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역경은 잠시 뿐이라 생각했다.
만 29세였던 나는 일도 사랑도 쉽지 않았다.
27세의 나이에 자리를 잡고 결혼까지 한 여동생과 달리 여전히 서른의 나는 방황과 불안 그 자체였다.
명목은 그동안의 일을 관두고 새롭게 영어 Tesol 자격증을 받아오겠다 하고, 어쩌면 현실의 도피처럼 직장을 관두고 호주로 떠났다.
비록 승승장구하며 순항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풍파 없는 평온한 삶을 살았었다.
호주로 떠나기 전 엄마의 말이 이랬으니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서 세상물정을 모르니 가서 고생도 좀 해보고 철들어서 와라. “
호주에 가서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3명의 미행하던 남자에게 날치기를 당해 모든 소지품을 다 잃고,
셰어 하는 집에서도 여러 번 inspection(정부 단속)에 걸려 하루아침에 쫓겨나고..
한국에서는 만나기도 쉽지 않은 거친 술집 한국여자에게 맞을뻔하고,
새벽마다 아르바이트를 갔던 대형몰 내의 카페에서 한국의 어린 여자애가 무시하며 텃새를 부리는 일이반복되었다.
그래서 귀국하는 날까지 매일 울며 버티다가 결국 테솔은커녕 1년도 제대로 못 채우고 귀국을 하였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만약 호주에 가지 않았다면…
이런 엄청난 역경과 고난을 겪지 않았을 텐데.‘
벌써 15년전의 일이다.
그리고 재작년부터 유독 힘들었던 내 삶은 결국 마음도 몸도 상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하는 일마다 훼방꾼이 나타났고, 아무리 긍정적으로생각하려 해도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만 늘어갔다.
급작스럽게 악화된 건강으로 예정 없이 모든 걸 중단하였다.
나의 커리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불편한 인간관계도 억지로 유지하기 힘들었다.
멈추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모든 걸 멈춘 지 반년이 지났다.
누군가 어딘가에서 내 험담을 할지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그냥 살고 싶었다. 건강하게.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놓아버린 기분이다.
좋아하던 책도, 그림도 모두 놓은 채 시간을 보내다가 최근 들어 다시 독서도 하고 미술관도 간다.
여러 군데를 다녀도 소용없던 온몸의 원인불명 통증은 몇 개월 전부터 시작한 요가와 필라테스 덕분에 많이 사라졌다.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옛날에 호주를 가지 않았더라도 내 삶은 역시나 굴곡지지 않았을까.
사십 대 중반에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니,
평탄하길 바랐을 뿐 내 삶은 고난과 역경이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팔자 좋게 태어난 평온한 사주는 아닌 듯하다.
차라리 이렇게 받아들이고 나니 오히려 후련하다.
앞으로도 내 삶은 그렇겠지.
그렇게 계속 구르고 구르다 보면 언젠가는 내 인생도 아름답게 다듬어지겠지..
지금 내가 다시 건강해지고,
내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고,
그것만으로 너무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