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고등학교 1학년 때쯤이었을까.
방학을 맞아 책장에 꽂힌 묵직하고 두꺼운 삼국지 시리즈를 하나 꺼내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었다.
'아빠는 왜 이런 두꺼운 책을 사놓았을까.'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너무나 술술 넘어가는 흥미로운 스토리에 완전히 몰입할 무렵이었다.
“ 무슨 고등학생이 소설책을 읽고 있니? 방에 가서 공부나 해.”
평소 엄마는 공부를 강요하진 않으셨지만 몇 시간째 소설책에 빠진 나를 보자 날카로운 목소리로 책을 뺏어 들었다.
내 기억으로 책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 일들을 몇 번 겪은 후 나는 자연스레 책과 멀어졌다.
물론 우리나라 교육제도상 한창 공부할 나이에 소설책을 읽는 것이 어른들의 눈에는 한심하게 보였을 것이다.
벌써 거의 30여 년이 되어가는 이야기다.
성인이 된 후에도 가끔 자기 계발서만 읽는 정도였던 나는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영상 이후 책을 즐겨 읽게 되었고 지금까지 20년 넘게 독서광이 되었다.
한창 유행하던 오프라윈프리 쇼였는데 그녀가 방청객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부자가 되고 싶다면 책을 많이 읽어라’는 말을 하였다.
물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특히 그 부분이 나의 귀에 정확히 꽂혔다.
그전까지 많은 이들이 오만 감언이설로 독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여도 나에게는 고리타분한 충고 같았는데 한창 취업준비로 힘들었던 그 시절,
막연히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그 말이 더욱 와닿았다.
덕분에 나는 독서라는 좋은 습관을 갖게 되었지만 여전히 부자는 아니다.
정독과 다독만이 전부가 아니라 좋은 내용을 체화하고 내 삶에 적용하여 실천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오랫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다.
부자=독서가는 아니지만 독서가 인생의 자양분을 쌓는 필수 요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나의 기대와 달리,
세상에 나온 수많은 육아지침서와 달리,
우리 딸은 책을 안 좋아하는 편이었다.
많은 이들이 추천하는 책육아를 나도 해보겠다고 아기 때부터 눕힌 채 목이 쉬어라 책을 읽어줬지만 아기가 움직일 수 있을 때부터 책을 낚아채 씹어먹고 뺏어 던지더니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책은 읽지 말고 대신 인형놀이를 하자고 하였다.
물론 다른 부모들처럼 구연동화같이 더욱 흥미를 유발하며 읽어주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그래. 넌 읽지 마라’는 마음으로 나 혼자 책 읽고 있는 날에는 내 책까지 뺏어서 못 읽게 한다.
자기 전에도 독서습관을 만들어주려 했으나 재미없고 지겹다며 그림을 그리거나 인형놀이를 원했다.
억지로 독서습관을 가지게 하다가 오히려 책에 거부반응만 생길 것 같아 우리는 그냥 마음을 내려놓았다.
하루는 책을 보고 있는데 딸이 물었다.
“엄마, 엄마는 책이 너무 재미있어요? 나는 재미없던데. 왜 계속 읽어요?.”
나는 딸의 물음에 오래전 내가 처음 책에 흥미를 가졌던 사건(?)이 갑자기 생각나서 딸에게 말했다.
“응. 책을 많이 읽으면 부자가 될 수 있거든.
엄마는 책을 많이 읽고 부자가 돼서 먹고 싶은 것도 다 사 먹고 갖고 싶은 것도 다 살 거야.”
“우와! 정말요? 그럼 나도 책 많이 읽을래요.”
이유야 어찌 됐건 그런 이유로 책에 관심을 갖게 된 딸은 처음에는 며칠에 한 권씩 책을 읽다가 언젠가부터 하루에 한 권을 읽고 요즘에는 여러 권을 쌓아두고 읽을 때도 있다.
(물론 직접은 아니고 아직 읽어줘야 하지만)
특히 최근에 슈바이처, 링컨, 오드리 헵번 책을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았는지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하였다.
"엄마, 나도 이 사람들처럼 불쌍한 애들을 도와주고 싶은데 나는 너무 아기라서 못 도와줄 것 같아요."
“네가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쑥쑥 자란 후에 도와주면 되지.”
"근데 여기 가면 얼굴이 나도 새까매지는 거 아니에요? 선크림을 듬뿍 계속 발라도 소용없을 텐데."
너무 생뚱맞은 딸의 대답에 한참을 웃다가 나는 말했다.
“네가 꼭 직접 가서 도와주거나 치료를 해주지 않아도 다른 방법이 있지. 빌게이츠처럼 돈을 많이 벌면 그 돈으로 아이들에게 음식과 옷을 가득 선물해 줄 수 있어."
“정말요? 우와! 나 그럼 진짜 책 많이 읽고 부자가 될래요. 그래서 불쌍한 아기들 많이 도와줄래요. "
“그래 그래.”
어린 딸의 등을 토닥이며 웃던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나보다 부자 되려는 이유가 훨씬 낫네. 너는 그런 선한 마음을 가졌으니 진짜 부자가 될 수도 있겠다.'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하루였다.
딸 덕분에 나도 진정한 부자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나만 잘살고 편히 지내는 것이 아닌,
더 많은 사람들과 누리며 더 풍요로움을 나눌 수 있는 게 진정한 부자의 마인드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