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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손가락으로 인한 감사

 이 년 전 글라스락이 깨지면서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이 베이게 되었습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다 벌어진 상황이라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보고도 엄마와 아줌마라는 이름으로 우선 무식하고 용감하게 가제 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둘둘 말아 감싸 쥐고 지혈을 했지요. 지혈을 한다고 잡고 있어도 피가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깨진 그릇과 굵은 파편에 아이들이 다칠세라 피가 계속 나고 있는 오른쪽 손가락을 움켜주고 왼손으로 뒷수습을 했지요. 급한 대로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퇴근하는 남편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급히 응급실에 갔었어요.


 다친 엄마의 손을 보고 병원에 가 파상풍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말했던 큰 아이의 말처럼 병원에 가니 바로 파상풍 주사를 놓아주었었죠. 그리고 지혈이 멈추지 않는 손가락은 지혈 용액 속에 한참을 담가 놓아야 했습니다. 지혈이 멈춘 뒤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다음날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감염 위험이 있으니 물은 절대 닿지 않도록 하세요. 그리고 살이 많이 파여 이식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삼일 간격으로 와서 소독하고 경과를 지켜보도록 하지요."라는 말을 듣고 겁을 먹었던 기억이 나요.


 다친 위치가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이라 연필의 받침대가 되어주고 젓가락을 사용할 때도 지지대가 되어주는 지점으로 그날부터 제 손은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세수는 왼손으로 고양이 세수를 해야 했고 되도록 물이 닿지 않아야 하니 사소한 것을 하기 위해서도 다친 손가락이 물이 닿을지 몰라 밀착 장갑 후 비닐장갑 후 고무장갑을 껴야 했지요.


 엄마의 다친 손가락으로 식사시간 딸들이 더 바빠졌지요. 평소에도 숟가락도 놓고 밥도 나르며 식사 시간을 돕는 딸들인데  물도 닿으면 안 되는 아픈 손가락을 가진 엄마를 돕느라 딸들의 손이 물을 자주 묻혀야 했습니다. 그때 딸들은 젓가락질을 하다 놓치는 엄마를 보며 숟가락에 돌아가며 반찬을 올려주었어요.

 거기다 식사를 하면서 초등 6학년인 큰딸이 진두지휘를 하더라고요.

"엄마 이제 물 대면 안 돼. 엄마 나을 때까지 설거지 우리가 돌아가며 하자."


"언니 내가 자꾸 묻혀서 미안해. 헤헤."


 엄마가 아무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자기들끼리 순번을 정하고 설거지를 하는 딸들이었지요. 막 유치원생 딱지를 떼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키가 작은 막내는 발 받침대의 도움으로 키를 높여 설거지를 했답니다. 발받침 덕분에 언니보다 키가 커진 동생이 세제로 애벌 설거지를 해 헹굼을 맡은 언니에게 그릇을 내미는데 계속 언니의 머리 위로 거품을 떨어뜨립니다.


 "언니 내가 자꾸 묻혀서 미안해 헤헤"라고 말하며 열심히 설거지를 하는 막내였지요. 그 뒷모습을 지켜보며 '언제 이렇게 자랐나'라는 생각이 들며 참 기특하고 고마웠던 시간입니다. 허벅지 살을 떼어 이식 수술을 할 수도 있다는 말과 물이 닿으면 감염위험이 있다는 말에 열흘은 정말 주의를 기울였던 기억이 나요. 딸들도 그런 엄마를 살뜰히 도와주어 초등학교 1학년, 4학년, 6학년인 초등 삼총사 세 딸에게 참 고마웠던 시간입니다.



초등 4학년이었던 둘째


 그리고 손가락이 다친 뒤 성한 두 발이, 멀쩡한 두 팔이, 말할 수 있는 입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아픈 손가락 외에 멀쩡한 모든 기관이 다 고마웠어요.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감사로 다가왔었어요. 다치기 전엔 다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되려 아픈 손가락이 욱신욱신 통증을 호소하고 물이 닿으면 안 되는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되고 보니 당연하게 생각되던 모든 것들이 다 감사로 다가오더라고요. 아프지 않았으면 일상에 얼마나 많은 감사가 숨어 있는지 다 깨닫지 못했을 감사가 마음 깊이에서 고백되었던 시간이었지요.


 감사하게도 손가락은 새살이 조금씩 차 올라 이식 수술은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열흘 그렇게 물 한 방울 닿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의사로부터 "이제 괜찮습니다. 편하게 생활하셔도 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은 뒤 손가락에 상처가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팔을 걷어 부치고 집안일을 하느라 엄마 손은 바빠졌지요. 막상 손가락을 사용하려니 이제 막 여린 살이 차올랐다고 다쳤던 부위가 무엇이 닿을 때마다 아파와서 덤벙덤벙 일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병원에서도 물이 닿아도 괜찮다고 하니 새살이 아프지 않도록 둔탁하게 대일밴드를 몇 겹으로 붙이고 집안일을 하였지요. 그런데 물이 가득 찼던 대일밴드로 안에 있던 상처가 덧이나 그만 흉터가 남게 되었어요. 방심은 금물이었었네요. 알았다면 참았던 터에 더 조심했을 텐데 그럴 줄은 몰라 신나게 일을 하니 흉터의 훈장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손에 흉터를 보면 그때 그 시간이 떠오르곤 해요. 흉터 덕분에 그 시간의 감사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지요. 남편과 아이들을 향한 감사와 내 몸의 건강한 모든 부분에 대한 감사,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 하루가 감사라는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너무나 평범한 오늘 하루가 수많은 감사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돼요. 지극히 평범한 나의 일상의 모든 순간이 기적의 순간임을 다시 새기게 됩니다. 그리고 너무나 익숙한 모습으로 늘 보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하루도 큰 선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럴 때면 오늘 내가 누리는 모든 순간에 감사라는 이름표를 붙여 마음 가득 메달아놓고 싶어 집니다. 지금 이 순간 잠시 머물러 마음 나무에 감사 열매 맺고 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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