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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리밍 Apr 14. 2024

모교 방문

설레는 두 번째 스무 살

2008년에 대학을 졸업 후 무려 16년 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모교 실기실에 찾아갔다.


학교를 찾아가게 된 계기는, 지난 2월 아직 추운 겨울날 모교 교수로 재직 중인 동기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였다.

새 학기에 '브랜딩과 시각화'라는 3학년 수업을 계획하는 중인데 다양한 필드에서 현역으로 활동 중인 지인에게 특강 초청 모집을 하고 있다며, 뷰티 업계에 오래 몸담고 있는 나에게 의뢰가 왔다.

강연이라는 것에 특별히 경험이 없어서 처음에는 머뭇하게 됐는데, 이 참에 나의 경험담과 커리어를 정리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나도 학생들과 교감하며 신선한 영감을 얻고 싶었다.

그래서 교수 친구와 다시 의논하며, 가볍게 하루 특강의 씨앗이 한 학기 동안 우리 브랜드의 산학협동 프로젝트로 연결되었다.


산학 프로젝트 장표를 만들며 나의 커리어부터 정교하게 정리해 나갔다. 문득 나는 17년 차 화장품 제품 디자이너 외길 커리어를 걸어왔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신기했다.

현재 회사로 이직 준비를 할 때 외부 평판에 노출되며 들었던 생각은, 나의 외길 커리어에는 양면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 우물만 판 것이 전문가로 보이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다양성이 부족해 한 분야로 굳어질 수 있다는 점.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긴 호흡으로 일하기 위해 역할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이직해 온 회사에 온 지 1년도 넘게 흐른 지금, 우연한 기회로 한 분야의 전문가로 학교 후배들과 프로젝트를 리딩하는 귀한 경험을 얻게 되었다.


0405 특강과 프로젝트 시작하는 첫 날.

나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과제와 함께 오픈 디스커션을 하는 시간은 즐거웠다.

학생들은 맑고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이고 자유롭게 공유하고, 세대를 뛰어넘으며 상호작용하는 대화는 너무도 짜릿했다. 곧이어 나의 교수 친구는 준비된 브레인스토밍을 진행하며 우리의 브랜드를 오감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였다.

오감에 대해 떠오르는 키워드, 문장을 나열해보았다.

학생 때에는 개념적인 것들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체계화하던 기억이 났다.

구현하고자 하는 무형의 개념이 탄탄하지 않으면 부실공사와 같다며 쉬운 지름길로 가지 못하도록 집요하게 챌린지하던 교수님이 생각난다.

바쁘게 살다 보니 간과하며 살았던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현실에서는 결과만을 내기 급급한데 근본적인 개념부터 성의 있게 건드리는 작업을 하는 경험은 단단한 속근육을 키우는 일과 같다.

아카데미 틀 안에 있을 때에 키워놓은 크고 작은 근력으로 사회에 나가 평생 활용한다는 점을 나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고, 후배들도 현재 그런 경험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3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캠퍼스를 구석구석 누비며 잠시 시간 여행을 음미했다.

11개 미술대학 과가 있는 조형관 건물
산업디자인과의 구호, ‘으뜸 산디’의 흔적
1층의 금연 표시하는 방식도 모교답다.


나의 청춘이 여기저기 깃들여진 이곳,

당시의 순수하면서도 복잡함, 서걱거리면서도 아름다움, 힘겨우면서도 즐거움, 텅 빈 거 같으면서도 가득 채웠던 다채로운 감정들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 그리고 현재의 그때 나이대의 학생 후배들의 시선이 겹치며 벅차오름을 느꼈다. 그 시간들은 짧은 거 같으면서도 길었고, 영원할 것 같으면서도 금세 흘러갔다.

캠퍼스 낭만으로 몽글거리는 마음과 잔잔한 충만감을 안고 과제 다음단계를 구상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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