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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은희 Sep 01. 2023

산티아고일기(2023/01/03) : 순례3일차

첫번째 고비 : 수비리에서 팜플로냐(23km)

평탄한 길이라 난이도는 별 하나 구간인데, 3일차 피로가 누적되니 엄청 되다. ㅠㅠ


기억에 남았던 것 몇 가지 적어보면,


1. 피레네 산맥 아래 수비리는 사실은 광산 도시. 

  70년된 마그네사이트 노천광과 레미콘 회사가 경제의 큰 축으로  보입니다. 피레네 산맥 아래 알베르게들도 주요 경제축이겠지만 동계기간은 대체로 휴업 중.


2. (벌써?!)치트키 활용. 

  산길 순례길 아니라 Arga강변 길따라 도시 진입했습니다. 사실 오늘의 풍경은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아서. 게다가 추운 산 그늘을 오래 걸어야했고, 순례 트레일 오솔길은 도로에서 너무 가까웠고. 중간에 산으로 다시 오르라고 하는데, 지도보니 강변길 따라 걸어도 팜플로냐에 갈 수 있어 보이대요. 

자의적 선택이었지만 예쁜 강변길에서 산책이나 자전거 타러 나온 스페인사람들과 인사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지만 사실 순례길이 무엇이길래. 바이블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종교적 목적이 아닌 이상 바이블을 숭앙하고 꼭 지켜야 할 필요까지 있는 건 아니겠지 싶기도 하고.


3. 순례의 목적은 뭘까?

 순례 등록할 때, 수도원 숙소에 들게 되면, 꼭 질문을 받습니다. 

종교 있나요? 순례의 목적은? religious? Spiritual? Holiday? Sports? Leigure? Others?

오늘은 길에서 만난 스페인인들이 3 번이나 묻습니다.


-최근 이 길 걷는 한국 사람 왜 이리 많니? 

-글쎄~ 한국이 covid19 잘 극복했잖아. 그래서 동양국가 중 일찍부터 밖에 나오는 게 어렵지 않았어.

-그런 거 말고, 너는 왜 이 길 걷는데?

-음. 나는 지금 job transition 준비 중이야. 일종의 자체 안식년. 


생각해 보니 저 역시 순례의 목적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보지는 않고 있네요. 인생 답이 복수형이니 순례의 목적도 단일한 대문자의 목적 하나라기보다 아직까지는 소문자 여럿이 복수형으로 있는 듯 하고요. 그 목적에 대해서 혹은 목적이 목적이 되는 과정에 대해 오히려 더 생각해봐야 싶습니다.


4. 풍요로운 대도시 팜플로냐

 3일차 상대적으로 이르게 오후 3시 반 경에 도착. 그냥 지나치긴 아까워 지친 다리 일으켜 도시를 좀 걷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 자체도 엄청 멋지네요! 산티아고 순례길의 핵심도시, 피레네산맥 나바라지역의 주요도시, 로마유적에서 중세 기독교 유적,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이후 헤밍웨이의 첫 장편이 쓰인 곳이라고 합니다.


5. 오늘은 뭔가 더 아쉽네요.  

  대부분의 순례객들은 정해진 날짜별 구간에 따라 목적지 마을에 도착해 하룻밤 휴식을 취하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느라 매우 바쁩니다. 결절이 되는 도시나 마을 자체를 느끼거나 즐기기엔 시간도 체력도 심적 여유도 품기 어렵습니다. 

  몸도 힘든데 이 도시에서 하루 머물러 볼까?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까페에서 나도 커피 한잔 하고 출발할까? 겨우 3일차인데 벌써 퍼지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아마도 오늘 밤 이 두 마음이 내내 싸울 거 같네요. ㅎ 

  이 와중에 그제 생쟝에서 출발, 보통의 2~3일차 코스(론세스바예스 - 수비리 - 팜플로냐)를 하루에 뛰어온 청년 둘이 들어옵니다. 군대 제대한지 얼마 안 된 한국인 20대 청년. 또 한국인이군요. ㅎ


스페인사람이나 다른 외국인들이 한국의 산티아고 붐에 대해 물어오면 부분적이나 답을 준비해봐야겠어요. 주관적으로야 다 다르겠지만 사회적 현상으로는 답을 찾는 과정도 재밌지 않을까요? (으윽.. 이직할건데 연구자 습성이 다시 스멀스멀)

팜플로냐에서 유일하게 문 연 순례객 숙소(Aloha Hostel Pamplona)는 오늘도 한국인이 풍년입니다! 15명 중 7이 한국인 ㅎㅎ


피레네 산맥쪽 동터올 즈음 출발(산맥의 서사면이라 겨울일출이 늦음)
그제 넘어온 피레네 산맥
산티아고 길 옆으로 송전선도 흐른다. 레미콘공장
마그네사이트 광산(산티아고 길 옆에 있어 환경에 더 신경쓴다고)
노천광
순례길 예술
바스크에 온 걸 환영합니다 (한국어도 있어요!)
성에 가득 낀 목장에서 해를 기다리는 중
빨래줄도 정겹다.
공공 식수대
팜플로냐 도착!
팜플로냐 대성당
까스티요 광장 (광장과 성당이 떨어져 있음)

==========<댓글>=================

김현종 엄샘. 새해 첫 맨스플레인인데요. 개미처럼 근면한 수행 말고 농땡이치면서 하시면 좋겠어요.

Sook Kim 1. 헤밍웨이!길을 따라 여행을 하면 20세기를 완독할 후 있을 것 같다는 꿈을 자주꾸죠.

2. 서명숙! 길을 알리고 길을 만든 자. ㅡ 길. 우리나라 수 많은 길의 시작. 그러고 보니 파급효과가 어마어마!

3. 우리 종교가 구복 신앙이듯 자신을 스스로 구하기 

 => 올레길 서명숙 샘이 이 길을 걷고난 다음 고향 제주에 올레길을 연 이유를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걷다보면 곶자왈, 오름, 오름 위 목장 같은 곳들을 자주 만날 수 있어요. ㅎ

  => 성을..ㅋㅋ. 감사. 제주올레아카데미, 올레여행자숙소 등 등 이어지는 지역문화콘텐츠가 어마어마.. 특히 제주올레아카데미는 따라하고 싶은 프로그램..

이진수 김현종 제 생각도 어제 청년이 적어준 스폿이랑 맛집 다니시며 하루 쯤 놀다 가셔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Ilho An 어떤 외국인은 한국의 인구가 중국보다 더 많으냐? 어딜가도 없는곳이 없다네요.. .. 심지어 로키에서 조난당해 산장에 도착하니 이미 한국인 한명이 라면을 끓이고 있더라는 ^^;; 건강하새요.

Seok-Kyeong Hong 본디 유목민인데 너무 오래 섬에 갇혀 살아서 + 호기심 + 목표달성형삶. 이런거 아닐까요?

 =>  유목민 정서 동의! ㅎ 그에 더해 한국이 거대한 전환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중이기도 한 거 같아요. 경쟁 치열하고, 다들 성취욕망도 크지만, 어느 순간 '이리 사는 게 맞나?' 멈춤하고픈 욕구도 있는 거 같아요. 멈춤이 잠시고 그 멈춤도 달성해야 할 목표가 되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ㅋ

Sunhwa Kim 저라면 쉬엄쉬엄 즐거며 갈거 같아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빠른게 좋은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자아를 찾아 순례길을 걷는 사람 등등 이유야 많겠지만 한국인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그거 나도 해봤다' 경험해보는거 중요하고 그래서 많이들 가는거 같기도^^

Sumi Park 역시 한국인은 부지런해서 어디든 빨빨거리고 쏘다닌다는 결론 ㅋㅋㅋㅋㅋ 엄은희 여행기 재미나다 ^^

김익배 저두 잼나게 읽고 있슈. 가끔 제 아내에게도 읽어주고 있기도해유. 필리핀 서는 그곳친구들이 엄박사를 제 처제로 착각할 정도로 비슷하고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는 울아내의 버킷리스트의 하나이기도해서요.무사히 마치길 기도하지요.

Hye-sook Park 거기서 만난 한국인들도 어찌보면 우연이 아닐꺼야~~ 연락처도 주고받고 해^^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우연은 없고, 한번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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