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팀장님, 팀 운영에 대해 잠깐 얘기 좀 해도 될까요?"
그러더니 다짜고짜 이것저것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의견이라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불만으로 들렸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 마음 속은 뒤죽박죽이 된다. "내가 그동안 팀을 잘못 운영해 왔나? 내가 뭘 잘 못했지?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아, 허탈해.." 팀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마음 속에서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팀원이 돌아가고 멍하니 있다가 노트북을 펼쳤다. 내 생각의 단편들을 쭉쭉 적기 시작한다. 적다보니 보통 때라면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게 되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지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내 나름의 팀 운영방안도 방향이 잡혔다. 기록하니 내 마음도 정리하고 할 일도 정리가 되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기록이야말로 리더십의 혼란을 다스리는 힘이라는 것을.
리더십은 화려한 비전이나 웅변적인 연설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진짜 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길러진다. 바로 기록하는 힘이다. 기록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리더십을 단단하게 세우는 토대다.
나의 기록 역사는 고등학교 시절 시작되었다.
학교 안 기숙사 생활을 하며 도서관 창가에 앉아 저 멀리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던 소년은 까만 대학노트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저 기차는 우리 고향을 지나가겠지.” 그렇게 시작한 글이 39년이 흘러 41권의 일기로 남았다. 물론 매일 빠짐없이 쓴 것은 아니다. 하루에 두 번 쓴 적도 있었고, 반년 동안 손을 놓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든 다시 펜을 드는 힘이다. 간혹 멈춤이 있어도 기록은 계속 이어진다. “슥” 펜을 드는 순간, 일상은 다시 궤도에 오른다. 이것이 기록의 마법이다.
리더는 초단위로 의사결정 해야하며, 명함 100장이 동나는 건 한달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희미해진다. 그때의 판단 근거, 맥락,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쉽다. 기록은 이 순간들을 붙잡아두는 장치다.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구성원에게 신뢰를 주는 자료가 되며, 다시 돌아보며 배울 수 있는 교재가 된다. 리더의 신뢰는 말이 아니라 축적된 기록에서 나온다.
리더에게 기록은 사람을 남기는 일이다.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어떤 강점을 보였는지, 어떤 순간에 성장했는지를 기록하면 그것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존중의 표현이 될 수 있다. “당신을 귀 기울여 보았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록은 공정한 피드백의 근거가 된다.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누적된 사실 위에서 대화할 수 있기에 구성원도 안심하고 리더의 말을 들을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책을 읽으면 반드시 후기를 기록한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일기에 쓰다가 1999년부터는 컴퓨터에 저장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982권의 감상문이 쌓였다. 이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내가 걸어온 지적 여정의 지도라고 볼 수 있다.
리더에게 기록은 바로 그런 의미다. 한 장 한 장 쌓이는 기록은 리더 자신의 성장 일기이자, 조직을 이끄는 도구이다. 기록은 과거를 정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러니 오늘부터 이거 3가지만 기록하면 당신의 리더십이 쌓일수 있다.
1. 만난 사람에 대한 짧은 메모
2. 오늘의 감정 한 줄
3. 오늘 배운 점 하나
결국 리더십은 말이 아니라 기록에서 자란다.
당신은 자리에 연연하는, 그저 그런 리더가 될 것인가? 아니면 기록으로 쓰이는 리더가 될 것인가?
당신의 기록이 그 답을 정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