소리로 최! 고! 은을 외치며

손수 지은 장손녀의 이름을

퍽 자랑스러워했던


근면한 유전암호를 물려준 당신은

늘 구멍난 일바지를 고집하시면서


여름에는 밭에서 가꾼 수박을 반통 갈랐고

가을에는 잘 익은 홍시 씨를 발라주었는데


세 번째 요양원을 찾아갔을 때

엄마는 구태여 외조부에게

당신의 장녀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 딸도 이제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침묵이 그 어떤 날선 굉음보다 따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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