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그래 Apr 25. 2022

냄새에 관하여

사계_또 다시, 봄 [제 향에 귀기울여봅니다. 문향배와 철관음]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특정한 향기에 생각나는 장면 혹은 장소가 있으신가요? 저는 향에 예민하다고 하기는 좀 그렇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인데요.


얼마 전에 어떤 브런치 작가님이 쓴 향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일종의 추천을 받아 읽게 된 글이기도 했는데요. ‘향수혐오’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본인 연애의 실패를 향수 탓으로 돌려 향수를 싫어하게 된 작가의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낸 글이었어요. 전체적인 느낌이 재밌다는 말이지 사실 내용은 슬펐던 글이었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지만, 향수에 관한 저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 이야기를 풀어보게 됐습니다.


저에게 있어 향은 기억여행의 수단이자 일종의 가면역할을 해주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저는 향수를 좋아하는 편인데요. 향수를 좋아하다보니 외출을 할 때면 머리를 열심히 매만지고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집밖으로 나서기 전 그 모든 것을 마무리해주는 하나의 의식처럼 향수를 뿌리곤 합니다. 그래서 보통은 외출의 마무리를 조금 더 완성도 있게 장식해주는 존재로 여기고 있습니다.


향수를 뿌리고 외출하게 되면 내가 뿌린 향이 나를 덮었을 뿐인데 마치 꼭 내가 그 좋은 향을 스스로 뿜어내는 사람인 양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무렴 어떤가요. 지금 나에게 좋은 향이 난다는 사실과 그 향으로 인해 일단 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게 당장으로서는 더 중요합니다. 이러한 이유는 향수를 뿌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티소믈리에를 준비하는 요즘은 차향을 집중해서 맡아야 하기에 뿌리지 않게 되는데 그렇다 보니 외출 시에 향수를 뿌리지 못하는 행동부터 날 것의 상태로 밖을 나가는 기분이 굉장히 어색하고 뭔가 하나를 꼭 빠뜨리고 외출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런데 향수를 제가 언제부터, 그리고 왜 좋아하게 됐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어요. 사실 좋아하는 이유야 단순하게 좋으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순 있겠지만 조금 더 복잡한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가면’ 이야기를 먼저 꺼내 볼게요. 위에서 내 본연의 향이 아님에도 꼭 내 것인마냥 좋다고 말하며 아무렴 어떠냐는 표현을 썼는데요. 여기에 가면의 의미가 조금 숨어있기도 합니다. 영화의 한 장면으로 비유를 들어 말씀드리자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 "냄새가 선을 넘어."


살아온 환경 속에서 배이는 냄새가 있잖아요. 빨래를 해도 향수를 뿌려도 모두 가릴 수는 없는, 마치 영화 속 기우네 가족의 반지하 냄새처럼요. 영화 기생충은 냄새에 관한 영화라고도 해요. 그 냄새를 소재로 빈부격차를 보여주고 있거든요. 반지하 냄새, 지하철 냄새. 누구도 정하진 않았지만 계층이 구분되는 걸 볼 수가 있어요.


저는 우리 가족이 도시에서 살았다면 반지하에 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봤는데요. 다행인진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인구밀도가 낮은 시골에서 살다 보니 반지하에서 살진 않았어요. 그래서 반지하 냄새가 몸에 배이진 않았지만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는 영화 기생충 속 기우네 가족처럼 저에게 가난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곤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냄새는 실제 냄새라기보다는 촌티와 빈티와 같은 단어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본다면 ‘가난 때문에 누리지 못했던 경험의 부재’에서 나오는 어떤 느낌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창 시절 가끔씩 서울에 올라올 때면 멋지고 화려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저들이 가진 부티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하고 나름의 연구를 하며 느꼈던 것은 단정한 머리와 깔끔한 구두, 옷차림새, 그리고 향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진 부분들도 꽤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느낀 것들을 최대한 흉내 내며 도시 속의 그들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어요. 화려한 서울의 이미지에 대조되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와 향기 등의 분위기로 제 깊은 내면과 환경을 들킨다는 게 두려웠거든요. 흉내라도 내지 않으면 마치 치부를 드러내고 다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인지 ‘나는 미처 알지 못하는 내 본연의 냄새를, 돈을 주고 구입할 수 있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향으로 가면 쓰듯 나를 숨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저에게 향수는 단순히 향이 좋아서 즐기는 것으로 시작된 게 아닌, 저를 숨기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유용한 수단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고마운 존재이지만 슬픈 사실임에는 부정할 수 없죠.


다음으로는 기억여행의 도구로서 향에 대해 말을 꺼내 보면요. 어떤 향 혹은 향수는 당장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이전의 좋았던 기억 속으로 데려다주기도 합니다. 일종의 추억여행 같은거죠. 그런 의미에서 타임머신처럼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기억여행을 할 수 있는 고마운 도구가 되기도 해요. 하지만 또 어떤 향들은 제가 가고 싶지 않은 곳도 강제로 어느 한순간에 어느 한 곳으로 데려다주는 힘이 있기에 때론 아프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수를 여전히 좋은 존재로 인식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학생 때는 올리브영에 파는 보급형 향수를 사서 뿌리고 다녔습니다. 비싸지 않은 흔한 향수인데도 그때는 그것도 좋았거든요. 나에게 좋은 향이 나는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좋았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실 지금도 이런 기분 때문에 향수를 쓰기도 하지만요. 제가 그때 처음 사용했던 향수에 대해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데요.


제가 짝사랑하던 친구와 약속을 잡아 놀기로 한 날도 여전히 그 향수를 뿌렸습니다. 대학교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막 시작했을 쯤이라 날씨는 덥다기보다 화창했어요. 그때 제 마음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렇게 만나서 같이 나란히 버스를 타고 영화관을 가는 길에 열려있는 버스 창문에서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 좋은 바람들이 저희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제가 뿌린 향수의 향이 아주 은은하게 퍼지는 순간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행복했어요. 그 친구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요.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합니다. 저 혼자서만 좋아했던 터라 그 친구와 잘 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그 향수를 생각하면 가슴 뛰고 설렜던 그 한 장면이 생각이 납니다. 달리 생각하면 가슴이 아플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장면과 향만큼은 좋게 간직되고 있어요. 그래서 그 향수를 생각하면 그 장면이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제가 향수를 기억하는 방식은 조금 특이합니다. 어떤 향수를 생각하면 한 사람이 떠오르거나 그 향수와 관련된 그 순간이 정말로 아주 또렷하게 기억이 나요. 하지만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 향수인데도 지금 뿌리라고 하면 절대 못 뿌리겠다는 궤변을 늘어놓게 됩니다. 향에 대한 기준이 높아진건지 아니면 어리숙하던 그 시절의 제가 떠올라서 싫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좋은 추억으로만 간직할 뿐 다시 그 향을 제게 입히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가 않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향에 대한 기억 자체는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에는 틀림없습니다.


물론 지금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향에 대한 기준이 높아진 탓인지 유명 연예인들이 뿌린다고 하는 나름 고가의 향수를 사서 사용해보기도 하고, 드라마 속 주인공이 뿌릴 것 같은 그런 향들도 써보곤 합니다. 역시나 예전의 그 생각처럼 나에게도 이런 향이 나면 그런 사람들과 비슷한 분위기가 풍기려나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가면을 쓰듯 만족해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참 찌질하면서도 복잡한 이유들로 향에 대해 입문했다고 할 수 있지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그로 인해 저와 어울리는 향과 분위기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결국 저라는 사람을 깊이 고민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됐거든요. 그리고 서른이 된 지금은 이제야 조금은 향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더 이상 향을 열등감의 수단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에요. 향수가 매력적인 건 같은 향수를 쓰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향이 난다는 점이 있는데요. 그 덕에 제 본연의 향을 더 가꾸는 데 노력하기 시작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제 제가 발산하는 제 자체의 향을 전보다는 덜 부끄러워하게 됐습니다.


요즘은 향수보다 차의 향기에 푹 빠져 있습니다. “차향만리(茶香万里)”라고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차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말이 있어요. 또, “혁살인향(吓煞人香)”이라고 ‘사람을 놀라게 해 죽일만한 좋은 향’이라는 뜻을 가진 차의 이름도 있을 정도로(차 이름이 고상치 못하다하여 다른 이름으로 바뀌긴 했지만) '향(香)'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차(茶)'입니다. 저도 이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강렬한 향수의 향이 아닌, 다른 향을 입히지 않더라도 본연의 향이 매력적인 차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가지게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여전히 향수를 가면의 용도로 쓸 것 같은데요. 가면을 벗어도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차의 향기를 지닌, 제 스스로의 향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한때는 치부와도 같아 들키기 싫던 제 본연의 향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차는 향이 좋기로 유명한 중국 청차입니다. 일본은 차를 수색으로 즐기고, 중국은 차를 향으로 즐기는 걸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청차는 차향을 즐기기 위해 고안된 '문향배(聞香杯)'라는 향 전용 찻잔이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문향배(聞香杯 : 들을 문, 향 향, 잔 배)'. 한자를 풀이해보면 향을 듣는 잔이에요. 표현이 신기해서 '聞'자를 찾아보니 듣는다는 뜻 외에 '냄새를 맡다'란 뜻도 간혹 사용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지만, 뼛속까지 문과인 저는 향을 듣는다는 뜻이 더 예쁘게 다가옵니다. 우리 고등학교 때 배운 공감각적 표현(후각의 청각화) 뭐 그런 거 있잖습니까, '향을 맡는다'보다 '향을 듣는다'는 표현이 더 간지가 납니다(허세에 가깝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본인의 향을 고민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 봅니다. 본인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자기 본연의 향을 가꾸는 것이 뭐 그런 게 아닐까하고 오늘도 스리슬쩍 끼워 맞춰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차인 청차 중 청향계 철관음 소개해드릴테니, 오늘도 향기로운 차 한잔 들고 가시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