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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t Jang Feb 05. 2024

내 인생 최고의 선생님

소극적인 나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심어주셨던 분

요즘은 예전에 비하여 교권이 많이 무너진 것 같아서 안타깝다.

물론 과거에는 지금보다 고압적이고 비합리적인 선생님들도 꽤 계셨다.


아직도 생생한 8살 때의 기억은 담임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엄마가 근처의 다방(커피숍)으로 선생님을 불러 촌지를 건네던 모습이다.

한창 자라고 성인이 되어 그때 왜 촌지를 줬었냐고 엄마에게 물으니 그 시절에는 선생님이 대놓고 달라고 하셔서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혹시나 차별받을까 봐 달리 방법이 없다고 하셨다.


요즘은 선생님들이 청렴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교육하며 그들을 존중하는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다.

물론 친동생부부가 현직 교사이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역시 교사라서 그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을 보면 존경심이 들 정도이다.

그럼에도 예전에 비해 선생님을 대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시선과 태도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과거에는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 하였고 감히 선생님의 말에 대꾸를 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간혹 비상식적으로 폭력적인 이들도 있었지만 너무나 다행히도 내가 만난 대부분의 선생님은(얼굴조차 기억 안 나는 초1 담임 선생님만 빼고) 너무나 좋으신 분들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 인생 최고의 선생님은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다. 

벌써 35년 전이니 현직에서는 진작에 은퇴를 하셨을 것이다.


초등 아니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매우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은 소녀였다. 

첫째 딸이었지만 부모님의 기대에 늘 못 미쳤기에 매사 자신감도 없었다.

당시 방학이면 매번 나오던 독후감 숙제도 글 쓰는 것이 미숙하던 나는 아빠에게 꾸지람을 들으며 겨우 숙제를 해냈었다.

한 달간의 그림일기도 건성건성 억지로 몇 줄을 쓰는 둥 마는 둥 하여 제출하였다.


11살에 내가 만난 우리 담임 선생님은 (여전히 얼굴은 물론이고 존함까지 똑똑히 기억난다) 새 학기 시작부터 다양한 활동을 우리들에게 시키셨는데 그중 하나가 매주 글쓰기였고, 그중 잘 쓴 글을 골라 매번 게시판 뒤에 붙여 놓으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글은 항상 붙어 있었다.

단 한 번도 글을 잘 쓴다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고 부모님께도 글 쓰는 것으로는 칭찬받은 적이 없었는데 담임 선생님은 공개적으로 친구들 앞에서 내 글을 정말 많이 칭찬해 주셨다.

무슨 내용을 썼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의 따뜻했던 말씀들과 친구들의 칭찬은 여전히 기억난다.


진짜 글을 4학년치고는 잘 썼는지,

아니면 나의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태도를 보고 응원을 해주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추천 덕분에  그해 열리는 '전국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 참가도 하였다.


선생님은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나의 사소한 것까지 아낌없이 칭찬해 주셨다. 

선생님말에 순응했던 모범생이긴 하였지만 부족한 것 투성인 나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도록 해주셨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 모두에게.

선생님은 제자였던 수백 명의 아이들 모두에게 그런 희망을 주셨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지금껏 살면서 글 쓰기에 관련된 일은 학생 때든, 직장에서든, 다른 사회조직에서든 언제나 큰 거부감 없이 즐겁게 했었다.

그 기저에는 선생님 덕분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 때문일 듯하다.


인생에서 이렇게 훌륭하고 좋은 분은 스승으로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인 것 같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전하는 영향력은 엄청난 것 같다. 

우리 딸도 앞으로 자라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칭찬해 주는 그런 평생 기억에 남을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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