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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미 Jan 31. 2023

아빠의 사진 그리고 딸의 이야기

프롤로그


여느 날과 다를 것이 없던 날이었다. 아이들은 운동장을 처음 본 강아지 마냥 뛰놀고 남편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던 그날. 아이를 찍는 남편의 눈엔 어떤 시선이 담겨 있었는데 그 시선은 다른 어떤 것을 바라볼 때 발견할 수 있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아이에게서 경이로움을 발견했다고도 할 수 있겠고 그저 아이가 사랑스러워 그 순간을 담고자 하는 아빠의 애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정이던 경이로움이던 그건 사랑에 빠진 아빠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그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남편의 시선에서 나의 아빠를 발견했다. 어린 딸을 카메라에 담는 아빠의 시선도 저랬겠구나. 그저 아빠 앞에서 웃고 떠들며 포즈를 취하던 아이는 발견하지 못했을 그 시선을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어 우리 아이의 사진을 담는 남편의 눈에서 발견하다니.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다가온 그 발견은 이 글의 시작이 되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감각이라니. 벌써 30년도 더 지난 아빠의 시선을 30년 후인 지금에서야 깨닫다니. 감각은 즉각적인 듯 하지만 시간을 초월하기도 한다. 감각하는 그 순간엔 어떤 느낌인지 불분명하지만 혹은 어떤 것이라고 명명하기 힘들지만 시간이 흐른 뒤 명확해지고 또렷해지기도 한다. 아! 그때 감정이 이런 거였어! 하고 말이다. 글로 읽자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지만 이렇게 앞뒤가 정확히 맞는 경험은 실로 처음이었다. 그건 정말이지 제단 되어 짜인 틀처럼 정확히 맞는 감각이었다. 마치 지금 남편의 시선을 새롭게 발견한 건 30년 전 나를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을 발견하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그리고 이 감각의 발견은 사진이라는 ‘물성’을 온몸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감각’으로 전환시켜 주었고 나를 다시 쓰는 사람으로 이끌었다. 남편이 아이의 오늘을 기록하듯, 아빠가 어린 나를 기록했듯, 이제는 내가 아빠의 시선을 기록할 때라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지금부터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빠의 시선이기도, 아빠가 남긴 사랑의 기록을 30년이 지난 후에 발견한 딸의 시선이기도 하다. 사진에 담긴 그 고귀한 사랑을, 다른 것으로는 대체하지 못할 사랑의 시선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만든 (이제는 엄마가 된) 딸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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