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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그래 Mar 09. 2022

봄을 닮은 [말차] 한 잔 어떠세요

사계_봄

봄이면 말차가 생각납니다.


학창 시절, 수업을 듣다가 창밖을 보는 걸 좋아했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었기 때문에 새 학기가 막 시작되는 봄에 창밖을 바라보는 건 너무나도 큰 낙이었죠. 그래서 공부는 잘 못 했을지 모르지만 창 밖을 보면 칠판에 쓰여 있는 활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은 영감과 가르침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 푸르른 새싹들이 자라나는 게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무언가가 새롭게 자라나는 신비함에 항상 감탄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초록의 푸르름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을 보면 마음이 항상 편안해짐을 느꼈어요. 차를 알게 되고 말차를 보면 그 푸르름이 생각나요. 말차는 녹차의 여린 잎을 증기로 찌고 말린 후 곱게 가루 낸 분말차입니다. 말차의 가루만 보아도 초록초록하다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말차는 다른 차와 다르게 물과 만난 뒤에도 정말 강한 초록의 색을 보이는 차예요. 그래서 더, 봄의 새싹과 대자연이 떠오르는가 봅니다.


재밌으면서도 저에게는 정말 다행인 것이,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창밖을 바라보며 하던 그 생각이 그저 흔한 중2병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알쓸신잡이라는 예전 프로그램에 꽂혀 유튜브로 정주행하다가 건축가이기도 하면서 작가이기도 한 유현준님께 푹 빠져 그분이 하는 유튜브 채널 정주행은 물론이고 세바시 강연까지 섭렵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강연에서 유현준님은 루이스 칸이라는 건축가의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루이스 칸이 학교 건축을 했는데 교실 한쪽에 창문을 크게 만들고 숲을 볼 수 있게 해줬다고 해요.


“학교를 자연과 가깝게 하여,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창밖의 숲을 마음껏 볼 수 있는 환경으로 학교 건물을 건축해야 한다."


이게 그의 철학이었죠.


그러나 학교 측에서는 이를 좋아할 리 없었습니다. 그러면 과거의 저처럼 수업에 집중하지 못 하고 학습효율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학교에선 “학교 건축을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 학생들이 창밖에 숲 보느라고 선생님 수업에 집중을 못 한다. 창문을 없애달라”라고 했는데,


거기에 그 건축가는 이렇게 한 마디 덧붙였다고 합니다.


 “세상에 자연보다 더 훌륭한 선생 있으면 데려와 봐라.”






이 말은 내 학창 시절을 단지 중2병이었음에 불과했구나라고 치부했던 감성을, 하나의 큰 영감과 창의력의 원천으로 바꾸게 해주는 말이었습니다.


그리 창의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해왔던 지난날의 나라는 존재마저, 생각보다는 '내가 창의적인 학생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될 정도의 크나큰 울림이었습니다.


그 생각을 하며 오늘은 봄을 닮은 말차를 한 잔 마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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