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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oomo Dec 02. 2024

한 사람으로도 충분해

나를 믿어준 한 사람 덕분에,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나는 고작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 무렵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자주 울었고, 나의 일기장은 우울과 슬픔으로 가득 채워졌다. 아마도 엄마는 그런 딸을 보며 ‘사춘기를 무지 유별나게 앓는구나’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였는지,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학교에만 가면 미움을 받았다. 특별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는데도 담임은 나를 문제아 취급했고, 담임이 나를 못마땅해하니 반 아이들도 덩달아 나를 미워하고 수군거렸다. 적극적이고 자신감 넘치던 모습은 사라지고 점점 나도 나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그러니 나도 어찌할 수 없는 문제가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괜한 미움을 받아 자주 아팠고, 때문에 우울했고, 그래서 더 조용했다. 교무실에서 뭐라 소문이 났는지, 어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나의 이름을 부르고는, 쯧쯧… 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었다. 그 당시 나는 정말로 외톨이었고 너무 이른 나이에 고독을 경험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5학년 2학기에 더 작은 학교에서 전학을 온 상황이었고, 그렇게 힘들게 된 이유가 전학 후에 적응을 못한 결과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이 전 학교로 보내달라고 엄마에게 소리치며 울기도 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변해버렸고 다시는 돌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더욱 좌절했다. 자주 칭찬을 받았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제법 모범생 소리 들으며 지냈던 학창 시절은 이제 끝났구나 싶었다. 그러니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수업시간엔 엎드려 잠을 잤고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점점 주변사람들의 평가대로 나를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전 학교에서 나의 담임이셨던 선생님이 전근을 오셨고, 나를 조용히 부르고 물으셨다.


“요즘 많이 힘들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고, 선생님은 그런 나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네가 그런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아. 오해나 모함에 휘둘리지 말고 너의 모습을 보여줘. 그들을 이기는 방법은 그것뿐이란다.”


  나를 안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눈빛에는 다정함과 확신이 있었고 나는 기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고, 그렇게 나를 잃어가고 있었던 순간, 다시 나를 찾을 수 있는 빛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날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시 나로 돌아오는 길을 찾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1학기가 끝나고 받은 통지표, 전 과목이 ‘수’인데 도덕에는 ‘우’를 주고,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다고 쓴 나에 대한 담임의 평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리라며 이를 악물었다. ‘내가 바꿀 거야! 나에 대한 모든 헛소문과 맞서 싸울 거야.’


  초등6학년에 독서실에서 밤새 공부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때의 나는 절실했고, 나를 증명하려면 다른 사람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남은 시간 동안 나를 보여줘야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치른 기말고사에 올백을 맞아 전교 1등의 쾌거를 이루었다. 소문처럼 찌질하고 못난 문제아가 아니라는 것을 모든 학생들과 선생님 앞에 보여줄 수 있었다. 천천히 모든 것이 회복되었고, 지금까지 베스트프렌드로 지내는 친구도 그때 생겼다. 나는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 나는 어느 동창에게서 그 시절 담임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이름, 류OO! 그 사람은, 그 이후 전근 간 학교에서 여학생들을 성추행하고 못된 짓을 많이 한 것이 발각돼 학교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이 전부터 학생들을 괴롭혀 온 정황과 학부모에게 뒷돈을 챙긴 사실도 드러났다고 했다. 처벌에 대하여 자세히는 듣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법의 심판을 받고 실형을 살아야 할 그런 범죄자였다. 선생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없던 그 사람으로 인해 괴롭힘을 당했던 것을 생각하니 억울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때,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나에게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었어……’ 그 생각을 하니 그 힘든 시간을 극복한 내가 더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살아있길 잘했구나.’


  내가 나를 증명하려 애썼던 그 시간 동안 얼마나 힘들었던가! 비록 긴 터널이었지만 어둠에서 빛으로 걸어 나오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면 충분했다. 혹 다른 이가 아니더라도 나 자신이 나를 믿어준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때의 나는 나를 믿어주지 못했지만 이제는 누군가에게 그 단 한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 경험도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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