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안성시 청소년 종합예술제 산문 최우수 作
‘오리온은 아르테미스와 사랑에 빠졌다. 그 사실을 안 아르테미스의 오빠 아폴론은 오리온이 바다를 건널 무렵 아르테미스에게 네가 아무리 활의 명수라 해도 저 파도 사이를 떠도는 금색 물체를 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녀를 부추겼고 그녀는 화가 나 금색 물체가 오리온의 머리라는 것을 모른 채 단번에 그것을 꿰뚫었다. 나중에 물가에 올라온 오리온의 시체와 그의 머리를 관통한 자신의 화살을 본 아르테미스는 오리온을 별자리로 만들었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위치한 장호 해수욕장은 8월의 성수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서벅거리는 나의 발자국이 자못 민망할 정도였다. 근처에 그렇다 할 만한 민박집도 없었기에 난 꽤 먼 거리에 하루 묵을 곳을 잡고 해변까지 걸어와야만 했다. 하이힐 때문에 더욱 저릿한 종아리를 대충 주무르고 그대로 모래 위에 털썩 앉았다. 인적이 드물어서 그런지 소주병 조각이 박혀있는지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도 좋았다. 걸어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사온 캔 맥주를 땄다. 아직 암순응이 덜 되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캔을 잡은 손 위로 차가운 거품의 감촉이 느껴졌다. 전방 5m 앞에서 철썩거리는 저 파도의 운율에 맞춰 기분 좋은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 순간, 그러니까 목에 파도가 밀려오는 순간, 그리고 동시에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순간, 목이 축축해짐에 따라 내 눈가도 습해지는 것이었다. 하늘에 박힌 별이 지독히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오늘 남쪽 밤하늘에는 오리온자리가 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 바다는 눈부시고 바다를 비추는 넌 그저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별이 되어서도 수 억개의 별들 사이에서 제일 빛나는구나. 저 수평선 너머에 있는 항해사들은 오늘도 널 보며 해로를 바로잡고 나는 너의 허리께를 검지로 짚어가며 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몇 백 광년 너머 느껴지는 역설적인 온기가 너무 좋아서 극도로 불안하다. 그 온기를 좇아 너에게 다시 갈까 봐. 내 가슴팍에 꽂힌 화살을 보며 다시금 마음을 붙잡지만 화살촉의 상흔이 걷잡을 수 없이 가슴을 후빈다, 뜨거운 위액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귀가 먹먹히 울린다.
바다를 좋아했던 너, 그리고 바다를 닮았던 너. 바다의 향이 났고 나에겐 저 바다보다 벅차고 황홀했던 너. 난 그런 너를 사랑했다. 4년 전 오늘 이 곳에서, 초록색 배색이 들어간 갈색 스웨터를 입었던 너는 바다를 담은 내 눈이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난 고개를 돌려 너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지.
“나도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이 좋아.”
다시 한 번 파도가 세게 쳤다. 간조와 만조는 달의 인력이 지구에 미쳐 바닷물을 끌어당기는 것이라고 했다. 혹시 네가 달이 되었다면 저 파도에 네 온기가 묻어있을까 싶고, 이 생각에 이르자 드디어 내가 미쳤는가도 싶다.
네가 별이 되려는 순간, 난 나의 별에게 이별을 말했다. 너의 바이탈 사인은 점점 물결이 잔잔해져갔지만, 너의 눈에 요동치는 파도가 너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놓아주기로 했다. 화살은 이미 내 좌심실에 움푹 꽂혀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제야 너의 파랑은 운동을 멈췄고 요란한 파열음만 남겼다. 내 눈 앞에서 초신성이 폭발했다.
자잘한 암석 입자들 위로 맥없이 엎어진다. 오뉴월 장마에 토담 무너지듯. 백사장에 널브러진 폭죽 막대기로 그 미세한 입자들을 처참히 뭉개며 기록을 남긴다. 네가 볼 수 있게 최대한 크게. 보고 싶다고. 손등으로 급하게 눈물을 훔쳐낸다. 그리고 문득 차다고 느낀다. 비가 내리는 것이었다. 빗줄기로 하늘에 오선지가 그려졌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는 각막 위 뿌연 액체가 별과 별 사이 간극을 빼곡하게 메웠다. 초점이 무의미해진 눈, 그 물낯에 너의 상이 맺혔다.
그래서 난 오늘도 너를 싫어하는 중이고 마침 파도가 나의 기록을 쓸어간다. 네 눈동자 속에서 파도가 쳤을 때 나의 마음에 눌러 쓴 고백들이 쓸려나갔듯이.
내년 겨울에도 이곳을 찾아올게. 그 때도 부디 변함없이 빛나 줘, 눈이 어릿할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