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은희 Sep 01. 2023

산티아고일기(2023/01/19) : 순례 19일차

짧은다리로 종종종(아스트로가to폰페라다순례길53km/버스이동 64km)

El Bodegón in Ponferada, Leon

1. 순한맛 버스 이동


1400m 포세바돈 고지 넘는 순례길 도전은 포기하고 버스 타고 K와 함께 오전에 폰페라다라는 도시로 넝어왔다. 이 구간은 국도로는 64km 완행버스로 1시간 20분 걸리는 도로고 산맥 구간 중 1200m 고개 포함 굽이굽이 계곡능선 도로를 타는 길이다. 포세바돈 순례길은 직선도로 더 짧지만 600m 상향경사(오르막) 올랐다 800m 하향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와야 한다. 날 좋을 때 이틀, 요즘같은 날 산에서 입산통제 내리면 며칠간 산속 알베르게에 갇힐 수도 있는  길.


버스길이라고 순탄하지는 않았다. 제설차가 끝없이 눈치우는 중이고, 2차선 도로 중앙선 따라 일방통행처렁 달려야하는 구간이 많다. 응달 계곡 저벅한 얼음 낀 도로에서 버스는 속도를 확연히 낮추고 조심조심 이동해야만 했다. 오르막 구간에서는 짙은 눈안개가 끼어 시야가 어둡고 비도 일찍부터 내린다.


이런날 걷기를 선택한 순례객들은 어땠을까? 걱정이 되어 L을 포함 연락처 있는 이들에게 안부를 계속 묻는다. 7시 안팎 출발한 이들은 상대적 완경사면 라바날(20km) 지점의 문연 알베르게까지 다행히 오후 2시 안팎 대부분 도착했는가보다. 그 산길엔 눈비가 정오 이후 시작되어 마지막 1시간 반 정도 눈보라 속에 있었지만 그래도 버틸만은 했다고.


이왕 간 거 내일 우리 둘은 놓친 포세바돈의 철의 십자가 앞에서 자랑스런 인증샷 찍고 & 엄청 가파른 얼음 혹은 진창 내리막길 안전하게 내려와요~~~ 메세지를 남긴다. 걱정은 되지만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거봐~ 그럴줄 알았어~'라는 마음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동시에 악천후 속 걷는 순례객들의 안전과 행운을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빌어주기로 거듭 다짐한다. 


2. 순례객은 강철체력?!


오늘 나는 순한맛 버스이동+휴식을 선택했지만 생각해보면 지난 18일 동안 엄청난 체력소모를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두번의 점핑과 이틀의 휴식이 있었지만, 500km 정도를 두개의 스틱과 두 다리로 땅을 박차며 온 몸으로 걸어 내었다. 처음 며칠은 9시 내외 해 뜬 다음 움직이기도 했지만 요새는 나도 6시 반에서 7시 기상 8시 안팎으로 순례시작 하루 5~7시간 22~42km까지를 거의 매일 걸어내고 있다. 


사실 순례길을 걷는 평균적인 사랑들이 다들 이렇게 살아낸다. 동료압박 혹은 격려가 서로에게 미치다보니 이게 되네 나도 신기해 할 정도로 이게 된다. 아마도 몸이 '이 주인놈이 이번엔 하루이틀 이럴 거 아닌가보다' 스스로 긴장+내핍 상태를 유지하는 듯. ㅎ


그러다가 오늘처럼 하루 풀어지는 날에는 약먹은 병아리마냥 하루 종일 깜박깜박 졸면서 보낸다. 11시 40분 폰페라다에 도착해 숙소에 1시 정도 체킨했는데 침대에 나른하게 쓰러져있다가 점심저녁 먹으러 나갔다오고 빨래하고 씻고하다보니 하루가 다 간다. 나는 이미 유럽시간대서 석달째 살아왔지만 K처렁 한국 출발 순례길 오른 사람들은 시차적응까지 해야하는지라 3~4일차에 대체로 한 번씩 아프더라는. 그래서 오늘은 무리하지 말자 맛집 찾아 잘 먹고, 눈 떠 있는 동안엔 수다도 떨지만 한 사람 스르륵 잠들면 자는가보다 쉬게 둔다. 


내 엄마고월주 여사님이 원체 건강하게 나아주셔서 버텨주는 체력에 거듭거듭 감사하는 중. 그래도 순례중인데 쉬면 괜시리 뭔가 잘못하는 거 같은 기분이 들어 부러 동네구경, 성당 방문, 마트 함 둘러보면서 2만보는 채워걸어야지 혼자 부지런은 좀 떨어보았다.


3. 짧은 다리로 종종종


지금 라바날의 알베르게에서 추운밤(숙소가 열악한가보다. 알베르게 꽉찼고, 도착늦은 일부는 마루바닥에 침낭으로 버텨야한다는, 라디에이터도 신통치 못하고) 보내고 있는 L은 사실 영화판, 드라마판에서 조명일 하는 친구다. 이번 순례가 끝나고 난 뒤엔 시나리오 공모에 도전해 본다고. 그래서 둘이 같이 걷는 '짧은' 순간순간에 '산티아고 스릴러' 함 구상해 보자고 아이디어 던지며 웃는 경우가 있었다.


영상에 감각이 있는 친구다보니 지난 이틀 같이 보내는 동안 사진만 찍는 게 아니라, 짧은 영상을 찍어 음악까지 깔어 채팅방에 공유해준다. 감동감동~!! 하트 뿅뿅 날려주며 확인하는데, 한 영상이 나에겐 너무 우프다. 

세여자의 키순서는 나이의 정반대. 나는 160cm가 안되는 단신이고, K선생은 170cm, L은 176cm 장신이다. 걷는 영상을 보니 내가 그 짧은 다리로 엉청 종종거리며, 그렇지만 절대 뒤쳐지지 않고, 많은 경우에 셋 중 가장 앞에서 치고 나가더라는. 


<짧은다리의 역습>이라며 채팅방서 한참을 같이 웃었는데,  속으로 혼자 뭉클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살아오는 세월 내내 저 짧은 다리로 저리 종종 거리며 한 인생 살아내 왔구나. 다름아닌 나 자신부터 나를 위무하고 다독여 주고픈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고, 나 자신이다. 

다그치지 말고, 

잘 보살피면서, 

앞으로도 오래오래 내 몽에 친절해질 것!


오늘은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마감하려함~


아스토가의 숙소 8인실. 공립 알베르게 1인당 7유로


아스토가 버스터미널 벽화. 도시의 자랑거리가 한 가득
버스 이동길. 제설차와 버스밖에 없다.
어제의 B컷. 500km를 걸어냈을 즈음.
오늘 저녁은 근사하게! 폰페라다에서 가장 오래된 바. 분위기도 음식맛도 엄청 좋았음. 산티아고 스릴러(로맨스도 좋아!)에 꼭 등장해야할 장소. El Bodegón in Ponfe

Jongmi Kim 세상에~레몬같은 것이 퐁당 빠져있는 저 맛난 음료는 무엇일까요? ㅎㅎ 서설마~ 제가 좋아하는 라거입니까! ㅎㅎ

  ==> Jongmi Kim 화이트와인 베이스 샹그리라입니다. 모히또보다 가성비 훨 좋은데 맛은 버금가는 수준!!!

  == > 오~~ 화이트와인 베이스로도 샹그리아를 만드는군요~^^

Jongmi Kim 나쵸보다 치즈가 더 많은 것은 한국에서 나오는 안주랑 격이 다름을 보여주네용!! 야미~

남재작 걷는다고 힘들었을테니 가끔은 이래야지요. 돌아오면 함 봐야지요. 라이브로 여행이야기도 좀 듣고 영양보충 좀 하고요.

  ==> 네 2월에는 진짜. 저 백수라서 시간 많아요~ ㅎ


짧은 다리로 종종종. 그래도 큰언니라고 조금씩 앞서 걸어낸다. (걸어내려 애썼다)


Jongmi Kim 앗, 너무 귀여우신거 아닌가요 ㅎㅎ 순례길에도 큐트하시면 반칙입니다만~^^

Ilho An 군대행군이 뗘오르네요... 저도 할 수 있을지..흐흐

김영희 에고.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은 좀 쉬셔요~

박명기 눈이 내리고 출입통제도 있는데 대단하십니다. 뭐든 실행력이 중요합니다. 체력도 좋으시네요

부엔 까미노!!!

김익배 글유 아프고 힘들때 쉬어가고 하는거쥬.  짧은다리의 ~~는 인상적이네요. 완주도 좋지만 건강이 더욱 좋습니다. 위에 분은 군대 행군야그 허셨는데, 저두 만만치 않게 단신으로 박격포 메구 행군했었쥬. 미련한 군대

최병두 그 동안 이메일에 뜨는 걸 애써 외면해 왔는데,... 오늘은 결국 들어와서 보고 나가요. 순례길 걸을 수 있는 복 받은 사람! 걷기 기억을 되살리고, 또 다른 기억을 만들지요. 무사히 잘 끝내고 건강하게 귀국하기 바랍니다.

  ==>  존경하는 최교수님~ 페북을 보고는 계시는군요. 평생 지치지 않고 공부해오신 선생님 삶에 비하면 부끄럽습니다. 저는 공부하는 업에서는 끝까지 밀어붙이지는 못했어요. 어느 시점에 저것은 신포도 외면해버리는 우화 속 여우처렁. 이 겨울 길은, 약간의 치팅이 없지 않지만, 건강하게 마무리해보려합니다.

감사합니다. 최 교수님!!!!

이명주    감사합니다 꾸벅

HyunJu Kim 닮고 싶은 멋진 언니.  (아침 맞는 호기로 '언니' 해봅니다.) 표정 너무 좋으세요! 저까지 막 든든하고!!

  ==> 저도 현주씨 알게 된 후 (배울 거 많은 언니같은) 동생이라 생각해왔습니다. ㅎㅎ 올 해는 진짜 자주 봐요~ 자기 업계 신입이 되어보려함. 잘 이끌어주세요! ♡♡^^



작가의 이전글 산티아고일기(2023/01/20) : 순례 20일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