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의 마침표
14년 8개월을 다닌 나의 첫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떠날 때가 되니 그동안 이곳에서 벌어지고 흘려보낸 시간들이 한꺼번에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08년 20대 중반에 입사해서 회사 사업을 키워나가는 성장기와 호시절을 함께 누리기도 하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40대가 되어 떠나가게 되니 이곳에서 좋지 않은 기억보다 찬란하고 아름다움이 우거진 나의 청춘이 버무려져 복잡한 마음이 마구 뒤섞인다.
오래 고민도 하고 끝을 상상해 오며 결국 내가 선택한 엔딩임에도 퇴사는 첫 경험이기에 먹먹하고도 생경한 감정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머물던 직장을 떠난다.
가정에 전념하기 위해서,
더 넓은 세계에서 배워나가기 위해,
새로운 커리어 패스를 위해,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혹은 번아웃 증후군 때문에,
잠시 멈추기 위해… 등등
작년 중순부터 현재의 일터를 떠나는 일은 줄곧 오랜 고민과 상상으로 해왔지만 여러 머뭇거리는 마음으로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일었다.
“고민은 나뭇잎 하나 움직이지 못한다. 오직 행동뿐“
이 글귀가 어느 순간 강하게 와닿고는 작년 연말부터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의구심 들고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지난달 인터뷰의 후기를 기록한 이후 그다음 주에 최종 합격 소식을 접했다.
이후에도 연봉 협상과 여러 검토, 고민을 거치는 것 또한 첫 경험이기에 만만치는 않았는데 결국은 내게 변화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모든 것이 결정되고 나의 회사에서 퇴사 절차를 마치고 완전히 떠나게 되어서야 나의 심경이 바뀌게 된 모멘텀, 그리고 지난 15년의 사회생활을 하며 배운 점들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공허함”
첫 번째 심경이 변화한 계기는 내가 롤모델로 삼았던 직속 임원의 부재였다. 그녀는 작년 사내 부부인 배우자를 갑작스럽게 잃은 후 몇 달간 자리를 지키다가 본인도 몸이 심하게 악화되어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배우자를 잃은 슬픔은 감히 헤아릴 수 조차 없었고 나 또한 그 배우자 분과 오래전 일을 한 적이 있기에 가슴에서 큰 구멍이 생기는 것만 같았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슬픔, 매일 보는 나의 상사가 변해가는 모습과 떠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나에게는 공허함 이상의 무언가를 느낀 것이 나의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격변의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격변의 시대에 위험한 것은 격변 자체가 아니다. 지난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피터 드리거
점점 나의 존재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 좋았던 것이 내일도 좋다고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고, 이제는 ‘평생 보장’이라는 것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점점 변화는 가속화되어가고 있고, 말 그대로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는 격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최선을 다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말은 어느덧 허구처럼 되었지만, 노력과 운이 기본 받침이 되어야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여전한 사실이다.
노력과 운이라는 영역은 행동하고, 스스로 찾아 나서서 알아채고, 움켜쥐는 것이니 결국은 무엇이라도 시작해야 그다음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다.
15년 직장 생활을 돌아보니 나에게 아주 큰 자산들이 남겨져 있었다.
”따뜻하고 배움이 많은 사람들“
회사라는 허브를 통해 그동안 만난 수많은 인연들을 만났다. 다양한 사람들과 일로 엮이며 결과적으로 좋은 기억이 있다면 친한 친구보다도 깊이 마음을 나누고 신뢰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최악의 상사를 만나기도 했지만, 내 인생의 롤모델이 자 귀인과 같은 상사를 만나기도 했다.
합이 좋고 교감을 나눌 수 있었던 동료들, 배울 것이 많고 일하는 모습이 닮은 싶은 상사, 나를 잘 따르고 또 내가 배울 것도 많았던 후배들.
마지막 날에 퇴직 인사 다니며 진심으로 나의 미래를 응원하고 또 내 부재에 아쉬워하는 사람들, 따뜻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로 인해 내가 이곳에서 나름 괜찮게 생활해 왔구나- 하고 아련하고 따뜻한 감정만이 남는다.
“대충 미움받고 확실히 사랑받자.”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모두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자신에게 결코 특별한 존재일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떠한 집단에서든 좋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좋은 존재가 될 수 없고, 모든 팀에서 좋아 보이는 사람은 결국 아무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
나는 줄곧 잘 해내고 싶은 마음,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다 보니 욕먹는 것을 두려워해왔다. 그것이 종국에는 절대적으로 나에게 좋은 결과를 주지 못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기적인 것과 다르게, 나한테 잘해줄 수 있을 때 정말 남한테도 잘해줄 수 있는 것이 무언지 알게 된다.
모두가 나에 대해 잊어버려도 될 정도의 마음으로 온마음을 다해 일을 하되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로만 하면 되는 것. 언제 어디서나 적당히 나의 에너지를 써가며 ‘나의 모양‘을 만들어 벽으로 세워놔야만이 조직에서 번아웃을 면하며 살아남을 수 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
기분,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자기 관리를 해야 하는데, 그에 ‘체력’이 모든 면에서 기본이라는 것을 점점 절감한다.
호의, 친절, 호기심 등의 모든 긍정적 태도는 체력이 뒷받침되어야지만이 지속이 가능한 일이다.
가장 최악은 모든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지쳐버리는 것이다. 내가 전력투구해야 하는 일과 전략적 무능을 구분하는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절실함과 여유로움의 밸런스”
예전 상사에게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나에게 들려준 말이 가슴에 콕 와닿았다. ”네가 내린 선택은 무조건 옳은 거니, 의심하지 말고 나아가보아.“
떠나는 이 와중에도 확신이 들지 않는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어서 울림이 컸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를 데려가보는 것, 쉽지 않지만 그런 용기는 분명히 필요하다.
추진 동력을 가지려면 간절함 이상의 이것밖에 없다는 절박감을 느껴야 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잘 되어야 한단 마음은 오히려 독이 된다.
절실함과 여유로움의 밸런스는 언제나 필요하다.
5년 후에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머물고 있던 나’와 ‘움직인 나’ 중에 어떤 나를 덜 후회될까 생각하면 지금의 선택이 매우 또렷해진다.
오늘은 짧은 퇴사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그간 고생 많았다며 절대적으로 나를 지지하는 남편,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나의 딸이 나의 옆에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게 느껴진다.
내일모레부터 새 일터이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 마음껏 비우고 충전하고, 이제 곧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