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은희 Sep 01. 2023

산티아고일기(2023/01/20) : 순례 20일차

무지개가 맞아줬어(폰페라다 to 빌란프란카 델 비에르조 24.1km)

1. 오늘은 다시 활짝 개인 봄날


새벽녘 빗소리가 들려 걱정했는데, 출발 때가 되니 구름은 좀 있지만 비가 그쳤다. 오늘은 대체로 평탄한 길 24km. 내일과 모레 이틀에 걸쳐 1300m 높이의 산을 하나 넘어야해서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잘 걷기로. 오늘도 K 선생과 길동무로 함께 걷는다. 두 사람 모두 어제의 편안한 휴식 덕분에 컨디션이 좋다.


폰페라다는 분지 지형인데, 도시를 둘러싼 모든 산이 머리에 흰눈을 얹고 있다. 고도가 있어 설산 곳곳에 두꺼운 구름이 걸려있기는 하지만, 구름빛 어둡지 않고 푸른 하늘은 맑음 그 자체이다. 


오늘 사진 찍어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한테 보낸다. 겨울 고행길 간다고 걱정했는데, 당신 있는 곳 제일 날씨 좋소. 서울 너무 춥다는 회신이 날라든다. 나만 즐기기 미안한 마음하지만 이렇게 또 한 번 날씨요정 인증~^^


도시 구간을 지날 때는 도시 벗어나는데만 1시간 이상 걸릴 때가 많고, 또 복잡한 구조 탓에 길을 헤맬 때가 많다. 다행히 이 도시는 동서로 긴 형태에 길 정비도 잘 되어있어, 서향으로 뻗은 긴 도로를 따라 쉽게 도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도시 벗어나자마자 농촌 경관이 펼쳐지는데, 마을의 정돈됨, 집의 규모나 상태, 정원조경, 서있는 차들을 볼 때 경제사회적 조건이 상당히 좋아보인다. 선진국의 삶의 질(현경제지표만 보면 한국이 더 높기는 하지만)은 부유하면서도 여유가 있고, 개도국들은 가난하지만 나름의 여유(혹은 삶의 행복도)가 있어 보일 때가 많다. 우리도 이미 부자나라 된 거 같은데 여전히 왜 우리는 늘 바쁘고(지난 몇 년 간 전화받으면 첫 인사가 그랬다. "엄 샘, 요즘 바쁘시죠?"), 자주 걍팍져야 했나 한숨이 난다.


2. 경관이 바뀐다.


도시를 벗어나자 나타난 경관은 또 새롭다. 다시 광활한 포도밭과 올리브밭이긴 한데, 아득한 지평선 평원이 아닌 구릉지  군락이 지배적이고, 먼발치에는 설산이 빙 둘러서 있다. 4~5km 마다 마을도 나타난다. 뭐랄까. 드넓은 농촌 경관이긴한데, 농경지, 자연, 마을, 도로, 순례길이 모자이크처럼 다채롭게 서로 맞닿아 있다.


3일만에 처음 좋은 날씨 경관 만난 K 선생도 나도 멋진 경관 만날 때마다, 끼약~감탄하며 사진 찍기 바쁘다. 어쩜 이리 좋으냐, 오늘은 아껴가며 걷고 싶은 날이다 맞장구를 친다. 날 좋은 리오하와 메세타 구간 지나며, 이 광경을 나혼자만 누리는 건 낭비고 사치다 싶었는데, 길동무 있어 같이 감동하고 같이 느끼니 기쁘이 배가된다. 서로 사진 찍어줄 사람 있는 것도 너무~ 좋고!


한 가지 흠이라면 어느 시점부터 고압송전선로도 자주 눈에 들어온다. 마을과는 이격거리가 좀 된다 싶지만 포도밭을 가로지르는 송전탑을 지날 때는 징~ 하는 전기음이 제법 크게 들렸다. 날 좋았기에 망정이지 비오는 날 지났으면 살짝 겁이 났을수도. 목적지 마을을 돌다보니 '고압송전탑 반대'  배너를 내걸고 있는 집들도 좀 있다. 이 지역의 현안인 듯. 


3. 빌란프란카 델 비에르조, 스페인하숙의 그 동네

 (무지개가 맞아줬어요!!!)


오늘의 목적지 빌란프란카는 차승원, 유해진의 로드예능 <스페인 하숙>의 촬영지이다. 진입하는 마을입구 전부터 이래서 이 마을이 선택되었구나 이해가 막 된다. 경사지에 자리한 마을이지만, 강도 좋고,교통망(기차)도 나쁘지 않아 보이고, 와이너리가 여럿인 농촌 마을에, 박물관 갖춘 큰 성당과 수녀원도 있을만큼 규모도 크다.


우리 숙소 체킨하고 스페인하숙 촬영지 찾아나서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검색했는지 한글로 촬영지 위치가 바로 뜬다. 겨울 동안엔 문 닫는 곳이라 문 앞에서 아쉬워하는 설정샷만 찍었다는. ㅎ


마을 들어설 때 옅은 여우비가 내렸다. 햇볕 비추는데 비도 가볍게 오는 상황. 그렇다. 무지개가 만들어지는 바로 조건. 마을 입구 커다란 순례길 이정표에 서서 무지개 인증샷도 찍는데 성공!


최종목적지까지 200km 안 쪽으로 들어오 날.

눈과 입이 또 한 번행복했던 20일차 순례일.

내일과 모레 힘든 여정을 앞두고 있지만,

남은 일정도 무지개 빛처럼 아름답기를!!!


폰페라다의 성곽뷰. 일출 무렵
하몽의 나라
교회탑마다 황새집이 있었음.
첫마을 오전 커피 한 잔. 가벼운 바람막이로 갈아있었음.
황새집 2
황새집 3
사이 좋은 길동무
산티아고까지 200km 지점
농기구상에서도 순례자 응원 중~
광활한 포도밭이 다시 나타난다. 농부님 사진 찍으라고 포즈 잡아주심
이것은 왜 꽃이 아니란 말인가?
어제 점심부터 내내 뽈뽀(문어) 한상. 12유로의 만찬!
빌란프란카 델 비에르조.
무지개의 환영을 받음.
스페인 하숙의 그 동네, 그 광장
스페인하숙 촬영 알베는 동계 시즌 문을 닫습니다.
고압송전탑 반대. 요새 이 동네 현안
구글지도에 등장한. 을매나 찾아왔으면 ㅎ



김태완 황새집은 처음 보네요. 거기서 문어는 흔치 않은 메뉴일 것 같은데.

  ==> 내일 넘어갈 산 지나면 갈리시아주. 이 지방 문어요리가 워낙 유명합니다. 레온주 어느 시점부터 뽈뽀를 많이 파네요~ ㅎ

박명기 뽈보 생각나네요

Dongman Han 일정 마무리할때까지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서울은 아침현재 영하8도

  ==> 대사님 가족들과 화목한 명절 보내세요~ 곶 서울에서 인사 올리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산티아고일기(2023/01/21) : 순례 21일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