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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리밍 Dec 02. 2022

양육의 본질

나의 내면을 먼저 들여다보기


영어 유치원이냐, 그대로 일반 유치원이냐-

내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 아이는 올해 6살, 초등학교 입학까지 1년 남짓 남겨두고 '예비 초등'을 위한 또 다른 단계의 고민이 생겼다. 현재 다니고 있는 유치원이 만족스러우면 이런 고민도 없었을 텐데, 지난 몇 개월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한 대응과 맞벌이에게 가장 중요한 '소통 수단' 부족이 늘 불만이었다. 무엇보다 내 아이도 유치원 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생일이 늦고 수줍음이 많은 편이라 자유롭게 놀이하는 환경에서 아주 즐기지는 못하는 거 같았다.

1년 전만 해도 내 아이가 이 유치원을 다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었는데, 이런 고민에 놓이다니. 과거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육아 선배들을 보며 전혀 공감을 못했었는데 나라고 피할 수는 없나 보다-

그런데 이런 고민들은 나의 불안한 내면의 표출이 아닐까, 가장 사랑하는 내 아이의 일을 혹여나 내가 깊이 고민하지 않고 간과하거나 쉽게 해결하려는 것은 아닐까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했다.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워킹맘은 아이에게 늘 미안하고 마음 졸이기 마련이다. 나중에 '그때 왜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최대한 알아본 후에 나와 내 아이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7세에 옮길 유치원의 선택지는 영어 유치원밖에 없었다. 여러 곳을 알아보다가 마침 입학 설명회 시즌이어서 위치가 가까운 영어 유치원 설명회를 다녀왔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영어유치원에 열광하는 걸까. 아무리 영어가 중요하다지만.. ‘영유 세계’라는 것을 처음 접했다. 나는 호기심 반 진지함 반으로 선착순 예약해서 왔고 설명회를 들으러 온 학부모들은 강당에 가득 채워졌다.

곧이어 원어민 선생님들의 화려한 교육 철학 인터뷰와 커리큘럼 소개, 졸업생 아이들의 영어 연설 아웃풋으로 참여한 부모들을 솔깃하게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10시에 입학금을 입금하는 선착순으로 입학 조건이 쥐어준다고 했다. 엄마들에게도 아이에게도 설명회를 들은 즉시 ’경쟁 시작‘인 셈인데, 경쟁에 익숙한(?) 나는 다음날 회사에서 알람을 맞춰두고 0.1초 만에 입금 전쟁에 참전을 했고, ‘등록 확정’을 쟁취했다.

2주일 가량의 취소 유효기간이 있어서 우선은 대기를 걸어두고 치열하게 고민해보기로 했다.



내면의 프레임

아이를 키우면서 나에 대해 알게 된 점이 있다. 그것은 나도 모르던 '걱정, 두려움'이라는 내면의 프레임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 가끔은 희한할 정도로 무심한 면도 있는데, 또 객관적으로 사소한 상황에 격렬한 감정 반응이 일어나며 내적 에너지를 탕진할 때도 있다.

그런 내면 프레임을 나 스스로가 이용하며 빨리 결론을 내리고자 할 때가 있는데, 그런 부분이 인지되면 새로운 관점으로 이동시키는 훈련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다. 불안하다고 해서 어찌할 수 없음을 축적된 경험으로 알고 있는데도 새로운 불안이 들어오면 어김없이 비슷한 패턴으로 반응하고는 한다.

나에게 이럴 때 필요한 관점은 조금은 '초연'해지는 것이다. 남들은 열광하더라도 다소 냉정하면서도 식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바깥의 시선을 내 안으로 향하게 해서 나의 불안을 잘 보살피는 것. 나의 불안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건 아닌지 늘 살펴야 한다고 느낀다.


나의 유년기와 사춘기 시절

아이를 키우며 나의 어릴 적 기억이 자주 떠오르기도 하고 애써 더듬어보기도 한다. 내 아이만 할 때 나는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내 아이가 보고 있는 세상과 행동이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하고 내가 엄마로서, 양육의 가치관을 점검할 수가 있다.

내 부모님이 나에게 어떤 존재였나 떠올려보면 부모님의 경제나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대한 ‘좋은 환경’을 지원해주셨지만 정서적인 지지를 충분히 받았는지는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돌아보면 나이가 비슷한 세 자매를 키웠던 나의 부모님은 모든 것을 1/n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고, 그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해주셨다.

가장 암담하고 버거웠던 사춘기 시절에는 대부분이 아프고 쓰라린 기억뿐이지만, 또 결정적인 순간에 따뜻한 말 한마디가 ‘진짜 내 편’ 임을 알게 했고 지금도 떠올리면 온기가 느껴진다. 어쩌면 이후에 수없이 힘든 시기에도 그 기억이 내적 동기가 되어 견뎌왔다는 생각도 든다.


“부모의 근본적 역할 중 하나는 아이들에게 삶을 살아가는 데 등대 같은 기준이 되어줄 가치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가 ‘본질 육아’ 책에서 부모의 큰 역할을 명쾌하게 알려주었다. 등대 같은 기준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는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알아야 한다.

폭발적으로 정서, 인지, 사회 발달이 커가고 있는 내 아이에게 지금 ‘영어 실력 향상’이 우선시 될 수 있을까?

내 아이 월령 때나 성향 상 ‘놀이’와 ‘재미’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거워하는데, 이 아이가 영어 유치원에 보내지면 과연 즐거울 수 있을까.(어마어마한 비용은 둘째 치고)



고민하던 와중이 지난 주말에 처음으로 유치원 반 엄마들과의 모임에 초대되었다. 내 아이가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그 자리를 내 아이와 찾아갔다. 늘 내 아이의 교우관계가 걱정이었는데, 내 아이의 모습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여러 명 모여서 단체 놀이를 했다가 둘씩 꽁냥 꽁냥 놀다가, 친구가 콧물 흘리면 휴지도 가져다주고..

친구들과 너무 행복한 표정으로 웃음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순간, 내가 근시안적인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던 건 아닌가 싶었다.

집에 돌아와서 내 아이에게 ”너 00 유치원 계속 다니고 싶어? 아니면 00 영어 유치원으로 옮기고 싶어?“ 미리 영어학원 오후반을 체험해보았기에 영어 유치원의 분위기도 알고 있고, 전학 개념을 알려주며 물어보니 내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다니는 00 유치원이 좋아. 00랑 00랑 노는 게 너무 좋아. 00 유치원에서 하는 뮤지컬 연습도 너무 좋아.“

며칠간 고민했던 것이 명쾌하게 해결되었다.

나중에 또 내면의 불안 프레임이 작동되더라도, 당시에는 이게 맞다고 판단한 내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느끼며-


서울숲에서 옹기종기 모여 놀이하는 아이들
"부모의 근본적 역할 중 하나는 아이들에게 삶을 살아가는 데 등대 같은 기준이 되어줄 가치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부모 자신의 가치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내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은 가치를 부모가 먼저 가지고 추구해야 한다."
“자녀가 삶을 살아갈 힘을 길러주는 것이 어떤 것일지가 우선이고, 부모의 삶을 풍성하게 살아가면서 육아는 함께 하는 것이다.”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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