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보내며,
가늠이 안 되는 슬픔이다. 갑자기 닥쳐온 상실에는 함부로 위로도 할 수 없다.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라 하여 남은 사람들의 상실의 아픔과 슬픔을 헤아려보려고 했으나 쉬이 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이들이, 또 이렇게 별이 되었다. 참사다. 가슴 아픈 연말이다. 불안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하며 나와 가족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며, 이 연말을, 2024년의 마지막날을 보낸다.
지난 8월, 전 국민이 다 아는 *청라전기차화재 사건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있었다. 우리 집은 직접적 피해는 없는 동이어서 일상에 큰 지장이 있지는 않았다. 당시에 며칠간 단수를 겪으며 물 길으러 다녔던 것과 몇 주간 온수가 나오지 않아 물을 데워 썼던 것이 가장 큰 불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구석구석은 아직 복구 중에 있고 지하주차장의 부분 차단으로 인해 주차난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피하던 그날 아침, 매캐한 연기 마시며 놀랐던 가슴은 오래도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대피 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열흘간 임시 쉘터에서 지내던 아들친구네 가족 때문에 마음 아파 눈물짓던 밤이 길었다. 혼자 발 뻗고 자는 게 미안해서 죄책감마저 들었다. 당시 자진하여 도움을 주고자 하는 주변 이웃, 상인들의 따뜻한 손길에 위로도 받았다. 위로하는 사람이 더 많았으나 조롱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잘 알지 못하고 떠드는 말에 상처받는 마음들도 있다는 것을 직접 겪으면서 생각했다. 위로는 서두르지 않더라도 천천히 진심으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조용하게 묵묵하게 위로할 일도 있고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야 하는 일도 있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에서는 멀어졌지만 어떤 것은 복구가 오래 걸리고, 또 어떤 것은 영원히 복구되지 않는다.
2024년은 더없이 다사다난했다. 아직 진행 중인 나랏일과 사람들의 일과 나 개인의 일이 있음에도, 보내는데 이토록 미련이 없기 어려울 만큼 미련이 없다. “잘 가라. 얼른 가버려라.” 나는 이제 희망을 기다린다. 문 앞의 2025년은 희망이기를, 치유이기를, 이제 문을 열어 새로운 해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나?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
: 이기주 <언어의 온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