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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의 시간

일상에서 작은 동안거를 갖는 법

by 진동철

1. 가방을 매고 집을 나서는 순간, 와이프가 농담처럼 한마디 던졌다.

"속세와 연을 끊고, 탈고하고 돌아오시게."

그 말이 이번 정거의 시간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정의 같았다.


2. 나는 지금 1박 2일 정거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출발하는 중이다. 고요할 정 靜, 머물 거 居. 정거의 시간은 일상과의 접속을 끊고 혼자 고요히 머무르는 시간이다. 혼자 글쓰기, 성찰, 몰입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다.


3. 불교의 ‘동안거’가 겨울 내내 사찰에 머물며 수행에 몰두하는 기간이라면, 나에게 정거의 시간은 일상 속 짧은 동안거다. 휴대폰을 끄고, SNS를 멈추고, 글과 성찰에만 몰입하는 시간. 일상의 번잡함에서 물러나 고요히 머무는 시간이다.


4. 누군가는 이런 시간을 하프타임(Half-time)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혼자 떠나는 워케이션'이라고 부른다. 뭐라 부르든 우리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종종 필요하다. 나는 잘 가고 있는가? 앞으로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무엇을 더 시도해볼 수 있을까? 정거의 시간은 결국 질문의 시간이다.


5. 이번 정거의 시간은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지지향에서 보내기로 했다. 출판단지 안에 있는 숙소답게 객실에는 TV가 없다. 대신 조용히 앉아서 작업할 수 있는 책상과 초록나무들을 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만 있다. 조용한 공간 속에서 마음은 고요해지고 글은 나의 손가락을 이끈다.


6. 정거의 시간을 좀더 알차게 보내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연락 금지, SNS 금지, 휴대폰은 꺼놓기

2) 50분 집중하고 10분 휴식하는 리듬 유지하기

3) 책 탈고와 같이 최소 성과 설정하기


7. 굳이 1박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집 근처에서 딱 휴대폰 꺼놓고 SNS 안 하고 작업하면 같은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확실히 공간을 옮기니 집중이 잘 된다. 딴 거 생각하지 않게 된다. 공간이 주는 힘이 있고 공간을 바꿈으로써 전환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8. 덕분에 그동안 마무리 못했던 리더십 책을 탈고할 수 있었다. 계속 '끝내야지, 끝내야지' 하면서도 다양한 일들로 인해 밀렸던 작업이었다. 이번 1박 2일간 집중적인 작업을 통해 끝낼 수 있었다. 조금씩 글이 쌓여가고 책이 완성되어 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9. 집으로 돌아와 와이프와 와인잔을 부딪치며 작은 축하를 했다. 와이프는 "이런 축하는 책이 정말 나온 다음에 해야 하는 거 아냐?"라면서 잔을 부딪친다.


10. 정거의 시간은 결국 삶을 리셋하고 다시 몰입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이렇게 작은 정거가 쌓이면, 일상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삶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나에게 정거는 일종의 호흡법이다. 일상 속 짧은 숨 고르기, 그리고 앞으로를 위한 긴 호흡. 그것이 앞으로 매월, 분기별 정거의 시간을 가지려는 이유이다.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 스스로를 다시 세우는 시간을 갖고 계신가요?

지금 여러분에게 필요한 정거의 시간은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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