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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속 Aug 29. 2024

5. 무기력의 늪에 빠지다

내 자동차 배기통에서 매일 검은 피가 쏟아지는 기분이었어

 그렇게 2년간 안정적인 삶을 유지했어. 그게 아마 2018년 여름부터 2020년까지였을 거야. 그런 평온을 되찾은 데는 남자친구의 공이 컸어. 아, 남자친구를 만난 것 또한 영감에 의한 것이었어. 모든 사태가 진정이 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팬 분들에게 작은 보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건 2018년 4월. 열댓 분 정도 모셔서 식사 대접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지. 구독자 정모에 오실 분들의 신청서를 받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메일을 보내 주셨더라고. 순전히 나 혼자 진행하는 거였기 때문에 너무 많으면 극내향형인 내가 감당할 수도 없고 서운하게 만드는 상황이 생길 것 같아서 일찍 신청 마감을 했지. 그런 뒤에도 신청 메일과 인스타 DM이 많이 왔어. 이상하게 그중에서 자꾸만 읽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어. 글에서 느껴지는 배려심과 세심함에 감동한 나는 이 분을 추가로 모셔야겠다고 생각했지. 나는 이 충동이 신이 주신 영감이었다고 생각해.


 그 만남을 기점으로 우리는 연애를 시작한 거야. 이 사람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어른이었어. 이중인격의 아빠처럼 나르시시스트도 아니고 내가 불우이웃인데 누굴 돕냐던 엄마처럼 팍팍하지도 않았지. 이 사람이 머물렀던 자리는 늘 깔끔했고 배려를 위해서라면 귀찮음도 마다하지 않았어. 약자를 보호할 줄 알고 갈등보다는 대화가 먼저인 사람. 무엇보다도 내 감정을 그대로 수용해 줬어. 그 사람이 지금까지도 자주 하는 말이 뭔 지 알아?


 "우울해? 당장 떠나자!"


 2018년은 내가 수면제 졸피뎀에 중독되어 하루에 반나절 이상은 약에 취해있을 때였어. 눈에는 초점이 없고 흐리멍덩했지. 우리 집엔 약냄새가 가득했어. 그 사람은 매일같이 약에 취해 자는 나를 차마 두고 가지 못하더니 결국 그때부터 지금까지 7년간 우리는 함께 살고 있지. 그는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매일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녔어. 그렇게 여행하다가 제일 마음이 편했던 여수에 정착하게 된 거야. 남들은 유튜버 만나서 호강하려고 그런다 하겠지만 이때 내 수입보다는 그의 수입이 더 많았어. 지금까지도 사실 금전적으로는 내가 더 많이 의지하는 상황이야. 뭐 아무튼 그렇게 나는 졸피뎀도 끊고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했던 몸도 포동포동 살이 쪘고 마음도 편해졌어. 그리고 봉사하던 보호소에서 강아지도 입양하게 되어 생전 처음 느끼는 아낌없이 주는 사랑의 형태도 알게 되었어. 사람들은 내가 마음씨도 곱고 봉사도 잘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이 모든 건 그의 제안이었어. 그렇게 항상 나를 빛으로 이끌어 줬어. 넓은 바다가 끝도 없이 보이는 아파트로 이사도 하고 정말 꿈만 같은 날들이었지.


 그런데 이상하지. 어느 순간부터 행복의 기한이 마치 다한 것처럼 느껴졌어. 이제 다시 너는 불행해져야지. 원래 너를 잊었어? 가난하고 자존감 낮은 너는 어디에 있니. 돌아와 예전에 너로. 어떤 존재가 자꾸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았어. 남자친구와 여행을 하는 것도 더 이상 재밌지 않았어. 구독자도 100만 명을 넘었고 조회수도 잘 나왔고 매일 광고 제안이 오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야.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멍한 상태. 그 당시 나는 그 감정을 [평온] 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아. 늘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다 탈진했던 나였으니까 매일매일 아무 감정 없이 사는 게 사람들이 말하는 평온인 줄 알았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 어쩔 땐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 자체가 힘들게 느껴져서 전날밤 잠들기 전에 다이어리에 이렇게 적었어.


 "침대에서 내려가기"


 그렇게 나는 무기력의 늪에 빠져 버린 거지. 발버둥 치면 칠 수록 더 깊이. 겨우 숨만 쉴 수 있을 정도로. 침대 밑에 악어가 사는 것처럼 느껴졌어. 침대를 나오려면 큰 용기가 필요했지. 그 당시 나의 유튜브 일을 도와주던 남자친구와 동생, 친구에게 큰 죄책감을 느꼈어. 동생은 기나긴 나의 설득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를 도우러 서울에서 여수까지 내려왔고, 친구 또한 도와달라는 나의 말에 남편과 주말부부를 감행하면서 여수에 내려온 상황이었지. 너무나 큰 죄책감에 시달렸어.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하면 이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될 텐데."


 마치 나 자신이 어릴 적 나의 아빠같이 느껴졌어. 아빠처럼 살기 싫었는데. 제대로 돌볼 자신도 없으면서 절대로 우리를 엄마한테 보내주지 않았던 아빠. 작은 딸 초등학교 입학식에 술 먹고 자느라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를 혼자 학교에 보낸 아빠. 아끼는 직원이라며 엄마가 나간 집에서 같이 살자고 데려온 젊은 남자에게 큰 딸은 성추행 당하는지도 모르는 무심한 아빠. 지나가는 차가 내 발을 밟았다며 울면서 하소연하는 나를 외면하고 뉴스만 보던 아빠. 아빠는 알까? 부모가 보호해 주지 않는 아이들의 삶은 굶주린 맹수가 어슬렁거리는 사파리에 던져진 새끼 고양이의 삶과 같다는 것을.


 나는 나를 도와주는 이들에게 "나 사실 지금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야. 미안하지만 나는 당분간 일을 쉬어야 할 것 같아" 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어. 그들은 너무나 열정적이었어.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어서 결과물을 보여줬어. 누구보다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었어. 그리고 항상 과분한 칭찬을 해주시는 구독자분들에게도 늘 죄책감이 있었지. 그래서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를 억지로 억지로 발로 뻥뻥 차가면서 굴렸어. 내 자동차 배기통에서 매일 검은 피가 쏟아지는 기분이었어. 죽고 싶었어. 내가 죽어야 이 고통이 끝난다고 생각했어.

 

 "나같이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사람은 죽어야 돼. 그게 세상을 위한 길이야."


 그런 생각도 들었어. 근데 한 가지 다행이었던 게 뭔지 알아? 과거와 다르게 그때 내가 믿고 있던 한 가지가 있었어.


 어떤 고난이 와도 신이 다 알아서 해주실 거야.


 이런 믿음이 있었어. 그건 내가 숱하게 넘어지고 추락할 때마다 느꼈던 신의 존재를 이제는 알아 버렸기 때문이야. 그래서 하루종일 침대에만 있더라도, 내일이 두렵더라도 "결국엔 신께서 다 알아서 해주실 거야." 라는 생각을 놓지는 않았어. 아니나 다를까 신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셨어. 2021년 어느 날, 우연히 유튜브에서 [내면 아이 명상] 의 제목을 보게 된 거야. 나는 영상을 보기도 전에 깨달음이 왔어.


 "맞아! 내 안에 느껴지는 그 축축하고 시커먼 무언가가 내면 아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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